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개봉

우리가 알고 있는 사고가 우연이 아닌, 누군가의 촘촘한 설계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면?

이요섭 감독의 ‘설계자’의 이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홍콩영화 ‘엑시던트’가 가인의 의심에 초점을 맞춰 출발했다면 리메이크한 ‘설계자’는 개인을 시선을 통해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처음부터 ‘설계자’는 영일(강동원 분)을 필두로 한 삼광보안팀이 어떻게 사건을 조작해 우연한 사고를 만드는 지 보여준다. 점만(탕준상 분)이 타깃을 도발해 유인하고, 재키(이미숙 분)와 월천(이현욱 분)이 타깃의 눈을 돌리고 설계한 지점으로 무사히 오도록 돕는다. 자신의 화를 돋운 배달 라이더로 변장한 점만을 따라간 타깃은 삼광보안팀의 미끼를 물어 공사장 앞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고 공사장 건물이 무너지면서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 이로써 삼광보안의 계획은 성공이다.

어느 날 영일은 정치인의 딸 주영선(정은채 분)으로부터 아버지를 사고사로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의뢰인은 돈과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다. 과거 부인이 비자금 사건에 휘말렸을 당시 함께 의심을 받았지만 부인이 사고사를 당하는 바람에 사건은 수면에서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딸이 부인의 비자금을 전달 받아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게 되고, 딸은 아버지의 성향상 자신을 내칠 것이라고 판단, 영일에게 의뢰한 것이다.

그리고 영일은 정치인의 부인의 사고 패턴을 분석해 청소부에게 처리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삼광보안이 작은 기업이라면 청소부는 대기업이다. 영일은 실체를 확인한 적 없지만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 짝눈(이종석 분)도 청소부에게 제거됐다고 믿고 있다.

영일은 정치인을 제거하기로 한 날, 변수로 인해 청소부의 패턴으로 의심되는 사고에 점만을 잃게 된다. 사건의 원래 타깃이 자신이라고 생각한 영일은 팀원조차 믿지 못하고 의심을 키운다. 이제부터 이요섭 감독은 영화 곳곳에 의심할 만한 요소를 심어놓는다. 여기에 1인 미디어인 유튜버들을 투입시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이미지와 정보를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배신자는 누구인지, 청소부는 누구인지, 이제 누가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영화는 전개될 수록 관객들을 혼란으로 이끈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통해 진실을 왜곡하는 사회적 구조는 영일의 심리 상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모든 사람의 심리 상태가 이 회색 지대에 놓여 있으며, 이는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한층 더 부각시킨다. ‘거대한 진실은 있지만, 진실을 알 수 없다’는 감독의 관점은 영화 전반에 걸쳐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주영선의 결말이 인상적이다. 미디어가 노출시킨 이미지에 대한 불암감에 시달린 사회가 만든 비극일 수 있다. 현대 사회의 불안과 확증편향을 스크린에 옮겨 놓은 이요섭 감독의 메시지도 주목할 만 하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가 극적이다 보니 개연성은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범죄극과 심리극에서 균형을 잃어 사건이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올라가는 크레딧에도 관객들의 호불호가 예상된다. 영일과 짝눈의 관계성도 조금 더 깊이 있게 그려지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사건을 설명하는데 그치면서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나 관계성이 잘 붙지 않는다.

배우들의 호연 만큼은 이견이 없다. 적은 대사 속에서 눈빛과 분위기 만으로 극의 긴장감을 유지시켜야 하는 강동원의 역할이 크다. 후반부로 진행할 수록 자신조차 믿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영일을 통해 강동원은 오랜 배우 경력 속에서 또 새로운 얼굴을 꺼낸다. 여기에 의심의 주체가 되는 이무생과 정은채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시선이 뒤바뀔 때마다 그들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180도 바뀌는 걸 목격 할 수 있다. 성소수자 역할을 한 이현욱의 호연도 ‘설계자’의 성과다. 러닝타임 9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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