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최민식의 말맛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적중률 100%, 대배우의 위트란 그런 것이었다. 

영화 ‘파묘’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배우 최민식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지난 22일 개봉한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다. 영화 ‘사바하’, ‘검은 사제들’을 연출해 오컬트 장르의 한 획을 그은 장재현 감독이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배우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이 호연한다. 2024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파묘’는 개봉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시들해진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게 웬일인가 싶다.(웃음) 천지신명이 우리 영화를 도와주시는 거 같다. 장재현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출연한 작품이다. 그가 어떤 의도로 이 작품에 접근하려는지 지켜봤다. 종교와 땅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다. 촬영을 하면서 펑펑 울기도 하더라.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감독과의 작업이었다. 작품을 두고 호불호가 나뉜다고 해도 노 프라블럼, 문제없다.”

■ “김고은이 굿하고 우리는 떡이나 먹었지.(웃음)”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꼼꼼함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전작 두 편과 마찬가지로 디테일이 상당하다는 평이 잇따르고 있다.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을 깊이 있게 녹이는가 하면, 후반부에 등장하는 ‘험한 것’의 정체도 뿌리 깊은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 이를 찾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촬영 전 장재현 감독이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정서가 참 마음에 들었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에서 보여줬듯 장재현 감독은 신과 인간의 관계, 자연, 종교를 다루는 데 있어 확장된 시야를 갖고 있다. 여기에 만듦새도 대단하다. 형이상학적인 요소들을 영화적으로 재미있게 구현한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친근함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몸이 많이 아팠는데, 사주에서 오래 못 살 운명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병원이 아닌 산으로 가셨다. 거기에서 몸이 나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런 정서 속에 살아서 그런지 우리 영화가 말하는 것들이 낯설지 않았다.”

극중 최민식은 땅을 찾는 풍수사 ‘상덕’으로 변신했다. 누울 자리를 봐 달라는 부탁을 들으면 일단 단가부터 계산하지만, 자연과 땅에 대한 철학만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인물의 서사를 완성도 있게 그려냈다. 최민식은 극을 이끄는 핵심 인물로 분해 긴장감을 자아내는 동시에 러닝타임 안에서 쉬어가는 요소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말맛이 살아있는 재치 있는 대사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김고은 배우가 굿하고, 우리는 떡이나 먹었다.(웃음) 40년간 풍수지리사로 살아온 양반을 내가 어떻게 연기하겠나. 책을 보고 따라 한다고 해도 만들어지지 않는 거다. 다만 ‘상덕’이 평생 자연을 보면서 산 사람이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등산을 해도 일반 등산객처럼 산을 바라보진 않을 거 같았다. 캐릭터가 갖고 있는 시선에 주안점을 두고 연기했다. 애드리브? 모두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였다. 시사회에서 내 대사에 웃음이 터지는 걸 보고 흐뭇했다. 이걸 내가 살렸구나 싶었다.하하. 슬픔 속에 웃음이 있고, 유머 속에도 슬픔이 있는 게 인생이다. 그런 멋진 대사를 준 장재현 감독에게 고맙다.”

■최민식이 대배우인 이유

최민식에게 ‘파묘’는 특별하다. 데뷔 이후 35년 만에 처음으로 도전한 오컬트 장르이기 때문이다. 앞서 장재현 감독은 인터뷰에서 “그동안 최민식 배우가 다양한 연기를 했지만, 겁먹고 두려워하는 표정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연출자로서 최민식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이끌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기 인생 최초로 귀신과 사투를 벌인 소감은 어땠을까. 

“실제론 안 싸우고 도망갔을 거 같다.(웃음) 사실 연기하기는 더 쉬웠다. 야구로 치면 직구로 연기하면 됐다. 상덕이 몰입하는 데 있어 ‘험한 것’의 존재가 도움을 많이 줬다. ‘험한 것’으로 분장한 배우가 고생이 많았다. 촬영 6~7시간 전부터 분장을 받았다. 그런데 군소리 하지 않았다. 후반부에서 ‘험한 것’과 마주보고 있을 때, ‘네가 참 고생이 많다’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파묘’의 기대 포인트 중 하나는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다. 최민식을 필두로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이 각각 풍수사, 장의사, MZ세대 무당으로 분해 연기 차력쇼를 펼친다. 균형을 바탕으로 한 호흡은 네 배우를 모두 빛나게 만들었다. 개봉 이후 배우들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는 실관람객들의 후기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들을 가리켜 ‘묘벤저스’라는 별칭이 생기기도 했다.

“유해진 배우와는 오랜 시간 많은 작품을 함께했다. 얼굴만 봐도 기분을 알 정도다. 김고은, 이도현 배우와는 첫 호흡이었다. 잘 알지 못해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두 배우 모두 넉살이 좋고 순수하다. ‘묘벤저스’로 거듭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런 후배들과 작업을 한다는 건 내게도 좋은 경험이다. 김고은 배우는 ‘파묘’의 손흥민이고, 이도현은 김민재 선수였다.하하. 아무리 내가 까불어봤자 김고은 배우의 대살굿을 이길 수가 없다. 연기할 때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게 쉽지 않다. 김고은 배우는 그걸 해냈다. 너무 대견하고 기특한 후배다.”

1989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로 데뷔해 영화 ‘쉬리’, ‘명량’,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 매 작품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실감 나게 연기한 최민식. 자타공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배우’다. ‘올드보이’를 함께한 박찬욱 감독은 최민식을 두고 “배우라는 직업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35년간 연기라는 외길을 걸어온 최민식에게 지난 시간을 물었다. 

“최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왔다. 신구 선생님에 피하면 나는 아직 핏덩이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내 경력을 내가 꿰뚫고 있으면 안 된다. 경력에 주저앉으면 망한다. 미술, 음악, 연극 등 모든 분야에서 한 획을 긋고 있는 분들을 보면 나이를 막론하고 항상 청년이다. 나는 앞으로 하고 싶은 연기가 많다. 점점 더 의욕이 생기고 있다. 연기라는 게 허구이지만, 내가 아직 만져보지 못한 세상이 더 있을 거 같다. 나름 유명한 작품에 출연했다고 해서 이 세상을 다 아는 건 아니다. 내 인생도, 작품도 한정돼 있다. 지금까지 겪은 영화적 세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러니 못해보고 죽는다면 얼마나 아쉽겠나.(웃음)”

최민식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영화 ‘파묘’는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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