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6일 제6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평화는 굴종이 아니라 힘으로 지키는 것”이라며 대북 협상보다는 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평화를 논하기 전에 대북 전단과 오물 풍선이 서로를 향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관리가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6일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는 대북전단 20만 장을 북쪽으로 날려보냈다며 이 과정에서 경찰의 제지는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새벽 0~1시 사이에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애드벌룬 10개를 이용해 전단을 살포했으며 전단 외에 가요 등을 담은 이동식저장장치(USB)도 넣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한 공지에서 “확인해 드릴 내용은 없다”며 “정부는 유관기관 간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상황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단 등 살포 문제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23.9월)의 취지를 고려하여 접근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 지난 5월 29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발견된 북한의 대남전단 풍선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해 9월 26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결정을 근거로 대북 전단 살포를 막을 방법이 없다며 이들의 활동을 사실상 무한정 용인하고 있는 셈인데, 헌재의 당시 결정을 살펴보면 헌재가 민간단체들의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넣긴 했지만 이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물론 헌재가 전단 살포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것은 맞다. 헌재는 당시 결정문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2020. 12. 29. 법률 제17763호로 개정된 것) 제24조 제1항 제3호 및 제25조 중 제24조 제1항 제3호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고 밝혔다.

2020년 신설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4조 1항은 “누구든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아니 된다”라며 그 구체적인 행위로 3호에 “전단 등 살포”를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제25조에 따르면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법률 조항에 대해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형두 재판관은 “국가가 표현 내용을 규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중대한 공익의 실현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고, 특히 정치적 표현의 내용 중에서도 특정한 견해, 이념, 관점에 기초한 제한은 과잉금지원칙 준수 여부를 심사할 때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단 등 살포를 금지‧처벌하지 않더라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전단 등 살포로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나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기하여 행위자에게 경고하고, 위해 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살포를 직접 제지하는 등 상황에 따른 유연한 조치를 할 수 있다”며 해당 조항이 과도하게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심판대상조항은 전단 등 살포를 금지하면서 미수범도 처벌하고 징역형까지 두고 있는데, 이는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행사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바, 심판대상조항은 침해의 최소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면서 “심판대상조항으로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이 확보되고, 평화통일의 분위기가 조성될지는 단언하기 어려운 반면, 심판대상조항이 초래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매우 중대하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유남석, 이미선, 정정미 재판관 역시 위헌의견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어 “외부로부터의 정보 유입과 내부의 정보 유통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북한의 특성상, 북한을 자극하여 도발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표현의 내용은 상당히 포괄적이므로,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제한되는 표현 내용이 광범위하고, 그로 인하여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된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들의 결정문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발견된다. 위헌판단을 내린 7명의 재판관들 모두 전단 살포에 대한 처벌을 명시한 법률 개정안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잉금지원칙이란 공권력 행사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사용되면 안 된다는 헌법상 원칙이다. 이를 이 사안에 적용해 보면, 전단 살포의 경우 경찰 직무집행법 등으로 제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또 다른 법률을 만들어 처벌하게 되면 과도하게 기본권을 제한하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헌재는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무조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제한할 수 있는 법률이 있는데 또 다른 법률을 만들어 제지하려는 것이 과도하기 때문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한 셈이다.

결정문에서 알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은 헌재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이 국민의 생명·신체 안전을 보장하고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통일을 지향하여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다”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헌재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전단 살포 제지가 가능하다는 점도 명시했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 따라 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 등을 살포하는 행위에 대한 일반적 제한은 철폐되었다. 다만 위헌의견에서 제시된 대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단 등 살포 현장에서는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접경지역 주민의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16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당시 대법원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제1항과 정당방위 및 긴급피난을 규정하는 민법 제761조 제2항에 따라 국가가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헌재는 “입법자는 향후 전단 등 살포가 이루어지는 양상을 고찰하여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보장을 위한 경찰 등의 대응 조치가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단 등 살포 이전에 관계 기관에 대한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입법적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전단 살포에 대한 통제를 위해 적절한 입법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주문하기도 했다.

결국 헌재의 결정문을 요약하자면 ① 전단 살포를 처벌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위헌이지만 ②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전단 살포 현장에서는 접경지역 주민의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고 ③ 전단 등 살포 이전에 관계 기관에 대한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헌재 결정문의 주요 대목들 중에서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며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가 근거로 삼고 있는 헌재 결정에서는 위와 같이 다양한 측면을 제시했는데도, 전단 살포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원하는 것만 취사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오물 풍선은 비인도적이며 비상식적이고 정전협정에 어긋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상황을 관리해야 하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부가 헌재의 결정문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그를 통해 사실상 상황을 방조한다면 이 역시 상황 개선을 위해 정부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이에 일부에서는 지난 4월 제22대 국회의원총선거 이후로 윤석열 대통령이 20%대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정부가 북한이라는 이슈를 활용하려는 차원에서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에 손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오물 풍선을 보내고 GPS를 교란시키는 등의 북한 행동을 보면서 자신들을 향했던 비난의 화살을 북한으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소위 ‘북풍’은 이미 수십 년 동안 그 실체가 밝혀지면서 사실상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 정부에 대한 반감이 북한 이슈로 상쇄시킬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서 설사 정부가 이같은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풍이 아닌 정말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생각한다면 우선 북에서 내려오는 오물 풍선을 실질적으로 막아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순서다. 방법은 간단하다. 북한이 요구했듯이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이 북으로 날아가지 않으면 되는데, 헌재는 대북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라고 규정했지만 당국이 이를 제지할 수 있다는 점도 이미 명시했다.

물론 정부가 매번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를 막을 수는 없다. 헌재의 결정에 따르면 그래서도 안된다. 다만 지금과 같이 북한에서 오물 풍선이 날아오는 상황은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럴 때는 단체에 자제 요청을 하는 정도의 상황 관리는 해야 하고 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렇게 답이 명확하게 나와있는데도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 다른 의도가 정치적 손익 계산을 넘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근본적으로 깨뜨리려는 ‘의도적 방관’이나 ‘충돌 유도’가 아니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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