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이 해냈다.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149ㅁ만 4170명을 동원하며 개봉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 27일 누적 관객수는 189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범죄도시3’,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이어 개봉 4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한 영화 반열에 합류하며 침체된 극장에 단비를 내리게 했다.

개봉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로, 1979년 12월 12일 그날 밤의 현장에 있는 듯한 실감나는 연출과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 연출 김성수 감독/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연출을 맡은 김성수 감독은 취재진과 만나 ‘서울의 봄’과의 첫 인연이 지난 2019년부터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2019년에 처음 제안 받았을 때는 부담감이 있었다. 1979년 당시 제가 한남동 살아서 참모총장 납치되는 현장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구경을 했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데 시나리오 보고 너무 놀랐다. 저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수수께끼 중 하나였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루 아침에 권력을 빼앗겼나. 그 과정도 제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후에 5공 청문회도 하고 관련자들이 불려나와서 얘기할 때 자료를 보면서 윤곽을 알았다. 그런 이야기를 제안 받아서 굉장히 좋았지만 군사반란을 일으킨 이들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그들이 멋진 악당들처럼 묘사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있었다. 1년 정도는 제가 자신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감독에게는 오랜 숙제 같은 일이었기에 생각을 떨칠 수도 없었다. 시나리오를 받은 후부터 그 세계에 빠져있었다. 그가 찾아낸 돌파구는 이야기의 주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그 시나리오 받는 순간부터 그 세계에 빠져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떨림, 흥분되는 느낌이 있었다. 내가 다큐 감독이 아니니까 그 사람과 맞서 싸운 군인들을 부각 시키고 수도사령관의 시점에서 만들면 오히려 반전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서 결심했다. 역사적인 사건이 대법원 판결로 군사반란, 내란이라는 죄가 성립됐다. 그때 구형이량이 어마어마했다. 굉장히 중죄로 받았는데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받을 수 없다고 하는 논리를 보였다. 재판이 결론났는데도. 나중에는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소리를 할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가 생각하는 그날 밤을 재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역사적 사료는 많은 사건이지만 그게 다 진신은 아니다. 실제 빼대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원칙만 지키고 재미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의 승리의 기록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저 같은 사람은 그걸 환기 시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사람들에게 들려줘도 국가가 절체절명의 사건을 맞았을 때 중요한 결정들이 얼마나 빨리 이뤄지고 개인의 소신에 따라 달라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감독은 실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근데 여러가지 이유에서 제가 일단 그 사람을 잘 모르더라. 이름을 조금이라도 바꾸니까 되게 자유로워지더라. 그 사람을 영화 속에 넣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겪으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인물을 그 안에 집어넣으니까 훨씬 자유로워지더라. 그들은 승리했고, 그날 그런 사진을 찍은지도 몰랐다. 자리까지 일일이 배치해서 승리했다며 사진을 찍었더라. 그들의 승리의 역사로 기록되기 싫었다.”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은 제작, 캐스팅 소식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등 내로라하는 믿고 보는 배우들의 황금 라인업과 ‘내부자들'(2014년)을 시작으로 ‘마약왕'(2016년), ‘남산의 부장들'(2020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년) 등을 제작한 하이브미이더코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성수 감독과 황정민, 정우성 등은 ‘아수라’ 이후 오랜만에 재회했다.

특히 ‘서울의 봄’은 티저가 공개된 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바로 전두광으로 파격변신한 황정민의 비주얼 때문이다. “정민씨는 마술사고 마법사다. ‘아수라’ 때부터 연출 방법이 바뀌었다. 정민씨는 무대 연극도 잘하고, 연출가다. 전두광은 가만 있지 않는다. 늑대 무리의 대장처럼 기세 등등하게 움직인다. 그분이 블로킹 라인을 만드는데 천재다. 황정민처럼 에너지 넘치는 배우랑 일하면 악보를 주면, 황정민이라는 뛰어난 악기가 연주하는 것을 듣는 것이다. 그 연주를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은 거기서만 나올 수 있는 연주다. ‘아수라’ 때도 악인 역할을 하기 전에 ‘리처드 3세’라는 연극도 본인 극단에서 올렸다. 리처드 3세는 역사상 가장 사악하고 내면이 삐뚫어진 진정한 악당 중에 악당이다. 3년 뒤에 또 그 연극을 또 올렸다. 훨씬 더 좋더라. 그때 저는 영화 준비하고 있었고, 전두광을 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 전부터 서로 이야기는 오갔는데 할 사람이 없겠다 싶었다. 법 안에서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느낌이었다.”

