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납 종신보험 과당경쟁 불씨가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단기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형 생명보험사 위주로 격화됐던 출혈경쟁 양상이 최근 중소형 보험사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중소형 생명보험사들의 단기납 종신보험 과당경쟁이 지속되고 있다 / 조선DB  

22일 보험업권에 따르면 ‘7년납 단기납 종신보험 10년 시점 환급률’이 가장 높은 보험사는 ▲푸본현대생명 124.8% ▲ABL생명 124.5% ▲DGB생명 124.5% ▲동양생명 124.1% ▲하나생명 124.1% 순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한계선으로 본 125%를 육박하는 수치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납입 기간이 5·7년 등으로 일반 종신보험에 비해 짧은 것이 특징이다. 보험사들은 상품 만기 후 일정기간을 거치, 원금보다 많은 환급금을 지급하고 있다. 가령 위 보험사들의 경우, 7년간 총 1억원의 보험료를 납입하면 10년 시점에 최대 1억2480만원의 환급금을 제공하는 식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꾸준히 납입해 만기까지 유지한다면 큰 이익을 돌려 받을 수 있어 나쁠게 없다.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상당하다. 만약 중도 해지하면 환급금이 아예 없거나 오히려 큰 금전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매달 납부 보험료도 고액인 만큼, 경제 상황이 어려워진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고객 유치에는 도움이 되지만 환급 규모가 크다보니 계약 유지 고객이 달가울리 없다. 그나마 대형 생보사의 경우 꾸준한 수입보험료가 보장된 만큼 유동성 이슈가 크지 않지만, 중소형 생보사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지급여력이 불투명해 향후 7~8년 뒤 만기가 도래했을 때 이를 감당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과당경쟁 양상이 지속되자 금감원은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로 인한 보험사 건전성 악화를 우려했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기본적으로 보장성보험이지만, 자칫 소비자가 저축성보험으로 오인해 가입할 수 있다고 봤다.

생보사들은 지난해 달라진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따라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에 주력해 왔다. 해당 상품이 보험사 핵심이익 지표인 계약서비스마진(CSM) 산정에 유리하게 작용해서다. 단기 실적을 끌어 올리기 위한 출혈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올해 초 환급률을 135%까지 내거는 보험사도 등장했다. 

이에 금감원은 단기납 종신보험 최대 환급률을 130% 미만으로 제한. 추가로 110%까지 환급률을 내리는 안을 고려했지만, 과도한 시장규제라는 비판으로 자율시정 권고로 방침을 바꿨다.

문제는 보험금 지급여력이 낮은 중소형 보험사가 높은 수준의 환급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를 통해 당장의 현금 확보는 가능하지만, 만기 도래 시 대규모 계약해지가 발생한다면 유동성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2022년 10년 만기 저축성보험에 대규모 만기가 도래하면서 생보사 유동성 위기가 감지된 바 있다. 2012년 판매 당시 생보사들은 저축성보험 상품에 은행 수신금리보다 2%포인트 높은 5%대 금리를 제시하면서 상품판매를 늘려왔기 때문이다. 

결국 2022년 말 금융위원회는 기존 만기 3개월 이하 자산으로 한정됐던 보험사의 유동성 자산에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만기 3개월 이상 자산’을 포함, 숨통을 틔워줬다. 유동성으로 인정되는 자산 범위를 넓혀준 것이다. 하지만 향후 단기납 종신보험 만기가 도래한다면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금감원이 발표한 지난해말 기준 보험회사 지급여력비율(K-ICS) 현황에 따르면 중소형 보험사의 경과조치 전 K-ICS 비율은 ▲푸본현대생명 23.9% ▲ABL생명 130% ▲DGB생명 162.3% ▲동양생명 193.4% ▲하나생명 122.2%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은 안정적인 보험금 지급을 위해 K-ICS 비율을 150% 이상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2023년 말 생명보험사 지급여력비율(K-ICS) / IT조선
2023년 말 생명보험사 지급여력비율(K-ICS) / IT조선

경과조치는 보험사 K-ICS 비율이 안정적인 수준에 이를 때까지 발생하는 ‘리스크와 변수’를 단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조치다. 신종자본증권이나 후순위채 등도 가용자본으로 인정돼 보험사 재무적 부담을 한시적으로 덜어주는 듯한 효과를 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보험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대형 보험사에 비해 브랜드 이미지에서 밀리는 것이 사실”이라며 “동일 조건이면 자연스럽게 네임밸류가 높은 쪽에 가입 수요가 크다. 대형 보험사 대비 높은 환급률을 제시해 경쟁력을 가져가는 전략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보험대리점을 통해서 가입했던 소비자의 경우 130%대 환급률 경험했던 이들이 많다보니 추가로 환급률을 낮출 경우 소비자 어필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생보업권 전체적으로 운용 수익을 높이고 모집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추가적인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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