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감독
김성수
출연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개봉
2023.11.22.

영화 정보

서울의 봄

감독

김성수

출연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41분

네티즌 평점

9.59

내 평점

10/10

꼭 보세요, 두 번 보세요

영화<서울의 봄> 시사회 리뷰가 호평 일색이더니 진짜 잘 만든 영화였다. 출연 배우님들 연기 하나하나 몰입하게 만드는 김성수 감독님의 연출력이 빛을 발했다. 몰아붙이고 밀어붙이는 연출이 대단했고, 자칫 잘못하면 승리의 기록 같은 영화가 될까 봐 우려했다는 감독님은 진짜 군인이었던 이태신을 내세워 진짜 군인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한다. 갈팡질팡하는 군인들의 모습도 현실적으로 표현했는데 의견이 충돌하고 욕망과 계산이 뒤얽히는 모습이 현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회 전두광 패거리를 보고 있으니 화도 나고 우리나라를 지킬 군인들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에 눈물도 났다.

내 마음속 올해 최고 한국 영화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였는데 <서울의 봄>으로 바뀌었다. <노량>을 보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서울의 봄>이 시사하는 의미도 있고 장르적 재미로도 최고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고 이런 역사 영화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딩까지 완벽했다

현재 네티즌 평점도 호평이 많고 평론가 점수도 높은 편이다. 올해 받을 스트레스 다 받았다는 리뷰도 재미있었다. 결말을 알고 봐도 화면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고 영화가 끝나고 울리는 노래까지 완벽했다. 대한민국 국군 군가 중 하나인 ‘전선을 간다’라는 노래였다. 군인들의 임무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고 전선으로 가야 하는데 권력을 향해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최전방에 있는 군인들을 서울로 불러들이고 권력을 잡는데 이용하고 정치와 거리가 먼 바보같이 우직한 정통 군인들은 불이익을 보게 되는 게 마음 아팠다. 젊은 세대도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역사였고 전두환이 권력을 잡고 그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공부하면 마음이 많이 아파진다.

군대 비밀 사조직 하나회

영화를 보다 보면 하나회 때문에 분노하게 되는데 하나회는 대한민국 정부 내에 있었던 비밀 사조직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하는 육군 사관학교 11기 동기들과 후배들을 구성원으로 비밀리에 결성했다. 육군 11기 전까지는 6개월 군사교육만 했고 11기생부터 4년제 정규 군사교육을 실시했다. 그래서 11기부터 4년제 군사교육을 받았다는 엘리트 의식과 자부심이 강하기도 했단다. 친목회로 출발한 이 조직은 박정희 대통령 배후 속에 성장했다.

대한민국 군대, 나아가서 대한민국 국가 자체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던 비밀 사조직 하나회. 이들의 가입 의식은 비밀리에 치러졌고, 서약을 위반할 때에는 인격 말살까지도 감수한다는 배신 방지 조항까지 만들어 조직폭력배와 다름없는 군부 내 패거리를 만들어냈다.

드라마 제5공화국

하나회가 군대 곳곳에 있었다 보니 정보도 금방 새어나가기도 했고 12.12사태가 있던 날도 초동대처만 잘했어도 막을 수 있었는데 모든 전화를 감청하고 있던 하나회가 바로바로 대처를 했다 보니 막기가 힘들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과정이 결말을 알고 봐도 박진감이 넘쳤다.

이태신(정우성)이 복도에서 전두광(황정민)에게 “세상이 서울의 봄이다 뭐다 해서 분위기 좋은데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유신 체제가 끝날 것이라는 희망은 하나회 우두머리 전두환의 야망에 의해 짧은 꿈처럼 사라졌다. 영화 속 전두광 말처럼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암흑이었고 험했다.

남산의 부장들 연장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 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서거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마지막에 전두환이 돈을 챙겨서 나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 연장전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후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다. 당시 보안 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소장이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박정희 암살 사건에 관련된 전권을 부여받아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어쩌면 권력은 보안 사령관이던 전두환에게 집중되었다. 정승화 참모총장 중심의 정통 군인 세력은 군인은 임무대로 나라를 지키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정치장교 하나회를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승화는 정치적으로 야망이 있어 보이는 전두환을 동해안 경비 사령관으로 보직 이동을 시킬 것을 계획했는데 전두환이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영화<남산의 부장들>도 김재규 중앙 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죽일 때 나라를 위하는 대의보다는 이인자 자리에서 밀려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고 보였다.

전두환은 자신을 멀리 보내려는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고 군부를 장악하기로 마음먹는다. 최규하 대통령 체포 재가를 받는 동시에 정승화 체포하는 작전이었고 한마디로 하극상 군사 반란이었다.

