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TTL

1990년대 후반은 각종 검열과 규제가 풀리면서 문화 예술이 꽃 핀 시기이다. 광고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굴 향한 메시지인지, 왜 보내는 메시지인지도 모를 ‘선영아 사랑해’라고 쓰인 포스터가 ‘티저 광고’라는 명목으로 담벼락에 붙었고, 현란한 영상에 파격적인 카피를 앞세운 ‘저세상 감성’의 광고들이 앞다투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움직임 가운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TTL’ 광고였다. 몽환적인 영상 속, 지금 막 만화책을 찢고 나온 것 같은 비현실적인 외모의 소녀가 말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은 세기말 광고 특유의 ‘뭘 말하는지 모를’ 독특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사진 : TTL

확실한 것 한 가지는 TV 광고 속의 소녀가 예뻐도 너무 예뻤다는 것이었다. 이에 TTL 광고는 거의 인기 드라마나 영화급 화제성을 자랑하면서 시리즈로 이어졌고, 모델에 대한 관심도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시절 TTL의 단독 모델이었던 이는 바로 배우 임은경이다. 해당 CF로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이후 영화와 드라마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활동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을 마지막으로 그는 무려 10여 년간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간 임은경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근황을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신비소녀’로 연예계 접수

사진 : TTL

TTL과 임은경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윈윈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티저 광고의 화제성으로 인해 몸값이 3천만 원에서 3억 원으로 단숨에 오르기도 했다. 참고로 임은경은 16세 당시 배우 이병헌의 팬사인회에 갔다가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된 격이었다. 하지만 남모를 마음고생도 있었다. SK텔레콤 측에서 사활을 걸고 만든 광고이다 보니 유난히 지켜야 할 비밀 조항이 많았고, 이 때문에 임은경은 말을 못 한다는 둥, 외국인이라는 둥,  각종 루머에 시달리면서도 해명 한마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진 : TTL

 

 

청각장애 부모님을 둔 소녀 가장

사진 : tvN <웰컴! 두메산골>

이후 임은경은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비록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뼈아픈 실패로 남았지만, 2002년도에 류승범과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품행제로>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광고 모델이 아닌 ‘배우 임은경’의 주가도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드라마 <보디가드>, 영화 <시실리 2km>, <인형사>, <여고생 시집가기> 등의 주연을 연이어 맡으면서 입지를 다져 나가던 임은경은 지난 2004년, 마음 아픈 가정사를 고백하고 나선다. 알고 보니 임은경의 양친 모두가 청각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사진 : MBC에브리원<비디오 스타>

어렸을 때 친구와의 철없는 싸움으로 상대방의 어머니에게 “너희 부모님이 다 장애인이라서 네가 이러는 거냐”라며 폭언을 듣기도 했던 임은경은 그때부터 마치 부모님의 장애가 큰 죄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나 철이 들기 시작한 이후엔 오히려 부모님은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생겼고, 이에 연예 활동도 더 의욕적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임은경은 그 같은 가정사로 인해 시각 장애인을 돕는 MBC의 프로그램인 <눈을 떠요>의 MC를 맡기도 했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던 활동

사진 :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던 임은경은 2005년도 MBC 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를 끝으로 10여 년간 연예계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영문을 몰랐던 대중들에게 임은경이 뒤늦게야 밝힌 사연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실패가 독이 됐다는 것이었다. 당시로는 엄청났던  100억 원 규모의 해당 작품은 흥행에서 참패했음은 물론, 평단의 혹평까지 한 몸에 받았다. 이에 극의 주인공이었던 임은경이 느끼는 부담감 역시 엄청났던 것이다. 1999년도에 개봉한 영화에 대한 비판이 6년, 7년이 지나도록 계속 이어지자 결국 임은경은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던 그의 긴 공백기는 2015년도, 영화 <치외법권>으로 비로소 끝이 났다.

 

 

임은경의 근황

사진 : MBC에브리원 <비디오 스타>

임은경은 작년 여름, MBC에브리원의 예능 프로그램인 <비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자신의 근황을 직접 밝혔다. “차기작 준비는 없냐”고 묻는 MC들의 질문에, 임은경은 “아직 없다”라며 솔직하게 답변했다. 참고로 한국에서의 활동은 뜸했지만, 중국에서는 꾸준히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고 한다.

 

사진 : MBC <라디오 스타>

올 2월에 출연한 MBC <라디오 스타>에서는 스스로를 ‘38세 모태솔로’라고 소개하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당시 임은경은 “어릴 때에 데뷔를 한 탓에 만남 자체가 워낙 조심스럽기도 했고, 부모님이 장애인이시다 보니 남자 쪽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연애가 어렵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사진 : 엘리트 기획

참고로 임은경은 데뷔 이래 23년째 같은 소속사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손해득실보다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는 인물이라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처럼 고운 심성과 솔직함을 겸비한 임은경이 앞으로는 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길 기대하는 바이다. 

글 : 이희주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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