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 반란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손익분기점을 넘으며 흥행하고 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진압군 장성들의 생애에 대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두광(황정민)을 위시한 신군부 장성들은 평생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반란 진압에 실패한 진압군들은 본인과 가족들에게 닥친 비극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 플러스엠 제공

영화에서 주인공 이태신(정우성)의 실제 모델인 장태완 장군은 노재현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반란군에게 항복한 후 6개월간 가택연금에 들어갔고, 아들 소식을 듣고 충격받은 그의 아버지는 이듬해 4월 건강이 악화돼 사망했다.

1982년에는 서울대학교 자연대에 수석 입학한 아들 장성호 씨가 실종돼 숨진 채 할아버지의 산소 옆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 사건이 이어졌다. 부친의 죽음에 이어 참척까지 겪은 장태완 장군은 “성호는 내가 죽인 것”이라며 자책하며 평생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배우 정우성(가운데)이 연기한 장태완 장군.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실제 장태완 수도경비 사령관 / 플러스엠 제공, SBS ‘꼬꼬무’ 캡처

당시 장태완 장군은 아들의 묘지에서 “우리 내외의 인생은 사랑하는 성호(아들)가 이 세상을 떠났던 1982년 1월 9일로 끝난 것이다. 이제 남은 인생은 더부살이로서 우리 일가 3대를 망친 12·12사건을 저주하면서 불쌍한 외동딸 현리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공기업 한국증권전산 사장으로 그를 임명하자 이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 직책을 수용한 이유는 아내와 딸을 살리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신군부 세력을 용서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후에도 12.12 군사 반란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1993년에는 여러 장성과 함께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을 반란, 내란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1996년 12.12 군사 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으로 전격 구속된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증인으로 참석해 “한때는 함께 국방에 열심을 다하던 입장이었는데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소”라는 말을 남겼다.

2000년엔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 비례 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인으로 제2의 인생을 이어갔다.

2004년 정계은퇴 선언을 한 뒤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사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2010년 7월 26일 향년 78세에 숙환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12.12 군사 반란 때 장태완 장군을 배신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조문을 와 논란이 일었다. 반란 당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장 장군이 지휘하는 수도경비사령부의 핵심 전력인 30경비단을 이끌고 반란군에게 가담했다.

비극은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장 장군이 별세한 2년 뒤 그의 아내 이 모 씨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경찰은 이 씨가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밝혔다.

배우 정만식이 연기한 정병주 특전사령관.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정병주 특전사령관 / 플러스엠 제공,SBS ‘꼬꼬무’ 캡처

정만식이 맡은 공수혁은 정병주 장군이 모델이다. 신군부는 12.12 군사 반란 당시 특전사령관이던 정 장군을 회유하는 데 실패하자 체포 명령을 내렸다. 끝까지 저항하다 팔에 관통상을 입고 체포돼 강제 예편당했다. 이때 그를 체포했던 사람은 누구보다도 아꼈던 부하인 최세창 3공수 여단장이었다.

강제예편 이후에도 12.12 군사 반란에 대해 비판을 계속했던 그는 1988년 행방불명됐고, 이듬해 시신으로 발견됐다. 여러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정 장군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된 그의 묘소에는 현재도 비명을 새기지 않았는데, 유족들은 고인의 명예가 회복되고 사인을 밝힌 뒤에야 비명을 새긴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배우 김성균이 연기한 김진기 헌병감.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김진기 헌병감 / 플러스엠 제공,SBS ‘꼬꼬무’ 캡처

영화 ‘서울의 봄’에서 육군 수뇌부들이 육군본부를 버리고 수도경비사령부로 달아날 때 끝까지 남았던, 헌병대를 동원해 전두광을 체포하려고 했던 김준엽 헌병감의 모델 김진기 장군(김성균) 역시 강제 전역을 당한 인물이다. 이후 낙향한 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토지공사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2006년 별세했다.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김오랑 소령.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김오랑 소령 / 플러스엠 제공,SBS ‘꼬꼬무’ 캡처

극 중 정해인이 특별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오진호 역의 실제 인물인 김오랑 소령은 정병주 장군의 비서실장으로 반란군에 대항해 상관을 지키려다 흉탄에 맞아 숨졌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아내 백영옥 씨는 시력약화증을 앓고 있었는데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시신경이 마비되는 등 완전히 실명했다. 이후 군인 아파트에서 쫓겨나고 복지시설에서 봉사를 하면서 살았으나, 자신이 살던 건물 옆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베란다에서 실족한 것으로 알려졌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김오랑 소령은 1990년 중령으로 특진 추서됐다. 2014년에는 특전사령부에서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지난해 11월 29일 국방부 중앙전공상심의위원회는 김오랑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로 인해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명시하고 있다.

배우 이성민이 연기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 플러스엠 제공,SBS ‘꼬꼬무’ 캡처

극 중 이성민이 연기했던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총장)의 모델이었던 정승화 총장 역시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뒤 불명예제대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1987년 대선 직전 통일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과 손잡았으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정계를 떠났다. 이후 복권돼 예비역 육군 대장 자격은 물론 급여, 연금 등을 돌려받았다. 2002년 6월 별세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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