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사 간 싸움인데 왜 피해는 직원들이 봐야 하나요'…'무급휴가' 통지에 우는 보건의료 종사자
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 등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의사 간 싸움인데 왜 피해는 직원들이 봐야 하나요'…'무급휴가' 통지에 우는 보건의료 종사자
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의료진이 장비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제가 다니는 병원이랑 와이프가 다니는 병원에서 모두 무급휴가를 쓰라는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아직 안 쓰고 버티고 있지만 병원에서 주는 눈치가 보통이 아니네요. 아이 둘을 키우는 가장인데 무급휴가를 쓰면 어떻게 생활을 유지할지 막막합니다.”(상급종합병원 관계자 A씨)

“왜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보건의료인력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지 답답해요. 의사와 정부 간 싸움인데 정작 피해는 현장에 남아 있는 나머지 직원들만 보고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상급종합병원 관계자 B씨)

전공의들의 집단이탈이 21일째에 돌입했다. 상황이 종료될 기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장기화하면서 경영에 타격을 입은 전국 병원 곳곳에서 직원들에게 무급휴가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내면서 보건의료 업계 종사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주요 병원이 본격적인 축소경영에 돌입하면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나 사무·보건·기술직 등은 무급휴가를 써야 할 처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경희대병원이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서울시내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환자가 줄어들다 보니 병원이 입는 매출 타격이 상당하다”며 “무급휴가 신청을 받는 병원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상당수 병원을 무급휴가 신청 접수와 함께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연차휴가 사용도 독려하고 있다.

서울시내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 A씨는 “병원 총무쪽에서 ‘당장 병원 문을 닫게 생겼는데 무급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직원들은 이기적인 게 아니냐’라고 눈치를 주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주기적으로 몇 년에 한번씩 의사파업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 선뜻 무급휴가를 신청했다가 또 다른 비상경영 상황이 발생하면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인력에게 희생을 강요할 것 같아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인력의 경우도 본인이 많은 업무에 따라 상황이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정부가 전공의들의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동안 법적 근거가 없었던 진료보조(PA) 간호사를 ‘전담간호사’로 호명하고 업무 기준도 제시하는 등 합법화의 물꼬를 터줬지만 이들에게 업무 부담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한쪽에서는 ‘무급휴가’를 써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업무량 과다로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위원장은 지난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통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의사들 간에 지금 강대강 싸움을 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환자나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엄청나게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북대병원 노동조합은 지난 8일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이후 내원 환자 수가 줄었단 이유로 병원 측이 무급휴가 지침을 내릴 경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조중래 분회장(노조위원장)은 “서울대병원이 간호사 무급 휴가 제도를 시행한 만큼 경북대병원 분회는 선제적으로 병원 측에 임단협 합의서상 병원의 ‘귀책 사유’로 휴업하면 휴업수당을 줘야 한다는 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장이 현 상황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우고 있지 않고 반응도 없다”며 “일종의 방조를 하고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개별 병원들의 병동통폐합이나 무급휴가 지침하달 등에 대해 이렇다 할 개입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도 비상경영체계 운영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에서 병원과 일반 보건의료노동자들 간 노동현장에 섣불리 개입했다가 정부를 향한 화살이 거세지며 의료개혁 추진동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 8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지금 병원들이 환자 수가 줄다 보니까 재정적인 압박을 느끼고 그것을 타개하는 하나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강요가 되어서는 곤란하고 재정이 어렵더라도 기본적인 근로관계는 존중되는 범위 내에서 운영돼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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