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사랑국민연합’은 지난 9일 오후 3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3‧1절 105주년 나라사랑구국기도회’가 개최했다. 한정수 나라사랑국민연합 대표회장, 홀리씨즈교회 서대천 담임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총회 유지재단 이사장인 정영근 목사, 서울장신대 총장을 지낸 민경배 연세대 명예교수, 백성기 포항공과대학교 전 총장, 서울장신대학교 총장을 지낸 안주훈 목사의 기도, 이재윤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를 비롯해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나라사랑국민연합
‘3‧1절 105주년 나라사랑구국기도회’가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나라사랑국민연합’은 지난 9일 오후 3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3‧1절 105주년 나라사랑구국기도회’를 개최했다고 10일 밝혔다. 

김다니엘 목사(나사원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예배는 홀리씨즈교회의 히즈네이션 찬양단의 찬양, 서울장신대학교 총장을 지낸 안주훈 목사의 기도, 이재윤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의 성경봉독, C.U.U 예술대학원장 나경화 교수의 특송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홀리씨즈교회 서대천 담임목사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전능한 손이 대한민국을 도우신다’라는 제목으로 성경 에스라 8장 21-23절 말씀을 전했다. 

서 목사는 “우리 삶에 생명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분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며 “이스라엘 지도자 에스라는 가장 확실한 왕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 금식을 선포하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울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선포하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다”고 전했다. 

이어 “에스라는 자신의 민족과 나라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하나님이 있음을 알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고 살릴 수 있는 능력은 바로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았다”며 “에스라가 이 나라와 민족을 지키고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모든 유다 포로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기도회를 페르시아(지금의 이란)땅 아하와 강가에서 회개와 하나님을 간구하는 기도를 하게 했다”고 말했다.

서 목사는 “에스라는 자신보다 이 민족을 더 사랑하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구하도록 금식을 선포했다”며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함을 회개하고 이 민족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게 해달라고 간구했을때 응답받았던 것처럼 우리는 풍전등화에 처해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에스라처럼 기도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불러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 이 시간 대한민국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간절히 간구하자”며 “이 나라가 어둠과 혼란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대한민국을 붙잡고 계시며, 우리 대한민국은 절대 넘어지지 않으며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나라사랑국민연합’은 지난 9일 오후 3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3‧1절 105주년 나라사랑구국기도회’가 개최했다. 홀리씨즈교회 서대천 담임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 사진=나라사랑국민연합
이스라엘 지도자 에스라 등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은 제2의 출애굽을 의미한다. 

성경의 에스라서는 비록 이스라엘(남유다) 백성이 범죄해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지만 연단의 기간을 거친 후 반드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예레미야 29:10-14)이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의 2차 포로귀환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이스라엘 민족의 훌륭한 지도자였다. 그는 율법에 능한 서기관이요 학식이 많고 신실한 사람으로 페르시아 왕궁에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되고 포로로 잡혀간 이후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 의해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전 587년 느부갓네살의 통치하에 있던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그들은 유다의 지도자를 살해하고, 성전을 약탈한 후 불을 질러 완전히 훼파했으며, 성벽을 포함한 성읍 대부분을 파괴했고, 예루살렘 백성의 수확물 중 가장 좋은 것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 거기서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져 주시고 이스라엘을 회복해 주시길 늘 소망하면서 수십년을 포로로 살았다. 

그들의 소망은 주전 539년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정복했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그 후 머지않아 고레스 왕은 자기 왕국에 있는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라는 칙령을 내렸다.

‘나라사랑국민연합’은 지난 9일 오후 3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3‧1절 105주년 나라사랑구국기도회’가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서대천 목사가 홀리씨즈교회의 히즈네이션 찬양단과 함께 찬양을 인도하고 있다. / 사진=나라사랑국민연합
이날 전은정 목사(나사연 본부장) 사회로 나라사랑을 위한 구국기도회가 진행됐다. 나라사랑구국기도회에는 △나라의 안정과 대통령을 위하여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을 위하여 △선교사들과 세계선교를 위하여 △기독교기관과 대표들을 위하여 △예배회복과 교회성장을 위하여 △나라사랑국민연합(나사연), 나라사랑원로회의(나사원)의 발전을 위하여 라는 제목으로 합심기도회를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총회 유지재단 이사장인 정영근 목사, 서울장신대 총장을 지낸 민경배 연세대 명예교수, 백성기 포항공과대학교 전 총장, 심태섭 총장(Creative University of California)의 격려사와 한정수 나라사랑국민연합 대표회장(일문교회 당회장)의 인사말 순으로 진행됐다. 

