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대통령이 1988년 2월 8일 청와대 반도체 유공자 만찬에서 오명 체신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그 옆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국가기록원 제공

청와대는 축제 분위기였다. 1988년 2월 8일. 이날 오전 박긍식 과학기술처 장관과 경상현 전자통신연구소(현 ETRI) 소장이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4M D램 개발 성공을 보고했다.

이 자리에는 오명 체신부 장관, 박영철 청와대 경제수석, 홍성원 과학기술비서관, 박승덕 과학기술처 연구조정실장이 배석했다.

보고는 반도체 연구책임자인 경상현 소장이 했다. 보고 내용은 공동개발 사업 개요, 4M D램 시제품 개발 과정, 개발 실적, 4M D램 핵심기술과 전망 등이었다.

경상현 소장이 보고하는 동안 전두환 대통령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보고가 끝나자 전 대통령은 만족한 표정으로 경 소장에게 경제적인 효과와 세계 시장점유율 가능성 등을 소상하게 질문했다.

경상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의 당시 증언. “전 대통령은 세계시장에서 한국 반도체가 차지하는 점유율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질문하셨습니다. 반도체 전문가 수준이었습니다.”

보고가 끝날 무렵 배석한 박승덕 실장이 갑자기 손을 들고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배석자들의 시선이 박승덕 실장에게 쏠렸다. 전 대통령이 이를 보고 말했다.

“박 실장, 무슨 말입니까. 하세요.”

박승덕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과제는 대통령 프로젝트였습니다. 연구개발비가 879억원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연구과제였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대기업인 삼성, 금성, 현대가 합심해서 반도체를 개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은 아주 기분 좋은 날입니다. 오늘 저녁은 내가 한턱 내겠습니다. 반도체 개발에 참여한 연구요원들과 3사 총수들이 모두 참석하게 준비하세요.”

4M D램 개발은 한국 최초이자 세계 세 번째였다. 이 기술 개발로 일본과의 기술 격차는 6개월로 줄어들었다.

이날 저녁 6시 반도체 개발 유공자들이 청와대 영빈관으로 속속 입장했다. 만찬 자리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과 박긍식 과학기술처 장관, 오명 체신부 장관, 경상현 ETRI 소장, 박승덕 과학기술처 연구개발조정실장, 박성득 체신부 통신정책국장, 반도체 3사 연구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전 대통령은 반도체 개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파격적인 정책 지원을 했다. 삼성전자 등 기업들이 반도체 장비를 수입할 때 관세를 면제해 주고 수도권에 공장을 짓도록 토지 매입을 허가해 주는 등 많은 지원을 했다. 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누이 강조했다.“반도체는 우리 산업의 쌀이다. 반드시 우리 힘으로 개발하라.” “반도체 기술이 없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각 부처 장관들은 반도체 개발에 적극 협조하라.”

박승덕 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의 말. “4M D램 개발 기간은 1986년 8월부터 1989년 3월까지 30개월이고 연구비 총액은 879억원, 연구인력은 670명에 달하는 국가 초대형 과제였다. 과학기술처는 이를 대통령 프로젝트로 추진했다.”(살며 생각하며)

전두환 대통령은 영빈관에 입장해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전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했다. “연구원 여러분. 4M D램 개발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내 임기 만료가 15일 남았는데 오늘이 가장 기쁜 날입니다. 우리 반도체가 미국이나 일본에 뒤떨어진 줄 알았는데 1년 6개월 만에 4M D램을 3개 회사가 합동으로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하니 선진기술을 따라잡지 않았습니까.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에 4M D램이 나와서 내가 개발한 것보다 기분이 더 좋습니다. 국제 사회나 개인도 그렇지만 기술이 앞서는 사람은 노다지로 돈을 벌고 기술이 없는 사람은 뼈가 빠지게 일을 해도 버는 게 없어요. 크게 뒤떨어졌던 기술격차를 6개월로 따라붙었으니 앞으로 16M D램 반도체는 일본보다 먼저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가(大家)가 안 나와요. 과학기술계는 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영웅을 만들어 주세요.”(전두환 육성증언)

전두환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술을 권했다.

기분이 좋은 전 대통령이 계속 말했다. “이 다음 16M D램이 나오면 내가 머리카락이라도 팔아서 연구원들에게 한턱 내겠습니다. 일본보다 개발이 늦으면 안 사 줍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고개를 죽이고 ‘킥킥’ 웃었다. 그러자 전 대통령이 다시 말했다. “여러분이 내 머리카락이 없다고 웃는 모양인데 이게 몇 가닥 안 남아서 아주 비싸게 팔릴 거요.”

그 순간 만찬장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그러자 구자경 회장이 말했다. “외국에서 생모제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전 대통령의 구수한 재담은 이어졌다. “과학기술자들이 경제 문제는 신경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가용 비행기 타고 다니는 사람도 나와야 해요.”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많이 취했고, 참으로 기쁘고 행복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이날 만찬에 참석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의 말. “전 대통령은 ‘과학자 여러분. 전쟁이 나도 여러분은 걱정 없습니다. 전쟁 나면 과학자들은 모두 대전 이남으로 이동할 특별계획도 다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전 대통령은 과학자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 주기도 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에는 경찰에서 지금의 세콤 같은 특수 보안장치를 설치해 주었고, 집 주변을 정기적으로 순찰하고 이상이 없는지 방문해 확인하기도 했다.”

이날 청와대 만찬에 참석자들은 대통령 휘장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하나씩 선물로 받았다.

박승덕 전 과학기술처 실장의 증언. “국가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책임자인 내게 이날 만찬은 가장 뜻 깊고 보람 있었다. 자랑스러운 일로 영원히 남아 있다.”

반도체 개발은 어떤 경우라도 계속해야 한다는 전두환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 전 대통령은 퇴임을 며칠 앞두고 오명 체신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지시했다.

오명 전 부총리의 회고. “반도체 개발은 대단히 중요한 사업이니 오 장관이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를 찾아 뵙고 보고를 드려서 64M D램을 계속 개발할 수 있도록 하시오. 내가 별도로 시간을 내시도록 노 당선자 측에 말해 두겠소”(30년 후의 코리아를 꿈꿔라)

얼마 후 노태우 당선자 측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오 전 부총리는 경상현 ETRI 소장과 함께 노 당선자를 찾아가 보고를 했다.

전 대통령은 5공화국에서 시작한 반도체 개발이 6공화국에서도 중단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 바람대로 6공화국도 반도체 개발을 적극 추진했다.

정부는 1990년 4월 ETRI가 총괄해 대기업 등과 16M D램 공동개발에 착수했다. 개발한 반도체 기술은 삼성·금성·현대로 이전했고, 그해 말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양산체제에 들어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 “나는 퇴임 후에도 반도체 개발사업은 그대로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 오명 체신부 장관을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내 보고를 하게 했다. 우리나라는 내가 퇴임한 2년 후인 1990년 16M D램 개발에 성공하고 1992년에는 64M D램을 개발했다. 미국과 일본보다 앞서 세계 최초 기록이었다. 1994년에는 256M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산업화에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 뒤졌지만 반도체 개발을 통해 한국은 IT강국으로 발전했다”(전두환 회고록2)

삼성전자의 세계 최초 반도체 개발은 한국 과학기술 전환의 거대한 굉음이자 미래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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