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한국거래소 내부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전임 손병두 이사장에 비해 색채가 뚜렷해 변화를 추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어서다. 금감원장 재임 시절 금감원의 트레이드 마크인 종합검사(종검)를 없애는 등 기관 변화를 주도한 바 있다. 현재 한국거래소 임원 중 임기가 끝난 임원이 상당수라는 것도 향후 대대적인 조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 임원(본부장·본부장보) 18명 중 임기가 만료된 임원은 7명이다. 정석호 청산결제본부장, 민경욱·이정의·김대영 경영지원본부장보, 정지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 박찬수 파생상품시장본부장보, 이승범 시장감시본부장보 등이다.

본부장보와 같은 집행 간부의 임기는 2년으로, 2년의 임기가 끝난 후 1년 연장 여부를 논의한다. 민경욱·이정의·김대영 본부장보는 ‘2+1년’, 정석호 본부장, 정지헌·박찬수·이승범 본부장보는 2년의 임기를 마쳤다. 본부장보는 임기는 1년 연장돼 ‘2+1년’으로 마치는 게 통상적이다.

상임이사인 본부장의 임기는 3년이다. 본부장 중에선 홍순욱 코스닥시장본부장이 다음 달 30일 임기 만료를 맞는다. ▲2025년 1월(양태영 유가증권시장본부장, 김근익 시장감시본부장) ▲2026년 2월(김기경 경영지원본부장, 이경식 파생상품시장본부장) ▲2026년 5월(김성진 상임감사위원) 차례로 임원 임기가 만료된다.

한국거래소는 임기가 만료됐다고 해서 임원을 바로 퇴임시키지 않는다. 공석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 후임 인사가 날 때까진 임기 만료 임원이 자리를 지킨다. 위에서 언급된 임기가 만료된 임원들은 현재 직책을 유지 중이다.

임원 중 상당수의 임기가 끝나면서 한국거래소에서도 대폭 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정 이사장이 금감원장 재직 시절 금감원 임원 전원(부원장 4명·부원장보 10명)에게 사표를 요구한 전적도 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15일 한국거래소 부산 본사(BIFC)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한국거래소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15일 한국거래소 부산 본사(BIFC)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한국거래소

2021년 8월 6일 정 이사장은 금감원장에 취임했는데, 출근 3일째인 같은 달 10일 금감원 임원 14명에게 사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당시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를 9개월 남긴 정권 말기라 내부적으로 반발이 있었음에도 당시 정 원장은 부원장 4명 중 수석부원장을 포함해 3명의 사표를 수리했다. 부원장보는 10명 중 5명을 바꿨다.

금감원장 취임 후 두 번째 인사에서도 몇몇 임원이 퇴임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들은 금융 감독의 방향성을 두고 당시 정 원장과 이견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를 상대로 정기적으로 종합검사(종검)를 시행하는데, 이를 두고 외부에서는 ‘먼지 털이식’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정 원장은 종검을 없애고 정기·수시검사로 개편했다. 이 과정에서 김동성 전략·감독 부원장보, 이성재 중소·서민 부원장보, 장준경 공시·조사 부원장보 등이 종검은 존치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는데, 이후 임기를 마치기 전에 조기 퇴임 의사를 밝혔다.

정 이사장은 시장친화적 인물로 분류된다. 금감원이 시장조성자 증권사 9곳에 시장교란 혐의로 과징금 480억원을 부과한 적 있는데, 여기에 반대 의견을 낸 적도 있다. 시장조성자 과징금은 정 원장이 취임하기 전부터 진행됐던 사안이다.

시장조성자란 투자자들의 원활한 거래를 위해 매수·매도 양방향 호가를 제시하는 증권사인데, 당시 금감원은 시장조성자들이 거래량이 큰 대형주에도 호가를 내 시장을 교란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정 원장은 취임 후 “업계가 느끼는 부담이 과도해 보일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과징금 규모를 포함해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문제가 된 9개 증권사에 대해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경. /뉴스1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경. /뉴스1

신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임원을 상대로 전원 사표를 요구한 사례는 두 차례뿐이다. 2010년 김봉수 전 키움증권 부회장이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18명의 임원으로부터 사직서를 받아 9명의 사표를 수리했다.

김봉수 이사장이 취임하기 1년 전인 2009년 한국거래소는 독점 수입액이 총수입의 50%를 넘는 독점적 사업구조를 가졌다는 점과 이사장의 연봉이 공기업 기관장 평균(1억6000만원)보다 5배 많은 8억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방만 경영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그해 한국거래소는 공공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에 김봉수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인력 10%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안을 내놨고, 그 일환으로 임원 전원에게 사표를 받았다.

2016년엔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본부장보 전원에게 사표를 받았고, 14명 중 8명을 퇴임시켰다.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이유로 본부장보 정원을 15명에서 10명으로 줄이기도 했다.

정 이사장이 파격적인 인사를 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감원 때는 정 이사장이 전임 원장인 윤석헌 금감원장과 결이 달라 임원들에게 사표를 요구했다”면서 “이번에는 전 이사장인 손병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과는 결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 이사장은 이달 15일 취임식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지원을 한국거래소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거래소 내 기업 밸류업 관련 전담 조직을 상설화하겠다”며 “기업의 밸류업 노력이 중장기적인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공매도 전산화를 지원하고 불법 공매도 감시 체계를 강화하겠다”며 “토큰증권발행(STO) 등 신종증권시장, 기업성장집합기구(BDC) 등 효율적 자금 중개를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도입해 글로벌 경쟁력 기반을 확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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