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달째 2%대로 내려와 진정세를 보였지만, 농산물값은 꺽이질 않고 있다. 배는 전년 같은 달보다 126% 넘게 올라 197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고, 사과도 80% 이상 오르며 높은 오름세를 지속했다.

할당관세·세제 지원 등 농산물에 집중한 물가 정책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정부는 관세 인하 대상을 확대하고 기간을 연장하는 등 현행 물가 안정 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나섰다.

서울 시내 전통시장에서 배·사과 등이 진열돼 있다. /뉴스1
서울 시내 전통시장에서 배·사과 등이 진열돼 있다. /뉴스1

통계청이 4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로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 상승 폭이 2%로 둔화한 점도 고무적이다.

지난달 물가 상승을 주도한 건 농산물이었다. 농산물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9% 올라, 전체 물가 상승률에 0.69%포인트(p) 기여했다. 지난달(19%)과 상승 폭이 같았으며,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1년 전보다 ▲사과 80.4% ▲배 126.3% ▲토마토 37.8% ▲쌀 6.7% ▲고구마 18.7% ▲배추 15.6% 등이 급등했다. 전월과 비교하면 무가 14.6% 급등한 것이 눈에 띄었다.

5월 소비자물가 동향 중 품목성질별 등락률. /통계청
5월 소비자물가 동향 중 품목성질별 등락률. /통계청

정부는 국내 생산 과일 급등으로 물가가 잡히지 않자, 연초부터 수입 과일 확대로 물가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할당관세와 수입 부가세 면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적용해 값싼 수입 과일을 시장에 풀고, 국내 생산 과일의 수요를 대체하자는 것이다.

이런 대책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이날 바나나·파인애플 등 수입 과일 28종에 대한 할당관세를 ‘하반기’까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무에 대해선 신규로 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총 51종에 대해 할당관세가 적용되는 것이다.

정부의 구상처럼 수입 과일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바나나·파인애플 수입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한편 1~4월 관세 수입은 2조1000억원을 기록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1.6%나 감소했다. 하지만 농산물값은 여전히 고공행진이라, 비싼 과일들의 수요를 수입 과일이 대체해 실제 물가를 낮추는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부작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달 14일 ‘농·축·수산물 물가 동향 분석’을 통해 “할당관세를 통한 수입물량 확대 등 단기적·일시적 정책의 반복 시행은 생산자의 자율적 수급 조절 능력을 저하할 수 있으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농축산연합회도 “정부가 국가보조금과 할당관세로 단기 물가 안정에만 치중하는 것은 농민만 말려 죽일 뿐 근본 해법이 아니다”라는 성명을 냈다.

지난달 31일 오전 강원 홍천군의 한 배 재배 농가에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매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농장은 최근 과수화상병이 발생해 과원 전체를 폐쇄 조치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오전 강원 홍천군의 한 배 재배 농가에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매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농장은 최근 과수화상병이 발생해 과원 전체를 폐쇄 조치했다. /연합뉴스

물가당국은 최근 농가에서 확산하는 과수화상병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달 말 과수화상병 위기 경보 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해 특별 방제 기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과수화상병은 사과·배 등 장미과 과수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과수의 가지·열매·잎 등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검붉게 변한 뒤 죽어가는 세균성 전염병으로 확산 속도가 빠르다.

기재부 관계자는 “과수화상병·조류인플루엔자(AI) 등에 대응해 방제·방역을 철저히 하는 등 농·축·수산물 물가 안정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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