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식품업계 ‘꼼수 인상’ 조사

근절할 제도적 뒷받침 부재 비판

식품업계, 보여주기식 행정 우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시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시스

정부가 치솟는 생활물가를 잡기 위해 식품업계의 슈링크플레이션 단속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그동안 ‘꼼수 가격 인상’으로 지적되던 문제에 정부가 직접 나서는 데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이후 이를 근절할 제도적 뒷받침이 없어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치는 것이 아닌지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정부는 제품 용량을 줄이고, 원재료 함량을 조절하는 등의 편법 인상을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지난 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슈링크플레이션 근절을 위한 자율협약을 맺었다. 73개 품목을 조사하고 12월 초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슈링크플레이션 신고센터를 설치해 제보도 받고 있다.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업계와 자율협약을 맺어 제품 용량을 줄일 때 자발적으로 소비자원에 알리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가 슈링크플레이션 잡기에 팔을 걷어붙인 만큼 식품업계도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은 영어로 줄어든다는 의미의 ‘Shrink’와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 상승 ‘Inflation’을 더한 표현이다. 원재료나 인건비 등이 상승할 때 원래의 소비자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제품의 용량이나 품질을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식품업계 슈링크플레이션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 주목받은 대표 사례로는 CJ제일제당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숯불향 바비큐바’의 중량을 280g에서 230g으로 줄인 것, 해태제과가 ‘고향만두’ 중량을 415g에서 378g으로 줄인 것 등이 꼽힌다.

식품업계가 최근 다시 슈링크플레이션에 주목한 것은 정부가 물가 인상에 제동을 걸고 있어서다. 정부가 올해 초부터 식품기업 수장들을 모아놓고 ‘가격 인상 자제’를 연일 촉구하고 있지만,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어 이를 탈피할 자구책으로 꼼수 인상을 해왔던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들은 정부가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물가 안정을 촉구하고 나서는 게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슈링크플레이션의 정당성은 별개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최종적인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눈속임은 기만이라는 것이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시스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시스스

다만 이같은 정부의 움직임이 실제로 물가를 끌어내리거나, 물가 상승속도를 둔화시킬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 크다. 고금리와 고물가로 신음하는 서민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겠다는 정책의지의 발현이지만, 실효성이 있겠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식품 원가에 영향을 미치는 원재룟값과 에너지 비용 등 전반적인 물가가 상승세인데 판매가격 조정 수단을 모두 동결하라는 것은 기업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 슈링크플레이션 자체가 실적이 악화된 기업이 마지못해 선택한 전략인데 이를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복수의 식품업계 관계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기업들도 힘든 상황에서 채찍만 드니 답답한 상황”이라며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 기만이 아닌 불황을 탈피하기 위해 찾은 자구책의 일환”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원부자재 가격과 인건비, 강(强)달러 현상 등이 맞물리면서 생산자 부담이 크게 늘었는데 정부가 뚜렷한 해결책이나 지원방안 등 없이 압박만 이어가고 있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시장의 개입보다는 물가 안정을 촉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일시적으로 통제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는 기업이 버티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해외 진출 등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천정부지 오른 물가 앞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고 뒷짐지고 먼 산만 바라볼 수도 없고, 국민들에게 먹거리 인상과 관련해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물가 인상 통제를 넘어 용량 등을 제한하는 것은 중량을 낮추고 가격을 동결하는 것이 편법인상이라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차원인 것 같다”며 “정부가 원재료 값 등 줄여줄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편승 인상에 합류하지 않도록 막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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