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만든, 촬영·조명·미술감독이 밝힌 비하인드 스토리

웰메이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한국영화의 완성도를 높인 베테랑 스태프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600만 관객을 향해 가는 영화 ‘서울의 봄'(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은 김성수 감독의 집요한 연출과 황정민 정우성 등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로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탁월한 완성도는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를 넘어 1979년 12월12월로 관객을 빠져들도록 만든 프로덕션 경쟁력에서도 나온다.

‘서울의 봄’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들, 이모개 촬영감독과 이성환 조명감독, 장근영 미술감독의 활약이 주목받는 이유다.

● “감정선이 중요할 때는 집요하게 인물에 따라붙었다” (이모개 촬영감독)

이모개 촬영감독은 ‘감기’와 ‘아수라’에 이어 ‘서울의 봄’에서 김성수 감독과 다시 만났다.

김성수 감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모개 촬영감독은 “집요하면서도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으로 그 날의 숨막히는 현장, 그 속에 들어선 인물들을 포착했다.

“김성수 감독님이 다른 영화 때와 달리 이번에는 참고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감독님 머리 속에 생생하게 있는 ‘그날로 가보자’는 말이 곧 촬영 콘셉트였다.”

“배우들이 화면을 꽉 채운 장면도 각자가 다른 무엇을 하고 있다. 리허설을 하고 배우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의 위치와 동선을 정하는 방식으로 촬영했는데 ‘서울의 봄’은 인물이 많아서 더 효과적이었다.”

“인물의 감정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김성수 감독님의 원칙 아래 감정선이 중요할 때에는 집요하게 인물에 따라붙었다.”

● “가장 많이 신경쓴 부분은 이태신의 얼굴” 이성환 조명감독

이성환 조명감독 역시 이모개 촬영감독처럼 ‘감기’와 ‘아수라’를 거쳐 ‘서울의 봄’으로 합작을 이은 파트너다. 1979년 12월12일 긴박한 순간을 보다 현실감 넘치게 표현하는 데 있어서 조명 효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영화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조명기를 최대한 배제하고 배경에 실제 있는 광원을 찾으려고 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나 서치라이트, 경광등, 가로등 같은 빛을 활용해서 리얼함을 더했다.”

“전두광은 빛을 잘 사용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숨고 싶을 때는 어둠 속으로, 대중 앞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는 빛을 즐기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많이 신경썼던 부분은 이태신의 얼굴, 그의 고단함과 외로움, 혼란 등의 감정을 빛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서치라이트가 수도 없이 그를 때린다. 그렇게 맞아도 포기하지 않는 이태신의 근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 “12.12 군사반란 직후 13일 새벽 담은 다큐 영상 메타포” (장근영 미술감독)

장근영 미술감독은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시작으로 ‘승리호’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활약한 전문가다. 김성수 감독과는 ‘아수라’에 이어 ‘서울의 봄’에서 다시 뭉쳤다.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다룬 영화인 만큼 리얼리티를 구축하는 과정은 중요했다. 당시 서울 광화문 일대와 한남동, 필동 등을 어떻게 구축하는지에 따라 영화의 리얼리티는 갈릴 수 있었지만 오랜 경험으로 쌓은 노하우는 강했다.

장근영 미술감독은 고증 자료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 육군본부 B2 벙커, 반란군의 본부인 30경비단, 보안사와 수경사, 특전사령관실 등 주요 공간을 완성했다.

“12.12 군사반란 직후의 13일 새벽, 광화문 광장과 서울 시내를 다큐멘터리로 찍은 옛 영상 자료를 봤다. 서울 도심에 탱크가 들어와 있고, 지금의 서울과 달리 공기가 무겁고 묵직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 장면을 메타포로 삼아 ‘그날의 공기’를 제안했고, 이후 ‘서울의 봄’의 비주얼 콘셉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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