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유튜브 채널 '워크맨' 영상 캡처
사진=유튜브 채널 ‘워크맨’ 영상 캡처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교실 내에는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돕니다. 학생들은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며 선생님의 눈치를 봅니다. 한발이라도 더 앞서기 위해 미리 책상 밖으로 살짝 다리를 빼놓는 학생도 보입니다. 그리고 고대하던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학생들은 한마음으로 급식실로 달려갑니다.
 
학창시절 기억을 되살려보면 너무나 익숙한 장면들입니다. 성인들 중에는 “그때가 좋았어”라며 친구들과 함께 급식을 먹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진=서울 서초구 Y 중학교 홈페이지
사진=서울 서초구 Y 중학교 홈페이지

학교 급식은 성장기인 학생들의 건전한 심신 발달과 식생활 개선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1년 학교급식법을 제도화한 이후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집단 급식을 실시하고 있는데요. 학교급식의 영양관리 기준도 엄격히 마련돼 있어 한국 학교의 급식은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편입니다. 일본, 몽골, 캄보디아 등 해외 각지에서도 우리의 공공급식 정책을 벤치마킹하고자 한국을 찾곤 합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우리 급식정책에 최근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다양한 반찬으로 꽉 차던 아이들의 급식판에는 하나둘 빈 곳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요. 서울 서초구의 한 중학교에서는 김치를 제외하고는 반찬 하나만이 제공돼 부실 급식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선망이 대상이던 K-급식이 갑자기 흔들리게 된 건 왤까요?

사진=서초구 맘카페 캡처
사진=서초구 맘카페 캡처

텅 비어버린 급식판…조리원 구인난이 원인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온라인 맘카페에는 ‘OO중 아이들은 걸식 아동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습니다. 중학생 자녀를 둔 A씨는 아들이 학교에서 받은 급식 사진을 공개했는데요. 이날 식단은 밥과 찌개, 김치를 포함한 반찬 2종과 유산균 음료가 전부였습니다. 이를 본 다른 학부모들은 “녹색봉사처럼 급식 봉사를 나가야 하나” “한창 잘 먹을 때인데 너무하다 싶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부실한 식단이 아이들에게 제공된 이유는 학교 급식실 조리종사원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해당 중학교는 인력 부족으로 급식 운영에 차질이 발생했다고 설명하며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학교 측은 대안으로 개인 도시락 지참, 학교 급식 3찬 운영, 외부 운반급식 도입 등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투표에서 학교 급식 운영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부실 급식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 학교의 경우 논란이 제기된 당시 단 2명이 1000명분의 음식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학교는 지난해 9월에도 같은 이유로 급식 식단표를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학교 측은 가정통신문 공지를 통해 교내 조리종사원 배치 인원 8명 가운데 4명이 조리가 불가능한 인력이라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평균 3~4개 정도로 구성된 반찬 가짓수는 모두 하나씩 줄어들었는데요.
 
부실 급식 논란은 비단 이 중학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서울시교육청에 의하면 지난달 1일 기준 강남·서초지역 학교의 조리원 결원율은 약 25%였습니다. 급식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조리원 100명 중 25명이 부족한 상태라는 의미인데요.
 
학교 급식 조리종사자의 퇴직률 및 신규충원율도 살펴볼까요? 지난해 공개된 17개 시·도 학교급식 종사자 퇴사 및 신규 채용 미달 현황에 따르면 근 3년간 퇴직한 조리 종사자의 수는 무려 1만4000명에 달했는데요. 2022년 한 해에만 전체 조리 종사자의 9%에 달하는 인원이 학교를 떠났습니다.
 
퇴직자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반면 충원 현장에서는 자꾸만 인원 미달이 발생하는데요. 서울 지역에서는 지난해 4월 647명의 학교 조리원을 새로 뽑으려 했으나 실제 채용된 인원은 316명으로 절반도 채 뽑지 못했습니다. 부산지역 또한 315명을 모집하려던 당초 계획과 달리 156명만을 채용했습니다.

학교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피해자가 국가 책임 손해배상청구소송제기 기자회견에서 증언을 하던 중 고개를 떨구고 있다./ 사진=뉴스1
학교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피해자가 국가 책임 손해배상청구소송제기 기자회견에서 증언을 하던 중 고개를 떨구고 있다./ 사진=뉴스1

급식실에서 조리사가 사라진 진짜 이유

급식실에서 조리원들이 점차 줄어들게 된 배경에는 조리업무 기피현상이 있습니다. 학교 조리 업무는 높은 노동 강도에 비해 임금 수준은 낮은데요. 힘들고 돈도 안 되는 일을 당연히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 조리실무사는 교육부 및 교육청 공통 급여체계 적용 직종 2유형에 속하는데요. 이들의 기본급은 198만6000원으로 월 200만원이 안 됩니다.
 