파격적인 비주얼은 황정민이 흔쾌히 수락했고, 5개의 버전을 통해 영화 속 전두광의 비주얼이 완성됐다. “전두광이라는 인물은 이 이야기에 상징적인 인물이다.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고, 그 사람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든 것이다. 상징적인 모습이 될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흔쾌히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자신도 약간만 바꿔서 나가는 것이 싫다고 하더라. 외국 배우들은 완전히 지우고 나오는 경우가 있더라. 한번 해보자였다. 특수분장 제일 잘하는 사람들과 여러번 실험 끝에 정민씨는 ‘수리남’을 찍으러 가고 우리는 머리 모양을 여러 번 모델을 만들었다. 실제 정민씨가 착용하고 찍기 시작하면서도 5개 버전의 가발을 썼다. 점점 진화됐다. 미묘하지만 다 다르다. 여러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 연출 김성수 감독/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전두광을 비롯한 그 무리를 대적하는 사람은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장군이다. 군인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았던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감독과는 데뷔작부터 5번째 작품을 한 정우성이 연기했다. 하지만 이태신은 불같은 카리스마가 아닌 차분한 카리스마와 눈빛을 소유한 인물로 바뀌었다. “악당들만 인물을 바꿀것이 아니라 실존 인물의 설정을 가져왔지만 새로운 인물로 만들었다. 후반부는 팩션이다. 그 인물을 가공하는데 당시에 멋진 남자들 사령관은 남자답고 우렁차고 마초같고 거침없는 불같은 사나이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다. 영화의 내용과는 조금 다르지만 끝까지 항전하신 분이다. 지금 시대에 맞는 차분하고 설득력 있는 큰 소리 치지 않는 리더로 그렸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 중에는 과묵하고 선비처럼 흔들리지 않고 신념이 있고 자기 자리 잘 지켜온 분들이다. 저희 세대가 그리워하고 바라온 모습에 이태신 같은 장군을 넣으면 훨씬 더 호감을 갖게 될것 같았다. 정우성씨를 오랫동안 관찰했는데 그 삶이 그렇다. 그가 하는 유일한 꾸지람은 내가 생각했을 때는 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더 해주는 정도다. 성품이 태도를 반영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자기로부터 출발해서 역할로 가는 여정인데 ‘너 하는 식으로 해’라고 하니까. ‘평상시처럼 해’라는 괴리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감독은 “정우성씨가 제작도 연출도 하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생각했는데 이번 역할 하면서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 정민씨가 전두광을 하는 것. 그 당시를 영화로 재현하는 부담감. 그 역할을 재현하는 부담감이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 같다. 실존 인물에서 출발한 캐릭터지만 완전히 다른 캐릭터다. 본인의 모습을 넣으라고 했더니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더라.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원하는 캐릭터와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찾아나갔다. 그 캐릭터에 나의 마음을 넣으라는 것들이 다 모여서 긴장감이 형성된 것 같다. 저는 정우성씨 연기가 좋았다. 이전에는 서로 아이디어를 많이 냈었다. 후반에와서는 혼자 남아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하려고 할 때 혼자 움직인다. 그때부터는 표현 방법에 고민을 많이 하더라. 혼자 해결해서 오길 바랐다. 저도 냉정하게 보면서 ‘다른 것 없습니까?’라고 했었다. 외로운 역할을 수행하면서 외로운 역할을 하는게 필요하가도 생각했다. 그래서 ‘지독하게 외롭다’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서울의 봄’은 말 그대로 서울의 봄을 빼앗끼기까지의 9시간의 치열한 사투를 담은 작품이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통째로 바뀐 날로, 수도권 주변의 군부대들이 전씨 무리의 압박으로 탱크와 장갑차 등을 서울로 밀고 들어왔다. 이에 극 중 이태신 장군은 행주대교를 넘으려는 부대를 홀로 막기도 하는 극적인 연출이 등장한다. 반면, 긴박한 상황에 비해 전씨 무리들은 한 공간에 모여서 걱정만 하는 상황이 펼쳐져 상황만으로는 단조로움을 줄 수 있다. 10여명의 배우들이 한 공간에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박감을 안기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김성수 감독은 “이 영화는 촬영도 힘들었지만 캐스팅 오디션이 정말 힘들었다. 캐릭터가 있고, 대사가 있는 인물만 68명이더라. 그분들을 캐스팅한다는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캐스팅이 되도 다른 작업을 하고 계셔서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연극도 보고 눈여겨 본 배우들도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100% 만족한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이 영화를 위해서 더 열심히 해준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또 감독은 “그분들의 스케줄을 맞추는 게 전쟁이었다. 일반 드라마, 영화였으면 그렇게 해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거친 시대를 재현는데 자신이 배우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재능을 함께 참여해주셨다. 대단한 분들인데도 잠깐 나와서 그림자처럼 하는 역할을 해줬다. 화면에도 안 잡히는데 광양까지 오셔서 촬영해주셨다. 150여명 정도 함께 촬영해야 했다. 수경사가 104명이다. 반대는 훨씬 많다. 한꺼번에 찍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반란군 무리는 한정적인 공간 속에서 연극을 보는 듯한 몰입도 높은 장면이 탄생한 것은 여러 번의 리허설과 배우들의 역량이다. “‘아수라’ 이후부터 지금까지 연출 스타일이 바뀌었다. 모든 장면에 리허설을 하기 시작했다. ‘아수라’하면서 이모개 촬영감독이랑 만들어낸 방법이다. 요즘은 시각적인 센스가 있는 분들이 많다. 배우들은 반복해서 찍어야 하니까 촬영은 편한데, 샷이 약간 생동감이 안 생긴다. 이번 영화는 그날 밤 휘몰아치는 상황을 종군기자처럼 따라가야 한다. 잘 짜여진 화면이면 진짜같지 않다. 취재할 때 쫓아가면서 찍는 느낌이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우들이 계속 움직인다. 전두광이 자기 집에서도 움직이면서 한다. 여러 동작을 하게 한다. 여러 사람이 인과적으로 움직임을 하게 되면 인물들간의 관계 드라마가 형성이 되는 것이다. 카메라로 그걸 찍으면 생동감 있는, 이유가 있게 움직이도 대사를 치는 힘이 있는 화면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아수라’ 때 깨닫고 ‘서울의 봄’은 배우 개개인이 역량이 있어야겠다 생각했다. 너무 초짜면 그런 걸 잘 모르니까. 유명도도 있지만 연극하는 사람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연극 배우들을 위주로 캐스팅했다.”

