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자신 있다” 다른 세계에 있는 클린스만의 미소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 뉴시스

상상 못한 졸전 끝에 일그러진 분위기에서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피파랭킹 23위)은 25일(한국시각)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23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3차전에서 고전 끝에 말레이시아(130위)와 3-3 무승부를 이뤘다.

가까스로 승점1을 추가한 한국은 조 2위 자격으로 16강에 진출했다. 같은 시각 요르단(87위)을 1-0 제압한 바레인이 조 1위(승점6·2승1패)로 16강에 올랐다. 요르단은 3위(승점4·1승1무1패)로 16강 티켓을 획득했다.

한국은 16강(31일 오전 1시)에서 F조 1위 사우디아라비아(2승1무)와 맞붙게 됐다. E조 1위에 올랐다면 일본(17위)과 ’16강 한일전’을 치러야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누구와 붙어도 좋다”고 했지만, 말레이시아전에서 드러난 경기력을 놓고 보면 일본을 피한 것이 다행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경기 후 취재진 앞에서 우승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여전히)우승 자신 있다”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모두가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 다른 세계에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부임 후 온갖 기행으로 팬들에게 야유까지 들었던 클린스만 감독은 조별리그 내내 무색무취 전술 운용에 선수들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월드 클래스’ 김민재도 수비 조직력이 무너진 상태에서 홀로 어쩔 수 없었다. 손흥민 PK골이나 이강인의 환상적인 프리킥 골이 없었다면 클린스만 감독은 지금의 자리에 앉아있기도 어려울 뻔했다.

말레이시아전에서 가까스로 무승부 거둔 클린스만호. ⓒ 뉴시스

어찌됐든 졸전을 거듭하며 심리적으로도 쫓기는 상황에서 한국은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16강 한일전’의 짐은 덜었다. 한국이 16강에서 사우디를 꺾으면 8강에서 호주, 4강에서 이라크를 상대할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56위)가 약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우디는 한국-일본-이란 등과 함께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팀이다. 아시안컵에서 세 차례 우승(1984, 1988, 1996)을 차지했던 사우디는 2000년대 들어 준우승(2000, 2007)만 두 차례 기록했다. 2019 UAE 아시안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2022 FIFA 카타르월드컵’에서는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국부펀드(PIF)의 막강한 오일머니를 등에 업고 세계적인 명장 만치니까지 모셔왔다. 연봉도 2700만 달러(약 360억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 중 가장 많은 연봉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연봉에 10배를 초과한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사우디의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우디 만치니 감독. ⓒ AP=뉴시스

만치니의 지략도 부담스러운데 한국은 클린스만 감독의 전략 부재 속에 선수들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말레이시아전에서 한국은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황희찬 등 유럽 최정상급 리그에서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을 출격시켰지만, 내용과 결과 모두 기대 이하였다. 부상 여파와 체력 고갈, 경고 누적의 위험 부담을 안고 사우디전을 뛰게 됐다.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클린스만 감독의 언행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당장의 성과를 거둬야 하는 국제대회에서도 실망스러운 결과와 함께 대책 없이 뱉는 말들은 아시안컵을 간절히 기다려왔던 축구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현명하면서 냉철한 진단과 분석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입증할 수 있는 감독을 원하고 있다. 공감하기 어려운 미소가 아닌 비책을 품고 있는 듯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원한다.

한편, 축구 통계-기록 전문 매체 옵타는 한국의 우승 가능성을 11%로 봤다. 일본(18.2％), 카타르(16.8％), 호주(14.7％), 이란(12.2％) 보다 낮은 수치다. 16강에서 사우디를 제칠 확률도 52.7％라는 수치를 내놓았다, 피파랭킹이 33계단이 아래인 사우디(47.3％)와 큰 차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