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기차 성장세 둔화…전기차 할인·투자 연기 ‘행렬’

배터리·소재업체들도 ‘숨고르기’…경기 불황 외에 대중화 앞둔 ‘캐즘’ 영향도

당분간 전기차 속도 조절 하되 광물 확보전에는 ‘전략적 매수’ 나설 듯

테슬라 모델Y. ⓒ테슬라코리아 테슬라 모델Y. ⓒ테슬라코리아

끝을 모를 것 같던 ‘전기차 돌풍’이 작년 하반기 들어 힘을 잃고 잠잠해졌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바겐세일에 나서고, 배터리 기업들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니켈·리튬 등 주요 광물 가격도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전기차 공급망은 연쇄 타격을 입고 있다.

전기차 성장세 둔화는 고금리·고물가 등에 따른 글로벌 불확실성 증대에 기인한다. 초기 시장에서 대중 시장으로 넘어가기 전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하는 ‘캐즘(Chasm)’ 효과도 맞물렸다. 국내외 기업들은 전기차 공급은 속도를 조절하되, 핵심 광물 확보전은 지속하는 방식으로 이 시기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 테슬라 등 글로벌 전기차 제조사들은 신차 출시 계획을 축소하거나 판매하는 주력 모델 가격 인하에 나섰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 전기차 판매 여건이 악화되자 전기차 로드맵 수정에 나선 것이다.

최근 테슬라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 ‘모델 Y’ 가격을 많게는 10% 가량 인하했다. 유럽 전기차 수요가 정부 보조금 축소, 고금리, 대기 수요 소진 등으로 둔화되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해 10월 가진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고금리 여파로 자동차 소비자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같은 달 GM은 2024년 중반까지 40만대를 생산하겠다는 북미 생산량 가이던스를 폐기했다. 폴 제이컵슨 GM CFO는 “북미 지역 전기차 수요 둔화 탓”이라고 했다. 미국 미시간주 전기차 픽업트럭 공장 가동 시점도 내년 말로 연기했다. 같은 이유로 스텔란티스는 이탈리아 토리노 미라피오리 공장 직원 2250명 일시 해고 결정을 내렸다.

전기차 업계에 불어닥친 신차 생산 속도 조절, 공장 신·증설 연기, 감원 이슈는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배터리·소재업체 타격으로도 이어졌다.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3382억원으로 시장 컨센서스(추정치) 5877억원을 크게 하회했다.

유럽 전기차 시장 둔화로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고정비 부담이 늘었고, 배터리 가격도 떨어지면서 판가와 원가 스프레드 역시 축소된 영향이다. 삼성SDI도 4분기 실적이 시장 눈높이(4616억원)에 미달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터리 등의 소재로 쓰이는 광물 가격도 약세를 지속중이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니켈 가격은 지난해 1월 t당 3만1200 달러에서 이달 22일 현재 1만5785 달러로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호주 레이븐소프의 니켈광산 전경 ⓒ포스코 호주 레이븐소프의 니켈광산 전경 ⓒ포스코

리튬도 kg당 474.5 달러에서 86.5달러로 하향 곡선을 기록하고 있다. 니켈 가격 약세에 캐나다 광산업체 퍼스트퀀텀 미네랄즈는 서호주 니켈 프로젝트 조업을 2년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다만 전기차-배터리업계의 초기 로드맵은 전기차 대중화를 염두에 둔 초고성장 전략이었던 만큼, 일부 제조사들의 투자·생산 속도 조절에도 전기차 성장세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HMG경영연구원은 글로벌 전기차(B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판매가 2023년 1321만대에서 올해 1646만대, 내년 2058만대로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전기차-배터리·소재 업체들이 일제히 숨고르기에 들어간 데에는 ‘캐즘’ 효과도 한 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시장은 얼리어답터 위주의 구매자를 넘어서 다수 사용자로 고객층 변화가 일어나기 전 단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가격, 주행거리, 충전 인프라 등 여러 문제 해소가 전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부터 지속중인 테슬라의 전기차 할인도 이 같은 흐름을 염두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전기차-배터리·소재 업체들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는 자동차 패러다임 변화는 바꿀 수 없기에 전동화 전략을 지속하되 글로벌 경기 반등 전까지는 생산·판매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리튬 가격 추이ⓒ한국자원정보서비스 리튬 가격 추이ⓒ한국자원정보서비스

이와 반대로 광물 확보전에서는 다소 공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전기차 밸류체인에서 리튬, 니켈 등 자원 확보는 전기차 가격 결정 뿐 아니라 안정적 제품 공급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주도적으로 임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미 광물 가격 약세를 기회로 판단, 공급망 확충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자원 가격 하락을 ‘매수 타이밍’으로 보고 경쟁력 있는 가격에 사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중국 CATL이 이끄는 CBC 컨소시엄은 볼리비아 유니 소금사막 리튬 프로젝트에 추가 자금을 투자하는 조건으로 프로젝트 지분을 확대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17일(현지시간) CBC가 지난해 1월 가공 프로젝트에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 데 이어 이번 계약으로 9000만 달러를 추가 투자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는 삼성, SK, 현대차, LG, 포스코, LX 등이 니켈·리튬 투자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에 니켈 생산공장을 세우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에는2만5000t 규모의 염수 리튬 1단계 상·하공정을 건설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기업과 탄산 수산화리튬공급 계약을 맺었고, SK온은 호주와 칠레에서 리튬을, 인도네시아에서는 니켈을 공급받는다. LX인터내셔널은 최근 인도네시아 AKP광산 지분 60%를 1330억원에 취득하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 같은 공급망 구축 노력은 미래 시장 주도권을 위해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대중화는 속도의 문제이지 방향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관련 업체들은 미래 가치를 보고 공급망 구축에 나설 것”이라며 “오히려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광산 업체들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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