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은행권을 향한 금융당국의 상생 압박이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이자캐시백’으로 대표되는 상생금융 방안에 이어 이번엔 중소기업 및 신성장 산업을 대상으로 당국의 유동성 공급에도 시중은행이 차출됐기 때문이다.

최근 두 달 사이 21조원이 넘는 금융당국 발 청구서가 ‘상생’의 명목으로 은행권에 도착한 셈이다. 지난해 이자로만 41조원을 벌어들이며 또 한 번 ‘이자 장사’ 이슈에 갇혀버린 은행권에서는 벌써부터 올해 상생 압박이 지속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포착된다.

무엇보다 이미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연초부터 악재가 지속하는 가운데 은행권을 향한 당국의 상생 압박이 실적 전반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20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공식적으로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소위 ‘상생금융’의 목적으로 지출을 결정한 자금 규모는 약 21조5000억원에 달한다.

최근 공개된 국내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연간 합산 당기순익이 약 14조97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지난해 이들이 벌어들인 수익의 약 1.5배의 재원 지출을 불과 두 달 사이에 결정한 셈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가운데)이 은행장 및 정책금융기관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금융위원회
김주현 금융위원장(가운데)이 은행장 및 정책금융기관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금융위원회

또 한번 ‘상생 소방수’ 나선 은행

실제로 이번 금융당국 발 ‘기업금융 지원 방안’에서도 국내 주요 시중은행은 또 한 번 두드러진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실제로 이번 금융지원 방안에서 전체 재원인 76조원 가운데 27%에 달하는 약 20조원을 국내 5대 시중은행이 전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국내 5대 시중은행은 오는 4월 새로운 중견기업 대출 상품 공급을 앞두고 이를 위한 전산망 구축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번 금융당국과 협력해 선보이는 중견기업 대상 저금리 대출 프로그램 시행을 위한 사전준비 조치”라며 “상생 전담 부서가 중심이 돼 시행에 차질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5대 시중은행은 산업은행과 함께 신성장 분야로의 신규 진출, 또는 투자유치를 희망하는 중견기업에 약 6조원 규모의 전용 저금리 대출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5대 시중은행이 각 1조원, 산업은행이 1조원을 투입하는데 △설비투자 △운영자금 △연구개발 자금 등의 부문에 기업당 최대 1500억원까지 연 1%p 금리 우대 방식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또 시중은행은 중견기업이 신사업 진출을 통해 산업생태계의 중심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상 최초의 ‘은행권 공동 중견기업전용펀드’도 운영한다. 일단 5대 시중은행은 각 은행당 1조원씩 최대 5조원 규모로 이번 펀드를 조성하는데, 성과에 따라 운영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이밖에 신사업‧혁신사업에 진출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5대 시중은행 한 곳당 1조원씩 총 5조원의 우대금리로 대출프로그램도 별도 지원한다. 추가로 5대 시중은행이 신보임의출연 형태로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협약보증을 진행, 중소기업의 중견기업 도약 과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공개됐다.

또 정상적인 영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총 2조원 규모의 금리인하 특별프로그램도 5대 시중은행의 몫으로 설정됐다. 대상 기업이 보유한 대출금리 5%를 초과한 대출에 대해 1년간 금리를 연 5%까지 최대 2%p 감면 해주는 방식이다.

'상생금융 간담회'에 함께 하고 있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오른쪽)과 정상혁 신한은행장(왼쪽). / 사진=신한은행.
‘상생금융 간담회’에 함께 하고 있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오른쪽)과 정상혁 신한은행장(왼쪽). / 사진=신한은행.

두 달 새 21조원 상생에 투입하는 은행권

일단 은행업계 안팎에서는 이같은 금융당국의 중소기업 금융지원 자체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혹시 모를 중소‧중견기업의 부실화 가능성을 사전 차단한다는 의미 뿐 아니라 이들의 성장과 지원을 위한 ‘마중물 공급’의 차원에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번 기업금융 지원 또한 사실상 일종의 ‘은행권 팔 비틀기’ 형태로 이뤄진다는 점에 대해서는 은행업권 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은행권에서는 지난해에만 상생금융이라는 목적하에 약 3조원에 달하는 금융 지원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상반기 약 8000억원 규모의 금리인하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금융당국의 상생금융 압박이 하반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말에는 시중은행 뿐 아니라 국내 20여개 은행이 모두 참여하는 ‘민생금융 지원방안’이 공개된 바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대출 이자를 환급해주는 ‘이자캐시백’에만 총 2조1000억원의 재원이 투입되는 방식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5대 시중은행은 전체 재원의 절반에 가까운 1조800여억원 규모의 이자 캐시백을 현재 진행하고 있다. 이달 중 이자캐시백 조치를 마무리한다는 게 시중은행의 목표인데, 이미 80% 이상 환급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지난해부터 이어진 상생금융 지원안이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 기업금융 지원까지 더해지는 것 자체에 대해 은행권 내부에서는 다소 부담스럽다는 기류가 형성됐다.

당장 앞서 언급했던 중견기업 전용 저금리 대출 프로그램의 경우, 목표 출시일(4월 1일)까지는 불과 두달 도 채 남지 않았다. 시중은행이 주도하는 중견기업전용펀드의 경우, 금융당국은 오는 3분기까지 5000억원 규모의 1차 펀드를 조성‧집행 완료할 것을 주문한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상당수 시중은행은 사실상 올해 상반기에도 금융당국이 주도한 상생금융에 오롯이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번 기업금융 지원안이 올해 상생금융의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반의 분위기”라며 “이미 은행 내부에서는 최근 신설된 상생금융 전담 부서가 또 하나의 기피 부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웃픈 목소리도 있다”라고 말했다.

디자인=김민영 기자.
디자인=김민영 기자.

성장성‧건전성 약화로 번질까

무엇보다 은행권에서는 이처럼 반복되는 금융당국의 상생압박이 은행 자체의 성장성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기준 주요 금융지주사 및 시중은행이 전년 대비 역성장한 상황에서 무리한 상생금융 지원이 수익성 및 건전성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금융지주사의 실적 역성장의 경우, 지난해 말 공개된 ‘이자캐시백’ 등 민생금융안의 여파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주요 금융지주사는 이자캐시백 등 민생금융 분담금의 70~80%를 지난해 4분기 실적(비이자익 부문)에 반영했는데, 해당 규모만큼 당기순익은 손실 처리됐다.

또 취약 중소기업 대상 대출 확대를 권고한 금융당국의 압박은 100%에 육박한 예대율(예금 잔액 대비 대출잔액 비율)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대다수 시중은행의 경우, 지난 1년 새 예대율이 2%p 가량 상승했는데 통상적으로 예대율이 100%를 넘으면 건전성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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