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대살굿판 명연

길이 남을 명장면…배우 김고은의 혼신으로 탄생

영화 ’파묘’의 명배우 김고은 ⓒ이하 ㈜쇼박스 제공 영화 ’파묘’의 명배우 김고은 ⓒ이하 ㈜쇼박스 제공

실로 오랜만이다. 캐릭터와의 공감과 별도로, 연기 그 자체로 전율이 일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영역을 구분하기 힘든 연기의 영역이지만, 소프트웨어를 이해하기 전이라도 그 하드웨어만으로 눈물이 날 수 있는 연기다.

언어가 다른 외국인이어도, 심지어 음을 소거하고 그 눈빛과 몸짓에만 집중해도 소름이 돋는 연기. 영화 ‘파묘’에서 배우 김고은이 해냈다.

인간과 귀신 사이, 과학과 미신 사이에 선 무당 화림. 음기 가득한 묘에서 뿜어나오는 온갖 액을 온몸으로 받아내 공중으로 떨쳐 증발시켜 버려야 하는, 무덤 파는 시간을 벌고 파묘가 가져올 마기의 파장을 막아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화림은 칼춤을 추고 손가락을 달궈 생긴 검은 재로 얼굴에 사선을 긋고, 돼지 심장 움켜쥔 손을 거침없이 입에 가져와 피칠을 하며 대살굿 한판을 펼쳐냈다.

진짜 무당 같다? 그래서 극찬하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모든 시선을 받아 안고, 영화 최고조의 긴장미를 내 한 몸으로 빚어낸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던져야 한다, 김고은은 던졌다. 그런데, 그냥 던지기만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허구를 ‘연기’하는 여느 영화와 달리, 제아무리 이건 영화 촬영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떨칠 수 없는 ‘두려움’이 불가피한 장면이다.

과연 어떤 배우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연기한다고 할 때, 진정 영과 육을 다해 그야말로 혼신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 손가락에 꼽을 일이다. 나는 과연 배우 김고은만큼의 용기와 헌신으로 내 일에 임하고 있는가,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다.

소름을 넘어 눈물 돋는 연기, 그를 해낸 배우 김고은 ⓒ 소름을 넘어 눈물 돋는 연기, 그를 해낸 배우 김고은 ⓒ

영화를 다시 보니, 신명 들린 게 아니고 배우 김고은 스스로 혼신을 바친 연기가 더욱 또렷이 마음을 파고든다. 생각할 겨를 없이 그저 멍하게 신스틸러 김고은이 탄생시킨 명장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부지불식간에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영화 ‘은교’ 때 이미 대한민국 영화사에 없었고 다시 있기 힘든 연기를 어린 나이에 감당해 낼 때부터 보통은 아닌 배우라고 생각했지만, 김고은은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지 않았다. 계속 성장했고, 많은 성공과 드문 좌절을 맛보며 깊어졌고, 그래서 다시 없을 한판을 완성해 냈다.

과거 배우 황정민의 연기를 보며 눈물 흘린 바 있어선지, 영화 ‘곡성’에서 일광이 되어 무섭디 무서운 굿판을 벌여선지 ‘파묘’ 김고은을 보며 연상이 됐다. 맑디 맑은 배우 김고은이 뜨겁디 뜨거운 배우 황정민과 교차하는 지점은 장면을 장악하는 ‘최고의 신스틸러’라는 좌표다.

배우 김고은은 영화 ‘파묘’에서 3가지 칠을 하고 등장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스크린에서 확인해 볼 만한 얼굴이다. ⓒ 이화림 캐릭터 포스터 배우 김고은은 영화 ‘파묘’에서 3가지 칠을 하고 등장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스크린에서 확인해 볼 만한 얼굴이다. ⓒ 이화림 캐릭터 포스터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 제작 ㈜쇼박스·㈜파인타운 프로덕션, 공동제작 ㈜엠씨엠씨, 제공·배급 ㈜쇼박스)의 이야기 전개에서 이화림의 대살굿은 하이라이트 지점이 아니다. 그러나 배우 김고은의 연기로 영화를 본 관객의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을 명장면이 됐다. 기승전결, 상승세를 타는 승의 단계에서 일찌감치 큰 만족감을 안은 관객은 나머지 여정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다. 신스틸러가 필요한 이유다.

배우 김고은은 ‘파묘’ 중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연기 이력에서가 아니라, 한국영화사 전체를 털어도 최고라 할 만한 대단한 연기를 하고도 뽐내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잘한 걸 모르는 사람처럼, 도움 주신 무속인 선생과 장재현 감독 이하 함께한 모든 제작진과 출연진 칭찬에 여념이 없다.

평범하게, 대수롭지 않게 얘기해서 작품을 보기 전에는 영화 ‘영웅’의 기차 신보다 못한 장면인가 착각했다. 어쩌면, 그저 최선을 다할 뿐,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게 순수해서 온전히 모든 걸 쏟아 넣는 연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손대지 않은 얼굴처럼,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은 순정의 연기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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