▲영화 ‘서울의 봄’ 연출 김성수 감독/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 중심에 선 황정민에 감사함도 전했다. “정민씨가 스스로 움직이면 자기를 둘러싸서 에너지를 채워줬다. 경험이 없는 분들은 어색할 수 있고 생동감이 떨어질 수 있다. 하나회 사람들은 침묵하고 할 때도 성이 났던 늑대들이 의기소침했다가 입맛을 다시거나 그런 10여명의 탐욕스러운 늑대 무리를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리허설 하면서 서로 의견을 내면서 한다. 이분들은 한 시간 반이면 완벽하게 리허설이 된다. 제가 리허설 하면 이모개 촬영감독님이 다 따라가면서 찍어본다. 미술 감독님은 ‘아수라’때부터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사방을 세팅하는 분이다. 화면에 잡히는 부분을 중심적으로 배치하고, 조명감독이 카메라가 자유롭게 가야해서 조명기를 세울 수 없다. 화면 안에 광언(상식을 벗어나 미친 듯이 말함. 또는 그런 말.)이 많이 나온 이유다.”

그 말미 클라이막스에는 79년 서울 세종로가 등장한다. 청와대 입구를 수백개의 바리게이트가 쳐지고, 세종로 한복판에 탱크 등이 등장한다. 반란군 세력을 막기 위한 이태신 장군과 군인들, 반란군 세력이 바리게이트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한다. 덕분에 리얼리티와 몰입감은 한층 고조된다. 김성수 감독은 “79년 12월 12일 세종로를 재현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스튜디오 하이라는 신생 VFX 회사가 함께 만들었다. 광양 컨테이너 선적항에 도로처럼 만들고 옆은 자갈밭인데 아스팔트를 깔아서 선을 연결시켰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컴퓨터 그래픽이다. 그때의 사진과 기록들이 많다. 10.26 사태 이후 시내에 군인들이 있던 기록들도 있다. 사진과 앵글을 똑같이 재현해서 유사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촬영이 장마 때 진행됐다. 더울 때 군복입고 겨울처럼 찍어야 했다. 저희 팀이 정말 훌륭하다. 이태신과 전두광만 보겠지만, 진짜 그들이 그 곳에 있다는 느낌이 중요했다. 촬영 감독님과 얘기하면서도 팩션화 된 이야기지만 9시간 소용돌이치는 모습도 있어야 하지만 드라마틱하게 찍어서는 안 되고, 다큐와 중간에서 긴장감을 갖고 가자고 했다. 세종로는 허허벌판에서 찍는 것이니까 기술적으로도 난이도가 높았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연출함으로서 40년동안의 궁금증은 해결됐을까. 감독은 “저한테는 인생의 수수께끼고 숙제였다. 이걸 영화로 풀어서 냈다. 영화로 만들어서 드린다. 여러분들이 재밌는 영화로 봐주셨으면 한다. 만약 저도 호기심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44년이 흘렀다. 영화 찍으면서 그 시대를 복원하면서,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사적으로 알리는데 도움이 댔으면 하고 바랐다. 역사적인 호기심이 생겨서 역사책을 열어볼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명분이라는 깃발을 놓고 세우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탐욕은 떡고물을 나눠준다. 결국에는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이 끝까지 지켜줬을 때 역사적으로 판명되니까. 약간은 과장을 했지만 당시 신념을 지켰던 진짜 군인들을 부각 시켜서 역으로 그 사람들을 비추는 거울이 되서 그 사람들의 잘못을 보여주고 싶었다. 왜 그들은 바보처럼 명분을 지켰을까 생각해봤는데 제가 나이 먹고 세상을 살면서 보니 불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라,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원칙을 가지고 산 사람들은 자기 판단으로 전 생애가 대답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 있었다는 것을 지금 사람들이 알았으면 했다. 너무 반란 세력들만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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