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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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서울대 출신 30대 남성 두 명이 로스쿨 후배 등 여성 수십 명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 사진을 수년간 텔레그램으로 제작, 유포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접근이 쉬운 졸업 사진과 SNS 프로필 사진 등을 활용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대 출신 남성들이 동문 여성을 상대로 불법 합성물을 제작한 뒤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유포하는 식으로 범행한 것을 일명 ‘서울대 N번방’ 사건이라고 부른다.

앞서 남성 박모(40)씨는 서울대 동문 여성 12명을 비롯해 6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1800여건의 합성 사진 및 영상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학교를 10년 이상 다닌 박씨는 피해자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등으로 합성 음란물을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가 유포한 영상은 무려 100건이다. 대부분의 영상들은 또 다른 서울대 동문인 공범 강모(31)씨가 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두 사람은 합성물 제작에 이어 합성물을 타인에게 유포하고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접근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경찰은 이들을 각각 지난달 11일과 지난 16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 처벌법) 위반(허위 영상물 편집·반포) 등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 

이번 사건은 고도화된 이미지·음성 합성 기술을 활용해 일상 사진만으로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대 김성규 교육부총장도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며 전국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많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지인으로부터 당하고 있었다. 지난 2022년 여성가족부의 성폭력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에게 촬영물이나 허위 영상물 등의 유포 피해 경험을 묻자, 여성 응답자 36%가 가해자는 ‘친구’였다고 답변했다. 직장 동료, 학교 선후배, 애인 등 지인이 가해자인 경우를 합치면 무려 84.1%였다.

성적 허위 영상물 수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법무정책연구원 ‘디지털 성범죄 대응체계 개선 연구’에서 언급된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로부터 제출받은 ‘성적 허위 영상정보 처리 현황’에 따르면 불법 성적 허위 영상물에 대한 시정 요구는 지난 2020년 6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총 9006건이었다.

방심위는 지난 2020년 6월 25일부터 불법 성적 허위 영상물에 대한 시정 요구를 진행해 왔는데, 심의 건수가 지난 2020년 473건에서 지난 2022년 3574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8월까지 진행된 성적 허위 영상물 관련 심의만 해도 3046건으로 집계된 반면 해당 기간 삭제된 영상은 410건으로 전체 심의의 약 4.55%에 그쳤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정문.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정문. [사진제공=뉴시스]

허위 영상물에 대한 대응도 부족한 상황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허위 영상물 제작·유포 혐의로 경찰에 신고된 경우는 지난 2021년 156건, 지난 2022년 160건, 지난해 180건으로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검거된 사례는 지난 2021년 74건, 지난해 2022년 75건, 지난해 93건으로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의 성폭력안전실태조사에서도 허위 영상물 피해를 당했을 시 남녀 전체 응답자의 50.4%, 여성 응답자의 30.6%가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경찰에 신고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중 11.1%에 머물렀고, 여성도 24.1%만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딥페이크 처벌법’으로 알려진 성폭력 처벌법 14조 2항은 특정인의 얼굴·신체·음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 등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영리 목적일 경우에는 7년 이하 징역으로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범죄 특성상 빠른 가해자 특정과 처벌 조항 적용이 어려워 수사가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서울대는 이번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직후 부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디지털 성범죄 예방 등을 위한 TF를 구성해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서울대는 지난 21일 입장문을 통해 “현재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며 향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구성원들이 더욱 경각심을 갖도록 예방 교육을 강화하겠다”며 “피해자 보호 및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대 TF는 지난 22일 첫 회의를 개최해 학생사회에 효과적인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 방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줄 것을 요청함과 동시에 성범죄 피해자를 법률적·심리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신고통로를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도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전날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서울대 N번방’ 사건 등과 관련해 “범죄자는 무관용 원칙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고 피해자가 큰 고통과 공포에서 벗어나게 세심한 배려와 지원을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국민의힘 정점식 정책위의장은 “디지털 성범죄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며 “범죄 양상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만큼 그에 맞춘 수사 역량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고 제도적 미비점도 신속히 보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8년 4월부터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디성센터)를 운영 중에 있다. 디성센터는 피해 촬영물 삭제 지원, 365일 24시간 상담, 수사·법률·의료지원 연계 등 의 형태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사용해 피해자의 얼굴이 합성된 음란 영상물을 탐지한 후 온라인 사업자에게 삭제를 자동 요청하는 시스템의 구축을 오는 2025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딥페이크 처벌법’이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선제적인 대응과 예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남대 경찰학과 이도선 교수는 본보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다수를 대상으로 할 확률이 높으며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등의 파급력은 매우 클 것”이라며 “단호한 형사제재가 절실하며 더 나아가 영리 목적이 아니어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관련 입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엄정한 수사와 기소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가 엄연한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며 “그 전에 초등학교부터 대학생까지 교육기관을 통한 지속적·주기적인 교육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다. 이 교수는 “경찰,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은 허위영상물, 합성물 등을 원천 차단시킬 수 있는 기술을 조속히 마련, 실행할 필요가 있다”며 “더욱이 피해자에게는 법률적·심리적 지원을 적극 해야 하며 담당 기관 등을 단일화해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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