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엄민용 기자]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가 현실이 돼 가고 있는 지금, 기후변화가 시작되는 출발점이자 그 여파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종착역으로 극지가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 남극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하면서 극지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후 북극다산과학기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남극장보고과학기지 등 연구 기반과 거점을 넓혀 가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이런 가운데 올해는 극지 연구의 중심인 극지연구소가 설립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이에 그동안 우리나라 극지인들이 열정과 땀으로 거둔 어제의 성과들을 되돌아보며 미래의 숙제들을 정리해 본다. <편집자 주>

오늘날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동물은 무엇일까?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곤충·거미·갑각류 같은 절지동물이다. 이들은 지구의 거의 모든 서식지에 살며 지구상 120만 종의 동물 중 100만 종 이상을 차지한다. 개체수로도 다른 종을 압도하며, 형태학적·생태학적 다양성이 뛰어나다. 게다가 절지동물은 캄브리아기부터 오랜 시간 살아왔기에, 이들의 진화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지구의 진화 속도와 방식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가운데 극지연구소와 국제공동연구팀은 지난 2018년 그린란드에서 발견한 화석을 분석해 5억 2,000만 년 전 지구에 살던 원시 절지동물 ‘케리그마켈라(Kerygmachela)’의 두뇌가 어떤 구조였는지 규명하는 성과를 올렸다.

화석의 보물창고, 시리우스 파셋

세찬 얼음바람과 척박한 땅,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북그린란드. 그러나 이곳에도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온도가 따뜻해 나비가 날고 버섯이 자라는 시리우스 파셋(Sirius Passet)은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아 과거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게다가 발에 챌 정도로 화석이 많은 ‘보존형 화석 산지’이기도 하다. 화석 연구자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보물창고 같은 곳이지만, 멀고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땅인 데다 연구장비 등도 많이 필요하다 보니 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 그동안 시리우스 파셋의 연구는 미진한 채로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시리우스 파셋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방문연구가 어려운 때도 있었으나, 힘든 여건 속에서도 매년 시리우스 파셋에 캠프를 설치해 고생물을 연구하는 세계 유일의 연구팀이다. 화석 산지 현장은 해발 300m의 산 중턱에 있어 가파르고 접근이 쉽지 않지만, 연구진은 훌륭한 화석 표본이 나오면 어려움을 싹 잊는다고 입을 모은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리우스 파셋의 화석은 캐나다의 버제스 셰일, 중국의 청장 등 다른 캄브리아기 화석 산지에서 발견된 화석보다 내장기관, 근육조직, 신경 등 동물의 부드러운 부분까지 화석화돼 잘 보존된 경우가 많아 연구 가치 또한 매우 높다.

시리우스 파셋(사진 극지연구소)
시리우스 파셋(사진 극지연구소)

화석에 숨어 있는 캄브리아기의 비밀

캄브리아기는 약 5억 3880만 년 전부터 4억 8,500만 년 전까지의 시기로, 골격을 가진 생명체가 지구에 처음 등장한 시기다. 캄브리아기 이전의 생물은 단순한 단세포 또는 작은 다세포 유기체가 대부분이었으나 캄브리아기 초기를 지나면서 오늘날 캄브리아기 생물 대폭발(Cambrian Explosion)이라고 불리는 폭발적인 생물 진화로 인해 다양하고 복잡한 생물들이 등장하게 됐다. 고요한 바닷속에서 거대한 생명의 파도에 휩싸인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었을 듯하다.

이때 등장한 생물 중 한 종류가 엽족동물이다. 엽족동물은 마디가 없는 다리를 지닌 벌레 형태의 동물로, 캄브리아기 때 번성하다가 지금은 멸종했다. 엽족동물은 단순한 아메바 형태의 생물이 아니라 협력하는 다리와 좌우 대칭, 소화관, 살아가는 데 적합한 행동을 가진 다세포 동물로, 계통상 현재의 완보동물이나 절지동물의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5억 년 전의 일인 만큼 이 시기의 진화를 연구할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특히 뇌와 기타 연질부는 기본적으로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 화석에 이런 구조가 남는 일은 극히 드물고, 따라서 해당 기관이 어떻게 진화됐는지 이해하는 것 또한 힘들다. 그렇기에 시리우스 파셋에 있는 수많은 캄브리아기의 화석은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EPMA 장비로 본 케리그마켈라 화석(사진 극지연구소)
EPMA 장비로 본 케리그마켈라 화석(사진 극지연구소)

5억 2000만 년 전 생물의 ‘두뇌 진화’를 규명하다

2018년 극지연구소와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 영국 브리스틀·더럼대학교, 옥스퍼드 자연사박물관 등으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팀은 시리우스 파셋에서 발견한 ‘케리그마켈라’ 화석을 분석해 머리 구조를 규명했다고 밝혔다.

케리그마켈라(사진 극지연구소)
케리그마켈라(사진 극지연구소)

엽족동물인 케리그마켈라는 11쌍의 지느러미와 둥근 머리, 긴 꼬리 가시를 가졌으며, 11쌍의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헤엄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입은 원뿔 형태를 하고 앞을 향하고 있으며, 절지동물 진화의 뿌리쯤에 있는 원시 조상으로 여겨진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절지동물의 앞쪽 마디신경이 융합돼 뇌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했으나, 자세한 뇌의 진화 과정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다. 연구팀은 분석을 거쳐 앞마디의 신경으로 이루어진 케리그마켈라의 두뇌 형태를 확인하고, “현생 절지동물의 두뇌가 가장 앞마디의 신경에 뒷마디의 신경들이 융합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절지동물의 특징인 ‘겹눈’의 기원도 밝혔다. 케리그마켈라의 화석에서 겹눈의 형태를 확인한 것이다. 지금까지 절지동물의 눈은 두 번째 마디의 다리 끝에서 생겨났다는 설과 머리 표면에 붙어 있는 홑눈들이 모여 점진적으로 생겼다는 설이 있었는데, 이 연구로 원시적인 형태의 겹눈이 확인되면서 점진설이 힘을 얻게 됐다.
극지연구소의 박태윤 책임연구원팀이 제1 저자 및 공동 교신저자로 연구를 주도했으며, 연구 결과는 과학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되는 성과를 올렸다.

원시적인 형태의 겹눈 확인(사진 극지연구소)
원시적인 형태의 겹눈 확인(사진 극지연구소)

지구의 숨겨진 과거를 찾아가는 낭만적인 여정

화석은 생물의 진화와 멸종의 역사, 과거 지구의 환경이 어땠는지에 대한 과학적 실마리와 통찰력을 제공한다. 우리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면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하고, 지질학적으로 지구의 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야 한다. 인류는 화석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쌓았다. 이러한 지식은 단순한 화석 발견뿐만 아니라 해당 생물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며 축적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온난화, 기상이변, 여러 생물의 멸종 등 급격한 지구의 환경변화를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눈앞의 문제에만 급급해할 것이 아니라 거시적·통시적으로 지구를 바라보아야 한다. 기나긴 시간 동안 무수한 변화를 겪은 지구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우리가 처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아낼 수도 있다. 화석 연구는 지구의 숨겨진 과거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인류의 힘찬 탐험이다. 앞으로 화석 연구를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이유다.

문화뉴스 / 엄민용 기자 margeul@mhn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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