암호명 생일 집 잔치

전두환은 치밀하게 특전 사령관 정병주 소장,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 준장을 술집에 불렀다. 군대를 움직이게 못하게 미리 발을 묶었던 것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진짜 군인들은 전두환 패거리를 막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정우성 배우님이 왜 진이 빠진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특전 사령관 정병주 소장이 체포될 때 혼자서 상관을 지킨 군인이 있다. 바로 김오랑 소령이었고 정해인 배우님이 연기했다. 정병주 소장이 체포되고 6발의 총을 맞고 전사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 준장이 육군을 동원해서 군사 반란을 막아보려 했고 엎치락뒤치락했지만 결국 전두환이 서울을 장악하게 된다.

도망간 국방부 장관

노재현 국방부장관

영화를 보다 보면 국방 장관이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노재현 국방부 장관은 당시 총소리를 듣고 도망을 갔다. 전두환 패거리가 승리할 수 있는데 결정적으로 일조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당시 쿠데타를 진압하려고 애쓴 장태완 장군에게 진압을 명령해 수도 인근 사단들의 지휘권을 일임했다면 쿠데타는 진압 가능했지도 모른단다.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노재현 국방부 장관은 12.12 군사 반란 직후 12월 14일 사퇴했다.

12.12사태 이후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전두환은 보란 듯이 4월 14일 2개 정보기관의 수장이 된다.중앙정보부장서리(해외정보 수집+민간시찰)와 육군보안사령부(방첩등 정보 수집) 국내외 정보권을 독점한 것이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1980년 5월 14일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는 대학생들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다음날 5월 15일 서울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서울 27개 대학 10만여 명 집결했다. 신군부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였고 신군부는 이를 소요 사태로 보고 군대로 즉각 진압했다. 당시 학생들은 일반 시민들의 호응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유혈사태를 염려해 서울역 회군을 결정하게 된다. 5월 17일 신군부는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소집해 백지 서명을 시켜 쿠데타 지지를 확보하고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해 비상 국무회의를 개최시켜 10분 만에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시킨다.

이제 전두환과 신군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학에는 특전부대들이 집중 배치되고 김대중은 내란 음모 사건의 주모자로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고 김영삼은 연금 조치를 당한다. 계엄령 확대 다음날 5월 18일 아침 광주에서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다. 광주에서는 시민들의 동참과 호응을 받았고 저항은 커졌다. 전두환은 이를 빨갱이라며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후 1980년 8월 27일 간선제로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 게 1987년 10월 27일이다. 그게 또 영화 <1987>로 이어지는데 1987년 6월 29일 민주화 선언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정승화/장태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는 고문을 당한 이후 불명예 제대를 당했다.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은 체포 후 서빙고로 끌려가 수사를 받은 후 6개월간 가택 연금을 당했다고 한다.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은 현역에서 예비역이 되었다. 김진기 헌병감도 국군보안사령부로 끌려가서 조사를 받고 준장 신분으로 자진 예비역으로 예편했다.

전두환은 11대 12대 대통령이 되고, 노태우가 장태완 자리 수도경비사령관이 되었고 하나회 멤버들은 이후 국회의원도 하고 영화로운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대통령 때 12.12 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전면 재조사하고 하나회를 벌했다. 당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징역 22년 6개월 선고받았지만 얼마 안 살고, 사면을 받았기에 사실 벌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노태우는 추징금을 내고 사과도 했지만 전두환은 끝까지 추징금도 내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권력이 영원할 줄 아는 사악한 바보들에게”박평식 평론가님 말처럼 12.12사태 때는 정통 군인으로 바보처럼 우직하게 움직인 분들이 불이익을 당했지만 진짜 바보는 권력에 눈먼 그들이 아니었을까.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 외치는 그들이 역사의 패배자라는 게 감독님 마음이었다.

진정한 역사의 승리자는 훌륭한 군인들이고

군사 반란 일으킨 자들은 역사의 패배자다.

김성수 감독님

★평론가 평점(10점 만점 기준)

박평식

권력이 영원할 줄 아는 사악한 바보들에게(7)

안시환

여러모로 아슬아슬하다(7)

유선아

바둑을 오셀로로 뒤집으려는 병법의 하룻밤(6)

이용철

검사의 봄에 되돌아보는, 뱀의 욕망이 낳은 탄식과 울분의 밤(6)

이유채

‘전두광 영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다(7)

임수연

‘어떻게 성공했지?’라는 궁금증과 하나회를 향한 분노가 왔다 갔다(7)

사진 영상 출처:NAVER

나무위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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