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스테이지엑스의 28㎓(기가헤르츠) 주파수 할당 사업자, 즉 제4이동통신사 후보 자격을 취소하면서 통신 시장에 신규 사업자를 들여와 경쟁을 활성화하고 가계 통신비를 낮추겠다는 구상도 물거품이 됐다. 정부는 제4이통사 유치 계획을 지속 추진할 방침이지만 이미 통신 시장이 가입자 유입 없는 포화 상태에 도달했고 신규 사업자가 할당받을 28㎓의 사업성도 낮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시장 진입의 조건이 까다로운 상황에서 정부가 제4이통사 유치 자체에 급급하지 말고 후보 사업자의 역량을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 가뜩이나 사업성 낮은데…'재정 검증조차 없이 후보사 선정'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스테이지엑스의 제4이동통신사 후보 자격 취소 예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이 설명한 스테이지엑스의 제4이통사 후보 자격 박탈의 이유는 결국 재정 능력 부족이다. 스테이지엑스는 지난해 12월 주파수 경매 참여 의사를 밝히며 과기정통부에 자본금 2050억 원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의 주파수 할당 신청서를 제출했다. 업체는 최근 야놀자와 더존비즈온으로부터 투자 유치를 받아 모회사인 스테이지파이브를 합쳐 3사 총 500억 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주파수 할당을 받아 제4이통사가 되면 더 구체화한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총 2000억여 원을 유치, 사업을 개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관련 법령에 따라 사업자 적격 여부를 검증하는 현시점에서 2050억 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주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테이지엑스는 스테이지파이브·야놀자·더존비즈온이 주주로 합류했고 협력사인 폭스콘인터내셔널홀딩스, 신한투자증권, 연세의료원(세브란스병원),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중 일부도 투자 논의를 진행해왔다. 스테이지엑스는 지분 5% 이상 주요 주주 6개사를 사업계획서에 적어냈지만 이 중 자본금 납입이 이뤄진 곳은 스테이지파이브뿐이다. 야놀자와 더존비즈온도 투자금 납입이 아직 이뤄지지 않아 과기정통부는 이들을 주주로 인정하지 않았다.

과기정통부는 “자본금이 적절히 확보되지 않을 경우 주파수 할당 대가 납부, 설비투자, 마케팅 등 적절한 사업 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며 “장비 제조사 등 협력사, 투자사, 이용자 등 향후 예상될 수 있는 우려 사항도 고려해야 하는 사항으로 할당 대상 법인 선정 취소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특히 주주 구성이 당초 계획과 다른 만큼 현재의 스테이지엑스를 사업계획상 스테이지엑스와 동일한 법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다음 달 초까지 청문을 거쳐 취소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스테이지엑스는 청문 절차에서 소명에 나설 계획이지만 당장 자금 조달을 완료하지 않는 한 과기정통부의 결정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8㎓' 가뜩이나 사업성 낮은데…'재정 검증조차 없이 후보사 선정'

과기정통부는 약 2시간에 걸쳐 스테이지엑스의 이 같은 책임을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정부 역시 사전 검증과 자문을 통해 제4이통사 유치를 지원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9년 기간통신사업 승인 제도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후보 선정 단계에서부터 재정 능력을 검증하는 절차가 사라졌다. 주파수 경매에서 이기기만 하면 스테이지엑스처럼 후보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 보듯 결국 사업자 등록 직전에 정부가 재정 능력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는 건 매한가지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사업자 유치를 위해서는 사전 검증 절차가 다시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안정상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양측 다 문제가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과기정통부에 있다”며 “허가제 체제에서 중복해서 재정 능력을 검증하는 비효율을 없애기 위해 관련 면제 조항을 넣은 건데 등록제로 바꾸면서도 이를 계속 유지했다”고 지적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도 “그나마 사업 시작 전에 취소한 것은 다행이지만 재정 능력 심사 절차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거듭된 실패에 제4이통 사업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안 교수는 “통신 3사와 함께 알뜰폰 사업자도 수십 개가 있다”며 “수익성이 낮은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를 등장시켜서 요금 인하 경쟁을 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28㎓는 통신 사거리가 짧고 그만큼 기지국이 많이 필요한 데다 현재 널리 쓰는 5세대(5G) 이동통신인 3.5㎓에 비해 차별화한 서비스도 없다는 한계가 있어 통신 3사도 포기한 주파수다.

정부가 종합적 고민 없이 정책의 중간 성과를 홍보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과기정통부는 제4이통 사업자 선정 과정을 언급하면서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한 부처의 노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4월 총선 직전 단말기유통법 폐지, 번호 이동 지원금인 전환지원금, 통신 3사의 통신요금 인하 압박 등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총선 후에도 실질적인 정책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사업 취소 위기에 놓인 스테이지엑스는 강하게 반발했다. 서상원 스테이지엑스 대표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과기정통부의 설명은 취소 사유로 전혀 납득할 수 없다”며 “아직 취소가 확정된 것은 아닌 만큼 청문 절차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충실하게 다 하겠다. 사업 의지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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