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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29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쳐갑니다. 병원에서 진료를 못 본다고 합니다. 치료가 늦어져 암세포가 자꾸 커지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이탈한지 41일차인 31일 분당서울대병원 1층에서 만난 장모씨(46·여)는 7번째 항암치료를 위해 방문했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다. 유방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인 장씨는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의료대란 사태로 치료가 늦춰지면서 자포자기한 상태”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의료대란 장기화로 곳곳에서 후유증이 발생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의 진료 축소 러시에 응급진료를 거부당한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잇따르는 등 환자 피해는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30일 오후 4시 30분께 충북 보은군 보은읍 도랑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생후 33개월 여자 아이가 상급종합병원 이송을 거부당한 끝에 숨졌다. 구조 직후 긴급 수술이 필요했지만, 충북과 충남지역, 경기도 등 상급종합병원 5곳에서 모두 전원 요청을 거부당했다. 결국 아이는 심정지 상태에 빠지면서 이날 오후 7시40분께 숨을 거뒀다. 지난 27일 부산에서 90대 할머니가 대학병원 전원을 문의했으나 진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울산까지 옮겼으나 끝내 사망한 사건이 알려진지 3일 만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부산 할머니 사망사건은 이번 전공의 이탈과 무관한 내용이라고 밝혔지만, 환자들의 우려는 갈 수록 커지고 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현재 암 재발환자, 경증 질환이 중증질환으로 악화된 환자들은 치료를 받아야 해 의사들이나 병원에 문제 제기를 못하고 있다. 환자들이 예민한 상황”이라며 “환자가 의사에게 가지고 있는 치료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중요한데 이번 사태로 이 신뢰가 깨지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정말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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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정원 증원 이슈가 사회적 블랙홀이 되면서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는 뒷전이 된 지 오래다. 정부는 면허정지 처분에 대해 ‘유연한 처리’를 모색하겠다며 의료계와 대화를 추진했지만,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핵심 의제에 대해서는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전공의들 이탈이 장기화되면서 의대교수들의 피로도도 한계를 넘어섰다. 의대교수들 외래진료, 수술 등 근무시간은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 이내로 줄이기로 했다.

의정 간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는 와중에 총선을 앞두고 당정 간에도 엇박자가 나면서 의료대란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반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2000명 증원을 재검토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2000명 증원 방침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환자들과 시민들은 협상테이블조차 차리지 못한 정부와 의사들을 향해 큰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한모씨(35·여)는 “살기도 어려워 죽겠는데 왜 파업하고 난리인지 모르겠고, 총선 앞두고 자기들끼리만 힘겨루기 싸움하고 있다”며 “애꿎은 시민들만 불편해 죽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모씨(32·경기도 안양)도 “정부와 의료계가 조속히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며 “이기적인 행동은 그만해야 할 때”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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