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고등학교 문학 교사인 정미는 학생들의 백일장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고 근무 중이다. 오랜 시간 준비한 시집도 준비해야 하는데 현실이 녹록지 않다. 그런 정미에게 제자 한 명이 찾아온다.

얼굴을 봐도, 이름을 들어도 낯설지만 소정은 “작가는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다. 작품의 질은 양이 만드니까 매일매일 쓰라”는 정미가 했던 말 때문에 명문대에 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제삼자가 보면 교사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이겠지만 정미는 잘 기억나지 않아 어떤 표정과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

소정은 가방에서 책을 출판했다면서 정미에게 자신의 책을 선물한다. 바쁜 현실을 살아내면서 작가라는 꿈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정미에게 제자 소정의 책은 정미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휩싸이게 만든다.

그럼에도 정미는 자신을 찾아온 반절 정도 읽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소정에게 책을 건넨다. 참 좋았던 글들로 가득 차 꽤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소정은 그 책을 보자마자 다 읽은 책이라며 감상평을 쏟아낸다.

정미는 소정에게 담배를 피운다고 한 소리 했지만, 혼자 덩그러니 서서 텅 빈 눈으로 담배 연기를 내뱉듯 한숨을 가늘고 길게 내뿜는다.

영화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겨울꿈’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청춘의 한가운데서 반짝이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끝내 가질 수 없을 때의 상실감과 공허함이 느껴진다.

‘그는 이제 더 잃어버릴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마침내 상처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라는 피츠제럴드의 ‘겨울꿈’의 한 문장을 구현한다면, 마지막 정미의 얼굴이 아닐까.

꿈이 있어야 인생을 잘 살아낼 수 있다고 하지만, 꿈이 있기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 이상희가 담담하지만, 내면에서 어느 때보다 시끄럽게 소멸되가는 정미의 불꽃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정미를 도발하는 김예은과 이상희의 합이 잠들어있던 ‘겨울꿈’을 깨운다. 러닝타임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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