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 지주사 분할로 사실상 계열분리 수순

부친 별세로 ‘한 지붕 두 가족’ 유지 명분 사라져

조현준 회장, 부친 유산 지분교환 재원으로 활용할 듯

1981년 효성-한국타이어 계열분리 상황 재현

조현준 효성 회장(왼쪽)과 조현상 효성 부회장. ⓒ효성 조현준 효성 회장(왼쪽)과 조현상 효성 부회장. ⓒ효성

29일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오너 일가의 그룹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다. 재계에서는 이미 지난달 효성 이사회에서 지주회사 인적분할을 결의하는 등 사실상 장남 조현준 회장과 3남 조현상 부회장이 각각 이끄는 두 회사로의 계열분리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형제간 경영권 분쟁 등 혼란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조 명예회장이 보유했던 효성 지분이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만큼 유족들간 협의를 통해 지분을 포함한 유산 상속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는 게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 효성의 주주구성은 조현준 회장 21.94%, 조현상 부회장 21.42%로 비등하게 1·2대 주주에 올라있다. 여기에 조 명예회장 보유지분이 10.14%로 세 번째로 많다.

조 명예회장의 부인인 송광자 여사가 0.48%를 보유하고 있고, 조 명예회장의 손자‧손녀 등 조씨 일가가 각각 0.1% 내외씩 도합 0.7% 수준을 쥐고 있다.

효성 일가는 이미 한 차례 내분을 겪은 바 있다. 조 명예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 형제들과 마찰을 빚고 회사를 떠났다.

조 전 부사장이 보유 지분을 모두 팔고 효성과 사실상 연을 끊으면서 경영권 다툼까지는 번지지 않았지만, 2014년 7월부터 형 조현준 회장과 주요 임원진의 횡령·배임 의혹 등을 주장하며 고소·고발해 ‘형제의 난’을 촉발했다. 조 회장도 조 전 부사장이 자신을 협박했다며 2017년 맞고소해 법정 공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전례가 있었던지라 재계에서는 효성에 남은 1남과 3남,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 사이의 경영권 다툼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둘이 보유한 지주사 지분 규모가 비슷한데다, 경쟁적으로 주식을 사들이며 그런 우려는 더욱 증폭됐다.

그런 상황에서 일종의 제어판 역할을 하던 게 조 명예회장의 지분이었다.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더라도 조 명예회장이 한쪽에 힘을 실어주면 싱겁게 끝날 상황이었기에 역설적으로 분쟁을 억제하는 요인이 됐다.

분할 전후 지주회사 체제. ⓒ효성 분할 전후 지주회사 체제. ⓒ효성

이런 가운데 조 명예회장 별세를 한달여 앞두고 지주사 효성의 인적분할 작업이 개시됐다. 효성첨단소재를 중심으로 6개사에 대한 출자 부문을 인적분할해 신규 지주회사 ‘효성신설지주(가칭)’을 설립하는 내용으로, 분할 뒤 존속회사는 조현준 회장이 이끌고, 신설회사는 조현상 부회장이 이끄는 구상이다.

일단은 효성그룹의 울타리 내에서 두 형제가 사업부문을 둘로 나눠 독립경영에 나서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재계에서는 이번 지주사 분할을 계열분리 작업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기업 자체를 분리해 경영권 분쟁 여지를 없애려 한다는 것이다.

다만, 완전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두 형제간 지분교환이 필요하다. 조 회장과 조 부회장은 분할 이후 존속회사와 신설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기존과 동일하게 21.94%, 21.42%로 유지한다. 각각의 기업집단을 온전하게 지배하려면 조 회장은 조 부회장으로부터 존속회사 지분을 넘겨받고, 조 부회장은 조 회장으로부터 신설회사 지분을 넘겨받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걸림돌은 신설회사의 분할비율이다. 존속회사 0.82대 신설회사 0.18로 분할비율이 4대 1에 달해 단순 지분교환은 불가능하다. 조 회장이 조 부회장에게 추가로 상당 규모의 현금을 지불해야 두 형제가 서로의 기업집단으로부터 완전히 손을 뗄 수 있다.

조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남긴 10.14%의 효성 지분은 계열분리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10.14% 의 지분 자체만을 법정 상속분대로 나눌 경우 고인의 부인인 송광자 여사에게 3.38%, 조현준‧현문‧현상 형제에게 각 2.25%씩 돌아간다. 유족들이 이 비율로 지분을 나눠가질 경우 송 여사는 기존 보유지분 0.48%를 더해 총 3.85%의 지분으로 과거 조 명예회장이 했던 조정 역할을 이어받을 수 있다.

다만 조 명예회장의 재산이 효성 지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족들이 합의해 지분과 현금 부동산 등을 오너 일가의 기업 지배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배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물론 회사를 떠난 조현문 전 사장은 예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 회장도 선친이 별세했을 당시 다른 유족들이 고인의 유산 중 그룹 지배구조상 핵심 계열사 지분을 몰아주면서 총수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효성의 경우 이미 두 형제가 보유한 지분이 경영권 방어에 큰 우려가 없을 정도로 높은 상태라, 상속 지분을 특정인에게 몰아줄 필요는 없다. 다만, 조현준 회장의 경우 동생인 조현상 부회장과의 계열분리를 위한 지분교환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재원을 고인으로부터 받은 유산을 통해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국, 조 명예회장의 별세가 명분 측면에서나 현실적으로나 조현준-현상 형제의 연결고리를 약화시켜 효성의 계열분리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재계 예상이다.

효성 창업자인 고 조홍제 회장도 1981년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장남인 조석래 명예회장에게는 효성을, 차남 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 명예회장에게는 한국타이어를, 삼남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에게는 대전피혁을 각각 물려줬다.

효성과 한국앤컴퍼니그룹은 타이어코드-타이어로 이어지는 소재-제품 공급망에서 핵심 파트너이며, 최근에도 재활용 PET 타이어 사업에서 협업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분할 후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화학을 이끄는 조현준 회장과 효성첨단소재를 중심으로 신사업 분야를 이끄는 조현상 부회장 역시 완전한 계열분리가 이뤄진 뒤에도 건강한 협력 관계를 이어갈 여지는 충분하다. 창업 2세대에 이어 3세대 역시 순탄한 계열분리와 그 이후의 공존을 기대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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