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태오. / CJ ENM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인생의 모든 순간순간이 다 기억에 남아요.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와 있을 수 있는 이 상황이, 나뭇가지가 갈라지는 딱 그 순간 같아요. 진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한순간에 제가 만약 5초만 늦게 문을 열고 나갔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부모님도 그렇고, 감독님도 그렇고, 배우자도 그렇고.”

유태오(43)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감독 셀린 송) 개봉을 앞두고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한국에서 촬영됐으며, 대부분의 대사가 한국어로 이뤄졌다.

유태오는 극 중 나영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뉴욕에 온 해성 역을 맡았다. 해성은 어린 시절 첫사랑과 12년 만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재회하지만 헤어지고, 다시 12년이 흐른 뒤 용기를 내 뉴욕을 찾는 인물이다. 그리고 유태오는 제7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한국 배우 최초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배우 유태오. / CJ ENM

이날 유태오는 “한국 개봉이 너무 기분이 좋다. 드디어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설레고 동시에 좀 두렵기도 하다. 나는 다국적 문화 안에서 살아온 교포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굉장히 평범한 한국남자를 표현해야 했다. 어휘력이 부족하게 느껴져서 나 스스로 비난하기도 했다”며 “감독님이 내 안에서 무언가를 보고 캐스팅해 주셨다 믿었다. 해외에서 반응이 좋았는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봐주실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고 개봉 소감을 전했다.

이어 “전에 ‘미나리’ 같은 영화도 뒤늦게 우리나라에서 개봉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보면 CJ에서 전략적으로 개봉을 영리하게 하는 것 같다. 해외 흥행의 파도와 평론가의 긍정적인 글들을 입소문이 퍼지게 하고 우리나라에서 기대가 크게 만드는 전략 같다”며 “오스카 시상식이 11일에 있는데 개봉이 6일이다. 월드컵처럼 뭔가 사람을 긍정적으로 긴장하게 만드는 느낌”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해성 역을 위해 오디션을 본 배우는 30명이었고, 유태오는 가장 마지막으로 오디션을 본 배우였다. 그는 “제작사와 감독님이 한국에서 해성 역할을 찾는다고 했지만 당연히 나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도 나를 평범한 한국남자로 보지 않는다. 나도 이해한다. 그런데 미국 캐스팅 디렉터가 ‘뭔가가 있는 것 같다’며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올렸다. 덕분에 시나리오를 받고, 신을 찍는 공식적인 오디션 단계를 밟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오디션이 열린 2주 후, 제41회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한 날, 유태오는 해성이 됐다.

배우 유태오. / CJ ENM

유태오는 ‘패스트 라이브즈’에 매력을 느낀 이유로 시나리오를 꼽았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인연’이라는 동양철학적인 요소가 좋았다. ‘인연’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다. 그 요소를 서양 관객들에게 소개하면서 로맨스로 잘 빼내서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너무 좋은 시나리오였다”며 “엔딩 장면의 여운이 너무 좋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눈물이 나기 힘든데 눈물이 핑 돌았다. 연출만 잘 되면 사람을 감동시키는 영화가 될 것 같았다. 너무 하고 싶었는데 내가 선택권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선택당하는 직업이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CJ ENM과 A24의 공동제작이라는 것도 제가 크게 긴장하게 만들었어요. 이 시점에서 한국 소재로 ‘미나리’의 A24와 ‘기생충’의 CJ가 손을 잡는다고? 그 합작의 홍보대상, 로맨틱물 남자주인공이 내가 될 수 있다고? 이런 생각을 하니까 진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러니까, 책임감을 느낀 거죠.”

배우 유태오. / CJ ENM

유태오는 ‘패스트 라이브즈’를 “내 인생을 바꿔준 작품”이라며 이를 두 가지 포인트로 짚었다. 그는 “객관적인 포인트를 말씀드리자면 ‘패스트 라이브즈’가 내 입장에서, 내 위치에서, 내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았다. 관객들이,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느꼈던 마음을 똑같이 느낀다면 이후 내 커리어가 어떻게 변할지 예감이 왔다”며 “물론 지금도 아직 한국과 미국 오디션을 열심히 보고 있다. 그런데 또 50%는 오퍼가 들어온다. 그래서 좀 선택할 수 있는 너무나 감사한 상황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학교에서 배우고 경험으로 쌓았던 방식으로 모든 역할을 접근했다. 감독님은 뭘 원하시고, 캐릭터를 파악하고, 한국어 때문에 질문하고,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앞뒤 상황과 인식 내 인생을 파악했다. 기술적인 접근이었다”며 “해성을 보여주려면 ‘인연’이라는 철학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소화해야만 여한 없는 연기가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동양철학과 불교에 담긴 인생과 인연, 운명과 팔자를 믿어야 하는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끝나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도 물건도 다 ‘인연’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도 저하고 ‘인연’이거든요. 이런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저한테 그저 캐릭터가 아니고 한번 살아간 삶이 돼버리는 거예요. 과연 저한테 그 ‘인연’이 닿을 것인가 안 닿을 것인가의 문제예요. 어떤 캐릭터가 영혼이라면 제가 영혼을 행위하는 거잖아요. 제가 한번 살았던 영혼이라고 보니까 복잡해지더라고요. 그렇게 제 인생이 어떤 운명인지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배우 유태오. / CJ ENM

유태오는 연기에 대한 접근과 캐릭터 파악을 달리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평범한 한국 남자 해성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는 “난 캐릭터와의 공통점 하나를 찾고 그걸 밀고 나가는 사람이다. 그게 외형적일 수도 있고 감성적일 수도 있다. 복합적으로 봤을 때 해성이는 자기 상황에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나도 내 의지로 변화시키지 못한 현실의 여러 요소들이 있다. 열심히 노력해도 뭔가 못하는 ‘한’이 맺힌 것들을 ‘멜랑콜리’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어 연기에 대해서는 “선생님과 매주 연습하고 준비했다. 어휘나 모음, 음정과 뉘앙스와 그 뒷배경까지 설명해 주시면 그 안에서 내가 선택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어가 로맨틱하게 들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와 한국 관객들에게 어떨지를 동시에 고민하고 생각해야 했다”며 “예전에 ‘중경삼림’을 독일에서 자막으로 본 적 있다. 광둥어를 알아듣지 못했는데 양조위의 광둥어가 아름답고 멋지게 들렸다. 내 말도 그렇게 들려야 했다. 그 점에 집중하면서도 한국 관객들을 위한 타협점도 찾아야 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패스트 라이브즈’ 이후 좀 더 본능적으로 연기하게 됐다. 그 이후 첫 작품이 ‘연애대전’이다. 감정을 느끼고 편하게 표현하고 웃음까지 생각하면서 본능적으로 가는 연기를 좀 시도할 수 있었던 단계였다. 그다음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인데 내가 캐릭터의 ‘인연’과 영혼을 재현한다는 철학을 갖고 연기한 게 처음”이라며 “사실 이게 맞는 말인지 어쩌면 망상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결과를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단다. 이제 앞으로 내 연기가 변할 건지 아니면 발전할 건지 계속 부딪힐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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