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중국 재계 거물들이 5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다. 5년새 달라진 건 더 심화한 미중 첨단산업 패권 갈등과 진영화다. 특히 중국을 놓고 반도체·전기차·배터리까지 이권이 워낙 첨예한 상태라 국내 4대그룹 총수가 총출동해 안팎으로 머리를 맞댈 거란 관측이다. 부품 소재 강국인 일본과 더 끈끈해져야 할 뿐 아니라, 미중간 강력한 진영 논리 속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되새겨야 한다는 조언이 산업계로부터 나온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한일중 경제단체인 한국 대한상공회의소,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가 공동 주관하는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이 이달 하순 서울에서 열린다. 서울에서의 만남은 지난 2015년 이후 9년 만이다.

한국 기업인 참석자는 조율 중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국내 10대 그룹 주요 총수들과 일본, 중국 기업인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반도체 설비 해법을 찾는 삼성·SK를 비롯해 최근 베이징모터쇼를 계기로 시장 맞춤형 모델을 꺼내 든 현대차그룹, 현지에서 첨단소재를 생산 중인 LG로선 이번 비즈니스 서밋을 통해 실마리를 잡으려 할 것이란 게 업계 시각이다.

국내 재계 총수들이 일본, 중국 기업인들과 회동하는 것은 지난 2019년 중국 청두에서 열린 제7회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 이후 5년 만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리커창 중국 총리가 참석해 한일중 기업 간 기술 협력을 독려하는 등 공동성명서를 채택해 각국 정상에게 전달한 바 있다.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은 2009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한일중 정상회의 때부터 동북아 경제협력과 교류 확대를 위해 개최돼 왔다. 당초 한일중 정상회의는 2019년 이후 차기 회의를 한국이 주최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한일·한중 등 양자 관계 악화로 중단된 바 있다.

5년간의 만남이 주목받는 건 달라진 산업 외교 환경 때문이다. 지난 5년간 미국은 소위 ‘칩4동맹’으로 한국과 일본·대만을 묶어 반도체를,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로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로 전기차·배터리산업을 진영화했다. 우리 기업들이 최근 일본과의 경제협력을 가속화 하는 배경 중 하나다. 반면 세계 최대시장 중국과의 첨단산업 협력은 정체돼 있는 상태다. 미국이 각종 규제로 옭아 맨 이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눈치게임을 해 왔다.

재계는 이번 서밋을 계기로 한일중 기업들이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 협력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의 반도체 패권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일중의 기업인들이 만나 각 기업과 국가 간 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협력 관계 개선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반도체 권위자인 유회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 원장(반도체공학회 회장)은 “소재와 부품산업이 강국인 일본 기업과 공동 협력 방안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유 원장은 또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 속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중국도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면서 양국 간 반도체 협력 관계를 다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측에선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주관으로 스미토모화학·미즈호은행·미쓰비시 등 주요 기업 회장들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측에서는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 주관으로 마융성 중국석유화학공업그룹 회장, 류징전 중국국약그룹 회장, 덩젠링 중국화능그룹 사장 등의 방문이 예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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