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진 “길채의 숱한 선택들, ‘어쨌든 살아내겠다’는 의지였죠”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MBC 드라마 ‘연인’이 초반 방영됐을 때만 해도 여주인공을 두고 ‘미스캐스팅’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재미로 모든 사내를 쥐락펴락하는 능군리 최고 미녀 유길채의 이미지와 배우 안은진이 풍기는 푸근한 분위기가 다소 결이 맞지 않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은진은 초반 미스캐스팅 논란을 딛고 연기력을 앞세워 ‘유길채=안은진’임을 보란 듯이 입증해냈다.

그는 철없는 ‘애기씨’의 생기발랄함으로 시청자들을 미소 짓게 만들다가 애절한 멜로 연기로 마음을 울리는가 하면, 주체적인 인간으로 한뼘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 응원을 얻었다.

21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안은진은 “쉬운 장면이 단 하나도 없었던 작품이었다”고 돌아보면서도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만큼 기쁜 순간도 많았다. 많이 울었던 만큼 행복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인’은 길채의 성장기를 그리다 보니 그 변화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애기씨’ 시절의 철없는 모습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고 떠올렸다.

작은 산골 마을 능군리에서 낙향한 사대부 유교연의 첫째 딸로 귀하게 자란 유길채는 샘도 많고, 욕심도 많고, 정도 많다. 당돌한 모습에 헛웃음이 지어질 때도 있지만, 특유의 싱그럽고 통통 튀는 매력이 넘친다.

안은진은 “길채는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한 적 없기 때문에 늘 자신감에 차 있다”며 “사랑 많이 받으면서 자란 것 같은 길채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되짚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생기발랄한 유길채는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단단해진다.

안은진은 “피난길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보이기 시작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전쟁이 끝난 후 한양에 돌아왔을 때까지도 길채는 ‘애기씨’ 티를 벗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종일관 장난기 넘치는 능글맞은 태도를 유지하는 이장현의 진심을 읽어내지 못하는 유길채는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안은진은 “길채 입장에서 장현은 늘 훌쩍 떠나버리는 사람이었다”며 “마음은 끌리지만, 믿을 수 없는 사내였다”고 설명했다.

길채가 장현의 진심을 처음 느끼는 장면은 8화였다. 이장현은 심양으로 떠나기 직전 “만약 다시는 연준 도령 생각을 아니하겠다 말하면 내 지금이라도 가는 길을 돌리겠다. 말로만이라도 다짐해주면”이라고 애원한다.

마음에 확신이 없어 끝내 ‘그럴 수는 없다’는 길채의 얼굴을 감싸 쥐고 이장현은 ‘정말 밉군’이라고 말하는데, 안은진은 “그때 장현의 진심이 훅 들어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이장현을 심양으로 떠나보낸 길채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기다리지만, 그가 죽었다고 오해하게 된다. 안은진인은 이 대목이 “길채에게 있어서 가장 큰 터닝 포인트”였다고 꼽았다.

“더 이상 장현이 없는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길채는 정말 많이 성장했어요. 자신의 마음, 이장현의 마음을 깨닫게 되고, 이제부터 자신이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다짐하죠. 이 순간부터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죠.”

철없는 ‘애기씨’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 유길채는 자기 자신이 아닌 주변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기 시작하게 된다.

안은진은 “대본을 봤을 때, 이장현을 두고 구원무와 결혼하는 길채의 선택이 납득됐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 주변 친구들에게 길채 같은 친구가 있으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니 가족을 위해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해주더라”라며 “아무래도 시청자분들은 둘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봐오셨으니 매우 안타까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채는 어찌 됐든 살아남으려는 강한 생명력이 있는 캐릭터에요. 길채를 보면서 납득되지 않았던 부분도 있으셨겠지만,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고 봐주시면 다르게 이해되실 수도 있어요.”

‘연인’은 지난해 겨울 첫 촬영을 시작해 최근에야 마지막 촬영을 마무리한 긴 호흡의 작품이었다.

안은진은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맡을 수 있었지?’, ‘어떻게 하다가 이런 운이 내게 온 거지?’ 자신에게 묻는 날들이 많았다”고 웃어 보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출신인 안은진은 2012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데뷔했다.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리즈(2019·2020),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2020·2021) 등에 출연하며 탄탄한 연기력으로 인지도를 높여왔다. 올해 상반기에는 JTBC 드라마 ‘나쁜엄마’에서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미주 역으로 호연을 펼치기도 했다.

안은진은 “지난 1년 동안 몸이 힘든 날들도 있었는데, 길채 덕분에 나아갈 힘을 많이 얻었다”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딛고 일어나는 길채의 대사와 상황을 연기하면서 저 역시도 (힘든 마음이) 많이 해소됐다”며 웃어보였다. “이런 캐릭터를 만나 저도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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