급여 수준이 최저임금과 맞먹는 데 비해 업무는 고강도입니다. 3~4시간 정도의 짧은 오전 시간 동안 소수의 급식 조리사는 최대 1000인분이 넘는 분량의 끼니를 만들어야 하는데요. 끓는 물과 고온의 불 등 안전상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은 조리실에서 촉박하게 일하다 보니 과로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또 중식 외에도 조식, 석식 등 하루 세끼를 모두 제공하는 학교의 경우 한 사람당 맡는 업무는 배가됩니다.
 
게다가 학교 조리사는 폐암 산업 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직업으로 꼽힙니다. 튀김이나 볶음 요리를 위해 고온의 기름을 지속해서 사용할 경우 ‘조리흄’이 발생하는데요. 조리흄은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연 또는 고농도의 미세먼지로 폐암 발병 주요 원인이 되는 발암물질입니다. 해당 물질이 사람의 호흡기에 들어가 체내에 흡수되면 세포를 파괴하고 장기에 염증을 일으킬 위험이 있습니다.
 
주로 학교의 지하층에 자리 잡은 급식실에서는 자연 환기가 어렵다 보니 일부러 조리흄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환기 설비를 마련해야 하는데요. 하지만 지난해 전국 학교 급식실 환기 시설의 97%가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급식실 노동자의 폐암이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건 지난 2021년이 처음입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학교 급식 조리사로 일하다 폐암 산업재해 승인을 받은 노동자는 113명에 달합니다. 또 동종 직군 종사자들의 폐암 검진 결과, 10명 중 3명 정도가 폐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학교급식실 폐암대책위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신학기 학교 급식실 결원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학교급식실 폐암대책위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신학기 학교 급식실 결원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힘들고 위험한 직업 특수성에 열악한 처우가 겹쳐지면서 학교 급식실난은 갈수록 가중되는 모습입니다. 학교급식실 폐암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근본적인 노동환경·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요. 대책위는 지난 3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대책위는 이 자리에서 급식실 결원이 초래할 상황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조리종사자 인력이 줄어들면 1인당 식수 인원이 증가하고 이는 발암물질인 조리흄의 1인당 노출 빈도를 높일 뿐 아니라 각종 사고와 산업재해 빈도를 높일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학교 급식의 질 저하는 물론 급식 제도의 근간마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손웅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이 서울 성북구 숭곡중학교 급식실에서 전국 최초로 시범 운영 중인 급식 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손웅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이 서울 성북구 숭곡중학교 급식실에서 전국 최초로 시범 운영 중인 급식 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조리로봇·급식실 지상화…교육청, 조리사 처우 개선안 제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교육청 당국은 급식 조리사들의 처우 개선에 나섰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먼저 학교 급식실에 조리 전문 로봇을 도입했는데요. 로봇이 조리 업무를 일부분 도맡는다면 급식을 대량으로 만들 때 발생하는 조리흄으로부터 조리사들의 건강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하게 이뤄진 사업입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과 함께 개발한 급식 조리 로봇은 지난해 8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숭곡중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학교에 지급된 총 4대의 로봇은 각각 볶음, 튀김, 국, 고기 등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로봇 배치 이후 조리흄 노출 시간이 90% 넘게 줄고 업무량도 절반 가까이 개선됐다고 합니다.
 
다만 로봇이 인력을 대체하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이 나옵니다. 조리로봇 도입이 급식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인데요. 

서울시교육청은 또 지하 또는 반지하에 자리 잡은 급식실의 개선책을 발표했습니다. 공개된 계획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의 지하 급식실 개선 사업은 학교 여건에 따라 △지상 이전 증축 △지상 이전 리모델링 △환기시설 개선 △수업료 자율학교 특별교부금 신청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눠 진행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2028년까지 서울지역 107개교의 지하 급식실을 지상으로 이전하거나 환기시설을 개선할 방침입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하 급식실 해소를 통해 조리 종사원의 폐 질환 예방과 학생·교직원의 쾌적한 급식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기 지역에서도 급식 조리 환경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한데요.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김옥선 의원이 발의한 경기도교육청 안전한 급식실 환경 조성 및 지원 조례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해당 조례안은 발의 당시 △급식실 환경 개선에 관한 사항 △급식종사자의 건강관리 지원에 관한 사항 △급식종사자 배치 및 처우개선에 관한 사항 △휴게시설 및 휴게시간에 관한 사항 외 총 9가지의 주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요. 
 
학교 급식실의 안전한 환경 조성을 교육감의 책무로 두는 것을 골자로 하는 조례안이 통과되면서 급식종사자의 근무 여건 개선을 위한 법적 근거가 처음으로 마련될 전망입니다. 김 의원은 “전국 최초로 급식실 환경개선 조례가 제정된 만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구체적인 개선 방향을 잡아갈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글: 법률N미디어 인턴 경예은
감수: 법률N미디어 엄성원 에디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