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희준 연출작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남들의 평범한 하루가 병훈(이희준 분)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오염강박,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침대에서 일어난 후부터 그에게 모든 일상이 스트레스로 시작되는 병훈은 외출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엄마에게 오는 전화조차 잘 받을 자신이 없다.

정신상담을 받는 병훈은 오늘 사람 많은 매장에서 옷을 사야 하는 숙제를 부여 받는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떠들고 앉아있는 사람들, 먹을 걸로 장난치고 침이 마구 튀기는 것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병훈은 고역스럽다. 버스의 손잡이를 잡는 것조차 고통이다.

옷을 사러 가는 길,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며 음식 소스가 묻는 그야말로 병훈에게는 ‘재난’ 같은 일이 벌어지지만 그래도 숙제를 하기 위해 나아간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밝은 색 옷을 구매해 입어본다.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최소한의 접촉을 위해 카드를 기계에 본인이 긁었다. 갈아입은 옷을 입고 매장에서 나온 병훈의 얼굴에는 고단함과 뿌듯함이 공존한다. 다시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 병훈은 울음이 나올 것 만 같다. 전화기 건너편 생일 축하한다는 엄마의 말과 눈물에 간신히 자신의 울음을 삼켜내며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햇빛마저 따사롭다. 오늘은 병훈의 생일, 평범한 일상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은 오늘이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긴장감이 풀렸는지 병훈은 고픈 배를 느끼고 군중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병훈의 하루’는 배우 이희준이 연출한 작품이다. 이 영화가 몰입감이 높은 이유는, 작품의 이해도가 가장 높은 연출과 주연을 이희준이 해냈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공포감을 느끼고 불안해 하는 모습을 쪼개 리듬감 있게 컷 안에 담아냈다. 연출적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초점이 흐려지거나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과 소리들도 섬세하게 배치해 보는 이들의 마음과 시선을 병훈과 일치하게 만든다.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어두운 곳에서 빛으로 등으로 공간과 조명의 변화가 병훈의 심리와 함께 한다. 병훈이 입고 있는 옷도 검은색에서 주황색으로 바뀌며 자신도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병훈의 희망을 드러낸다. 이희준이 얼마나 훌륭한 배우인지와 연출가로서의 눈도 뛰어나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다. 러닝타임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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