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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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취업을 준비해 온 취업 준비생 A씨는 이번에도 또 입사시험에서 고배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입사시험에서 번번이 낙방하자 A씨는 실망을 넘어 무기력증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의기소침해 지내던 어느 날, A씨는 더 이상 이대로 지낼 수는 없다면서 한 무속인을 찾아갑니다.

무속인 B씨는 그런 A씨에게 굿판을 제안합니다. B씨는 “굿을 하지 않으면 취업이 안된다”며 “하루 빨리 굿과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B싸는 A씨에게 기도비로 1000만원을 요구합니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A씨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취업을 할 수 없다’는 B씨의 말에 A씨는 결국 대출을 받아 기도비를 지불합니다.

하지만 기도비를 주고 굿을 지낸 이후에도 취업 실패는 계속됐고 A씨는 무당이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거짓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A씨는 B씨에게 전화해 ‘효과가 없었는데 기도비용을 환불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따지는데요. 이에 B씨는 ‘이미 굿을 지내고 기도도 드렸으니 환불은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사기까지 당했다고 생각하니 A씨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A씨는 무속인 B씨를 사기죄로 고소하고 지불한 돈을 모두 돌려받고 싶은데요. A씨는 B씨를 사기죄로 신고할 수 있을까요?

사기죄란 거짓말, 진실 은폐 등을 통해 상대방을 착오에 빠뜨림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범죄를 말합니다. 따라서 “굿을 해야 취업할 수 있다”는 무속인의 말에 거액을 들여 굿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취업에 실패한 A씨 입장에서는 무속인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돈을 주고 한 굿이 효과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사기죄가 성립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하급심 판례들에 따르면 무속인의 사기죄가 인정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지난 2008년 서울동부지방법원은 A씨 사례와 유사한 사건에서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무속의 실행은 반드시 어떤 목적의 달성 요구한다기보다 그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마음의 위안 또는 평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만약 목적 달성을 조건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무당이 객관적으로 목적 달성을 위해 무속업계에서 일반적으로 행하여지는 무속행위를 하고 또한 주관적으로 그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의사로 이를 한 이상, 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이를 가지고 시행자인 무당이 굿 등의 요청자를 기망했다고 볼 수는 없다.

즉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속인이 요청자로부터 받은 대가에 따라 합당한 정도와 방식으로 굿이나 기도 등을 드린 사실이 있다면 무속인의 행위를 사기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또한 법원은 무속 행위의 목적이 기대한 효과를 달성하는 것에만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봤는데요. 굿이나 기도, 상담 과정에서 요청자가 얻게 되는 심리적 안정감 역시 무속 행위를 통해 얻은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무속 행위 없었다면 사기 인정될 수도

그렇다고 해서 무속인의 사기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16년 한 무속인이 기도비 명목으로 피해자로부터 거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무속행위는 한번도 하지 않아 법적 다툼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요. 해당 무속인은 신내림을 받은 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습니다. 문제의 무속인은 피해자로부터 받은 기도비를 모두 자신의 생활비로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지는데요. 해당 무속인은 “원래 따로 장소를 정해 놓지 않고 평소에 그 사람을 생각하며 염원하는 것이 내 기도 방식”이라며 사기 혐의를 부인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불행을 고지하거나 길흉화복에 관한 어떠한 결과를 약속하고 기도비 등 명목으로 대가를 교부받은 경우 전통적인 관습 또는 종교행위로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며 사기죄를 인정했습니다.

무속인이 고객으로부터 금전적 대가를 받고 약속한 굿이나 기도 등 무속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이를 사기로 볼 여지가 있고 이때 그 무속 행위는 반드시 일반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범위의 종교 행위에 해당해야 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지난 4일에도 유사한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는데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등의 방식으로 유명세를 얻은 한 무속인의 사기혐의에 대한 재판이었습니다.

사건 법원은 “신내림받으면 너와 가족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등의 말로 피해자들을 속여 6억8000만여 원을 편취한 무속인 C씨에 대해 “무속행위를 가장해 피해자들의 돈을 편취했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A씨 사례 역시 무속인 B씨가 실제로 1000만원에 해당하는 굿이나 기도 등 무속행위를 했는지가 관건이 될 수 있습니다. B씨가 그런 무속행위를 했다면 A씨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반면 A씨를 위한 무속 행위가 없었거나 실제 이뤄진 굿이나 기도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요구한 것이라면 무속인의 행위는 사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무속인 본인도 자신의 굿이나 기도가 A씨 취업 성공과 관련 없을 것임을 알면서 오로지 금전적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한 경우도 사기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형법
[시행 2023. 8. 8.] [법률 제19582호, 2023. 8. 8., 일부개정]

제347조(사기) ①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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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못해” 무속인의 경고는 공갈죄?

A씨 사례에서 무속인 B씨의 행위를 ‘사기죄’가 아닌 ‘공갈죄’로 보면 어떨까요?

공갈죄란 공포를 느낄 정도로 상대방을 협박해 재산상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죄인데요. 사기죄와 비슷하지만 사기죄는 ‘거짓이나 은폐’를 통해, 공갈죄는 ‘협박’을 통해 각각 상대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얻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A씨 사례에서 굿을 안 하면 평생 취업이 안 될 것이라는 B씨의 말은 취업 실패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A씨에게는 충분히 공포스럽게 다가왔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사기죄와 마찬가지로 공갈죄가 인정되는 일 역시 드뭅니다. 

지난 2002년 대법원은 “조상의 천도제를 지내지 않으면 작은 아들의 교통 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무속인의 말에 속아 수 차례 대가를 지불하고 천도제를 지낸 피해자가 낸 소송에서 무속인의 공갈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앞서 공갈죄는 ‘협박’을 통한 범죄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대법원은 천재지변이나 신력, 길흉화복에 관한 해악을 알리는 것 역시 ‘협박’에 포함될 수 있다고 봤으나 해악을 알릴 때 무속인 자신이 그 천재지변이나 신력 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한 것이 아니라면 공갈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굿이나 기도를 드리지 않으면 내가 모시는 신께 얘기해 반드시 사고가 나게 할 것이다”과 같이 자신이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해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말한 경우에만 공갈죄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또 해당 재판에서 △구체적인 내용의 해악을 고지했는지 △무속행위에 대한 대가가 적절한지 △무속행위가 오로지 의뢰인에게 겁을 주어 금전적 대가를 빼앗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 것인지 등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A씨 역시 “굿을 안 하면 취업 절대 안 된다”는 무당의 말에 실제로 공포심을 느꼈고 이를 협박이라고 느꼈다고 하더라도 무당의 말이 법원에서 인정하는 협박에 해당하지 않으면 공갈죄는 인정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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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입장에서는 뒤늦게 무당의 거짓 정보나 협박에 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 기준을 입증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돈을 돌려받을 수 없는 건데요. 뒤늦게 굿 비용을 지불한 것을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무당의 사기죄나 공갈죄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신중히 거래해야 합니다.

글: 법률N미디어 인턴 이서현
감수: 법률N미디어 엄성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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