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그룹 본사가 자리한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영풍빌딩. /사진=김현일 기자
영풍그룹 본사가 자리한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영풍빌딩. /사진=김현일 기자

[데일리임팩트 김현일 기자] 영풍이 고려아연에 건 신주 발행 무효 소송 변론 기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며 양측의 대립이 결국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75년간 긴 인연을 이어왔지만, 이제는 이를 끊어내고 완전한 결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

여기에 양측의 수출을 담당했던 주요 계열사인 서린상사를 두고 펼쳐질 경영권 다툼 등에서도 지난한 싸움이 이어지며 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양측은 신사업을 기반으로 한 경쟁력 강화를 통해 전투는 물론, 긴 전쟁을 이길 수 있는 기초 체력을 기르는 데에도 열중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2부는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지난 3월 제기한 ‘신주발행 무효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오는 6월 14일로 지정했다. 양측은 지난 4월 최종적인 법리 검토를 끝낸 후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풍은 이번 소송을 통해 지난해 고려아연이 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가 공동 설립한 미국 현지 법인 ‘HMG글로벌’에 약 5000억원에 넘긴 고려아연 지분 5% 분량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물량을 무로 돌리고자 하고 있다. 해당 신주 발행이 현 경영진의 경영권 유지 및 확대를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영풍의 입장이다. 실제로 신주가 발행된 뒤인 2023년 9월 우호 지분을 포함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지분이 32.10%로 장형진 영풍 고문 측 지분인 31.57%를 역전한 바 있다.

현재 영풍은 고려아연의 신주발행이 고려아연의 정관에 위배된다 주장하고 있다. 정관에는 제3자에게 신주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경영상 필요로 하는 외국의 합작법인에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라는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HMG글로벌이 고려아연의 경영상 필요 관계가 아님은 물론, 고려아연과 합작 출연해 출범한 법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고려아연은 해당 신주 발행이 합리적인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며 상법이나 관련 법규, 정관 등을 토대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이뤄졌다고 반박하고 있다.

만약 법원에서 신주 발행을 무효라 판단할 경우 영풍 측이 다시금 최대 지분율을 확보하며 경영권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리라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고려아연의 주식 유동성이 많지 않은 데다, 높은 가격 등으로 손쉽게 주식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만큼 5% 분량의 주식이 오가는 것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평가에서다. 지난 17일 장 마감 기준 고려아연 주가는 51만2000원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첫 공판은 ‘인사’ 같은 개념이다. 서로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보강하고, 또 반론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며 “하지만 기일 당일에 결과가 모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추가적인 서류 준비가 필요할 수도 있는 데다 한 측이 반대편의 주장에 납득하지 못할 경우 그에 따라 항소 가능성도 있다. 결과적으로 1심 결과가 나오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사진=고려아연
울산광역시 울주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사진=고려아연

고려아연, 서린상사 장악 성공할까… 영풍 “그래도 치명타는 아냐”

한편 서린상사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다툼의 경우 주주총회가 열릴 경우 고려아연의 이사회 장악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긴 하나, 영풍 측에서는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린상사는 영풍그룹 계열사로 양사의 비철 제품의 해외 유통을 담당해 온 장가·최가 동맹의 상징 같은 존재다. 최대 주주는 고려아연(66.7%)이지만 경영은 장형진 영풍 고문의 차남인 장세환 대표가 맡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3월 22일 서린상사 임시 주총 소집을 허가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으나 결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법원의 허가가 이뤄질 경우 고려아연은 서린상사 임시주총 소집을 통해 고려아연 측 추천 인사 4인을 사내이사로 세워 이사회를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린상사 이사회는 총 7인으로, 고려아연 측 4명, 영풍 측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영풍 측은 이를 고려아연의 서린상사 경영권 장악 의도로 해석, 이사회 불출석으로 대응하며 주총 개최를 막아온 바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저희 측에서 추천한 인사가 이사회에 배치되면 장씨 일가가 경영진에 영입되면서 다소 원활치 않았던 판매나 재고 관리 등이 원활해질 것이다. 서린상사에서 저희 영업을 분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존에는 영풍 측에서 제련소 사고 등으로 제품 판매 계획 등이 잘 안 나오다 보니 저희 물량 판매에도 차질이 있었고, 서린상사 역시 관리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설명했다.