올해는 3․1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105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온 국민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자유와 독립을 외친  항일독립운동이다. 또한 3․1독립운동은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독립선언서에는 기독교적 사랑, 평화, 정의, 자유가 담겨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독교지도자들은 죽음도 불사하고 3․1독립만세운동의 선봉에 섰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된 3․1독립운동은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는 자주독립운동으로 숭고한 민족정신의 자랑스런 역사이다. 

3․1독립운동은 주권이 국민 전체에 있는 자유민주공화국의 초석이었다. 기독교는 한국근대사, 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광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께서 풍전등화에 놓여있는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가 있었다. 그 당시 전체 인구의 1.3%만이 기독교인구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1독립운동 민족지도자 33인 중에 16명의 기독교 목사·장로 등 기독교지도자들이 한알의 밀알이 되어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민족대표 독립선언도. 민족대표들은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갖고 세계 만방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했다. 이로써 거족적 3·1운동이 점화됐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제국주의 탄압의 시대에 기독교의 역할은 지대했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장로), 일제치하에 한성재판소 검사 시절 사형이 불가피한 청년 이승만을 도왔던 함태영 부통령(목사), 새마을운동의 근간이 된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한 서효근 목사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한민국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생애와 정치 역정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관객 110만명이 넘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했다. 

‘건국전쟁’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미국에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경고하는 등 벌인 외교 독립투쟁, 젊은 시절 독립운동,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 해방 후 한반도 공산화를 저지한 총선거, 건국과 6·25 전쟁,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을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협회에 참여했던 이승만은 젊은 나이에 한성감옥에 투옥됐으며 그후 탈옥했다. 이승만은 다시 체포되어 탈옥을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처음으로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그당시 함태영 한성재판소 검사는 사형이 불가피한 청년 이승만을 도왔으며 결국 독립협회의 개혁운동에 동감하고 있던 함태영 검사는 “이승만을 비롯한 유망한 청년들에게 사형은 부당할 뿐더러 가볍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파면을 당하고 말았다. 

훗날 함태영은 1919년 3·1운동의 주도 인물로 체포되어 투옥된다. 엄중한 조사와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최고형인 3년형을 언도받았다. 1919년 7월 서대문형무소 투옥후 1921년 12월 23일 투옥된 지 2년 만에 가출옥으로 석방된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1921년 12월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후 목사가 된다. 

함태영 목사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목회자요, 신학사상가, 정치지도자였다. 특히 사형선고 받은 청년 이승만을 구해준 함태영 목사가 이승만 대통령 재임시절 1952년 제3대 부통령으로 취임했다. 

서대천 목사의 선친 서효근 목사는 함태영 부통령의 비서를 지냈다. 함태영 부통령의 영향을 받아 고통과 고난으로 방향을 잃은 어려운 농촌을 살리기 위해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해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서효근 목사는 함태영 부통령의 비서를 지내면서 주일날 청년들을 지도했던 새문안교회 전도사였다. 그 당시 새문안교회에서 강사로 오게 된 김용기 장로를 만나 ‘농촌계몽을 통해 농촌을 변화시키자. 농촌이 잘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는 것을 서로 공감하며 6·25전쟁 후 폐허가 된 농촌을 살리는 운동에 매진했다. 

서효근 목사는 새마을운동의 근간이 된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후 어려운 농촌 현장으로 사역지를 옮겨 교회를 개척하며 농촌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가난하고 힘든 농촌의 7개 교회를 개척 등을 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나라사랑국민연합’은 지난 9일 오후 3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3‧1절 105주년 나라사랑구국기도회’가 개최했다. 이날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나라사랑국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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