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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유명인이 어딘가에 기부했다는 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액수다. 유명세에 합당한 액수이면 별생각 없이 좋은 일 했네, 라며 가볍게 넘기고 예상에 훨씬 웃돈다거나 턱없이 못 미치거나 하면 그제야 자세히 들여다보며 되묻는다. 도대체 누가 어디에 하길래 액수가 이런 거야, 하고.

여기서 그 혹은 그녀가 어디에 어떤 마음과 목적으로 기부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번 만큼 사회에 잘 환원한 것인지 그 액수의 적절함만을 살펴볼 뿐이다.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지고 그 결과가 하나의 평가 기준이 되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사고에 입각한 시선이다.

그렇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상 그 누구도 해당 기준에서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우리의 현 상황이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재 처한 상황에 불과한 것으로, 그와 동시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진실이다.

최근 개그맨 양세형이 자신과 함께하는 스타일리스트의 모친이 암 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300만 원을 전달한 사실이 알려지며 사람들의 짙은 호응을 받았다. 놀랍게도 좋은 방향의 호응만 있진 않았다. 반감도 적지 않았는데, 좋지 않은 반응이 나올 게 무엇이 있을까 싶겠냐만 그들에게 걸림이 된 대목은, 다시 한번 놀랍게도 ‘300만 원’이란 액수였다.

양세형이 지난해 100억 원대의 건물주가 된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일반인이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가의 건물을 가진 재력가가, 그에 비하면 ‘고작’이란 표현이 붙을 수밖에 없는 적디적은 금액으로 마음을 표현했다는 거다. 게다가 예능프로그램의 소재로까지 활용했다고 여기며 불쾌해했다. 한 마디로 온갖 생색은 다 냈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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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박하는 쪽의 의견은 이러했다. 끼니도 집 근처 구내식당에서 때우고 패딩도 몇만 원짜리를 사는 양세형에게 300만 원이란, 절대 적지 않고 오히려 크다고 봐야 할 액수라는 것이다. 어느 입장이 좀 더 일리 있을까. 사실 어느 쪽도 일리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둘 다 오로지 액수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양세형과 해당 스타일리스트의 관계에 있어, 양세형의 위치에 있어 얼마를 건네주었어야 적당했냐는 거다.

제각기 기준에 따라 말할 순 있겠다. 하지만 누구의 것도 정답이라 하진 못할 터. 애초부터 정답이 없는, 정답에 다다르지 못할 질문인 까닭이다. ‘100억 원’이라는 액수가 선사하는 압도적인 무게에 짓눌려, 정작 가장 먼저 헤아려야 했을 것들, 양세형과 스타일리스트 사이에 오고 간 마음과 이야기들은 간과했다. 진짜 문제는 이 마음과 이야기들은 어떤 수치로도 잴 수 없다는 데 있다.

정작, 중요하게 여겨야 할 맥락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숫자에만 집중한 결과, 숫자만 남아 후에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는, 실체가 없는 문제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야말로 자본주의 사고방식의 맹점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우리 또한 알게 모르게, 수도 없이 겪고 목격해 왔다. 연봉으로 그간 여러모로 애써온 시간의 가치가 매겨지고, 집의 평수로 쌓아온 삶의 질이 판단되지 않았나.

이러한 세계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이야기를 애써 만들어 가고 있는지는 하등 중요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알게 모르게 수도 없이 겪고 목격해 왔다. 이 세계와 그 속에 놓인 삶이 맞닥뜨리고 있는 구체적 현실에는 감히 숫자로 혹은 돈으로 잴 수 없는 가치들이 수두룩하게 존재하며 이것이 결국 우리의 실재적 삶을 완성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매 순간 자각한다면 숫자가 아닌 마음,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MBC ‘전지적 참견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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