영풍 측에서는 고려아연의 서린상사 이사회 장악을 최대한 저지하는 한편, 해당 시나리오대로 이뤄진다 한들 회사에 치명타가 가해지는 정도는 아닌 만큼 이후의 상황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해외 영업을 담당할 대행사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한동안 불편함이 가중되기야 하겠으나, 자체적으로 서린상사가 하던 해외 영업 업무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데다 이에 따라 얻게 되는 이점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

영풍 관계자는 “(서린상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될 것 같다. 서린상사가 전문적인 부분을 대신 해줬다 보니 편의성이 높긴 했지만, 저희 내부에도 무역업무 역량이 있는 인원들이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나면 대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처음에는 내부적으로 업무가 가중되는 부분은 있겠지만 저희로서는 직거래를 하면서 서린상사를 거치며 내야 했던 수수료를 줄이고 이윤을 남길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영풍에 따르면 아연 생산량만 따졌을 때 연간 35만톤을 생산하며 이 중 60%를 수출하고 있는 만큼, 오히려 관계를 끊게 될 경우 서린상사가 손해를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직 규모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영풍의 제품을 받지 않는다면 회사에 엄청난 손해가 발생할뿐더러, 소재를 제조해 파는 회사들은 기존 거래처를 유지하길 원하는 만큼 여전히 영풍의 제품을 원하는 회사들이 많아 고객 유실도 거의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본 기사와 무관함. /사진=이미지투데이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본 기사와 무관함. /사진=이미지투데이

장기화되는 경영권 다툼, 승리 열쇠는 신사업에? 

양측의 경영권 다툼이 장기화할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고려아연과 영풍이 준비하고 있는 신사업 전략에도 관심이 쏠린다. 성과 여부에 따라 주가 상승은 물론, 자금 확보를 통해 향후 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경우 친환경 미래 사업 전략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기반으로 신사업 투자를 과감하게, 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없진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 1분기 기준 24.01%의 부채 비율로 높은 재정 건전성을 자랑하고 있는 데다, 현금 창출·순환 능력도 양호한 만큼 전혀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고려아연의 입장이다. 기업의 부채비율의 경우 보통 100% 이하면 재무 건전성이 우량, 200%가 넘으면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이에 외부에서도 고려아연의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종형 키움증권 연구원의 경우 투자 의견은 ‘매수 유지’, 목표 주가를 65만원으로 높이며 “우호적인 업황에 따른 실적 전망 상향, 최근 발표한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통한 중장기 성장성을 반영해 업종 내 대형주 톱 픽(Top Pick)을 유지한다”라고 평가했다.

영풍의 경우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제련소에 세계 제련소 최초로 도입해 운영 중인 폐수 재이용 시스템에 기대를 걸고 있다. 공장에서 내보내는 폐수 배출량을 제로(0) 수준으로 줄일 수 있는 만큼 ‘지속 가능 제련소’로서 친환경·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역량을 강화한 데다, 해당 기술의 외부 공급을 확대하며 새로운 ‘미래 먹거리’화 할 수 있다는 것.

석포제련소는 지난 2021년 5월 세계 제련소 최초로 ‘Z.L.D(Zero Liquid Discharge)’라는 이름의 폐수 100% 재이용 시설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제련 공정에서 나온 폐수를 끓여 증발시킨 뒤 깨끗한 물을 만들어 공정에 재사용하고, 걸러진 불순물은 고형화해 폐기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영풍에 따르면 지금까지 해당 기술 도입을 검토하기 위해 모 이차전지 업체를 포함해 지자체, 기업 조정실, 환경 담당 부서 등에서 방문할 정도로 그 관심도가 높다고.

영풍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쉬웠겠으나,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지속경영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하고 있는 것”이라며 “2020년부터 몇 년간 종합 환경 사업을 위해 7000억원 정도를 투자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고 매년 1000억 이상씩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몇 년간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현금성 자산 등 투자 여력이 충분한 만큼 실적 회복 및 지지율 회복을 위해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영풍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3년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79억원, 기타 유동 금융자산 및 매출채권 등을 포함한 총 금융자산은 5522억원으로 나타났다. 투자 등에 돌릴 수 있는 이익잉여금만 1조7054억원에 달하며, 자산을 모두 종합할 경우 4조원에 달한다는 평가도 있다. 고려아연과 마찬가지로 22.72%의 부채 비율로 높은 재정건전성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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