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상법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상법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스1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논의는 배임죄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뤄져야 됩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4일 상법 개정 이슈 관련 출입기자단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현재 상법상 ‘회사’에 한정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넓히면서 그 부작용인 남소(소송 남용)를 막기 위해 배임죄 폐지가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이 원장은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에 대해 “우리나라 법원은 법률을 좁게 해석하고 있다”며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로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이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본 거래와 관련한 주주 가치 보호 실패로 이어지는 현상을 초래했다”며 “해외 투자자는 물론 국내 개인 투자자도 이 현상을 해소해 달라고 요구하는 지경”이라고 했다.

회사의 거래는 크게 손익 거래와 자본 거래로 나뉜다. 손익 거래는 회사의 일반적인 영업활동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래이고 이 원장이 언급한 자본 거래는 물적분할, 인적분할, 인수합병(M&A)과 같은 기업의 손익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거래를 뜻한다.

이 원장은 “자본 거래 과정에서 일부 주주는 크게 이익을 볼 수 있으나 나머지 주주는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회사법은 이런 거래를 적절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자본시장에서 많이 꼽는 사례는 2022년 LG에너지솔루션 물적 분할이다. LG화학의 알짜 부서였던 배터리 사업부가 분할 상장하면서 내재가치가 훼손된 LG화학은 주가가 하락한 바 있다.

상법 개정이 지배주주의 긍정적인 역할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 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주요 반도체 그룹의 투자 리더십은 오너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도 “상법 개정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가 함께 윈윈(win-win)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해당 안이 세계에서 유래가 없다는 재계의 주장에 이 원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 판례와 입법으로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은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 이 원장은 “건강한 공론화를 위해선 사실 관계는 바로잡아야 한다”며 “일부 논객이 (이사의 충실 의무가) 해외엔 없다는 식으로 와전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부분은 유감스럽고 공개 토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에서 상법 개정 등 이슈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에서 상법 개정 등 이슈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연합뉴스

소송이 남발할 수 있다는 재계에 우려에 이 원장은 ‘배임죄 폐지’라는 답을 내놨다. 그는 “배임죄는 주요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제도”리며 “개인적으로는 배임죄는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배임죄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를 위배해 재산상의 이익을 챙겨 손해를 입히는 죄다.

이 원장은 “이사회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액 주주에 대한 보호가 미흡하면 배임죄로 귀결될 문제가 있다”며 “형법이 과하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좁히는 걸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사법뿐만 아니라 상법에도 특별배임죄가 있는 건 이중 규제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상법에 어울리지 않는 형태의 과도한 형사처벌 규정이 있다”며 “상법에서의 특별배임죄는 폐지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검사 시절부터 이 원장은 배임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다루는 자가 손해를 끼치면 죄가 된다”며 “일본에서는 없어진 형태의 죄인데 우리나라에선 광범위하게 운용되고 있다”고 했다.

형법상 배임죄도 없애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배임죄의 인정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배임죄의 구성 요건에 ‘사적 목적 추구’라는 문구를 추가해 정말 나쁜 짓을 할 때만 죄가 성립하게 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확대하면서 경영판단원칙, 즉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이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법률적 판단도 추가한다면 재계의 걱정은 덜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 원장의 판단이다. 다만 이를 악용해 기업들이 충실 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 원장은 “단순히 선언적 문구를 넣자는 게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이 원장은 “예를 들어 물적분할이라면 이사회가 다양한 대안을 검토했는지, 제2자의 의견을 구했는지, 회사의 결정에 반대하는 주주가 있다면 이들이 수긍할 만한 수준의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보장됐는지 등을 (경영판단원칙에) 규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이런 과정을 거쳤다면 형사 처벌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주요 의사결정 시 갖춰야 하는 구체적인 요소들을 규정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다만 이날의 발표가 정부 부처간 합의된 내용은 아니다. 이 원장은 “현재 정부의 정해진 입장은 없다”면서 “단편적으로 시장에서 얘기가 나오는 게 있어서 비판을 감수하고 금감원장의 생각을 말씀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브리핑을 연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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