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중반 고연비 부각되며 ‘친환경차’ 대접 받으며 인기 누려

미세먼지‧질소산화물 등 환경오염 문제로 인기 급락…요소수 이슈도 발목

2016년 디젤 10분의 1에도 못 미치던 하이브리드에 지난해 판매 추월 당해

디젤차에 택시 시장 뺏길 뻔했던 LPG, 지난 1t 트럭 시장 뺏어와

트윈 도징 기술을 탑재해 '유로 6d'를 충족하는 폭스바겐의 '2.0 TDI' 디젤 엔진. ⓒ폭스바겐코리아 트윈 도징 기술을 탑재해 ‘유로 6d’를 충족하는 폭스바겐의 ‘2.0 TDI’ 디젤 엔진. ⓒ폭스바겐코리아

2023년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하이브리드차가 디젤차를 넘어선 해로 기억될 겁니다. 지난해 1~11월 하이브리드차 신규 등록 대수는 35만3647대로 디젤(27만4252대)을 넘어섰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디젤차가 요즘 찬밥 신세죠.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미세먼지 등 각종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며 눈총을 받아야 하고 이걸 줄이기 위해 요소수를 보충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하죠. 중국발 요소수 대란이라도 일어나면 더 골치 아파집니다. 심지어 아직 타고 다닐 만 한데 폐차를 재촉당하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디젤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클린디젤’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무려(?) ‘친환경차’라는 대접까지 받았었습니다.

힘 좋고 연비 좋고 친환경차 대접까지…2010년대 초‧중반 전성기 누려

디젤차의 장점은 다들 아실 겁니다. 우선 연비가 좋고, 연료로 사용하는 경유 가격도 휘발유보다 저렴합니다. 여기에 배기량 대비 최대토크가 높다는 것도 장점이죠. 흔히 ‘디젤차가 힘이 좋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는 트럭이나 SUV 등 무거운 차의 견인능력을 끌어올려주는 요인이자 연료비 절감 요인이기도 합니다. 가솔린 엔진으로 같은 토크를 내려면 배기량이 훨씬 큰 엔진을 써야 하고, 그만큼 연료비도 많이 들겠죠.

즉, 효율로만 따지면 디젤차가 가솔린차보다 훨씬 우위에 있습니다. 이는 한때 환경 측면의 장점으로도 여겨졌습니다. ‘연료 소모량이 적으면 탄소배출량도 적고, 그게 곧 친환경 아니냐’ 이런 논리였죠.

놀랍게도 그런 논리가 처음 나온 곳은 환경 규제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이었습니다. ‘클린디젤’이라는 용어의 원조도 그쪽이었죠. 유럽에서는 90년대부터 일찌감치 고연비 디젤차량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국내에서 디젤 승용차의 대명사로 불렸던 폭스바겐 골프. ⓒ폭스바겐코리아 국내에서 디젤 승용차의 대명사로 불렸던 폭스바겐 골프. ⓒ폭스바겐코리아

세계 2위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이 한때 우리나라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데도 디젤차에서의 경쟁력이 밑바탕이 됐습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폭스바겐은 국내에서 ‘디젤차 전도사’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폭스바겐그룹 산하 대중차 브랜드 폭스바겐과 고급차 브랜드 아우디는 지금은 비록 국내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BMW에 크게 밀리지만, 2015년까지만 해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입차 4대 브랜드였습니다. 그룹별로 치면 아우디-폭스바겐을 더한 폭스바겐그룹이 압도적 1위였죠.

골프, 폴로, 제타, 파사트 등 폭스바겐의 주력 해치백‧세단 모델들은 고급차 브랜드들처럼 비싸지 않으면서도 폼이 났고 성능도 좋았던 데다, 무엇보다 효율적인 디젤엔진을 바탕으로 한 높은 연비로 각광받았죠.

물론 당시는 벤츠와 BMW도 디젤차들이 주력이었지만, 디젤차의 대명사는 단연 폭스바겐-아우디였습니다.


유럽 브랜드들이 디젤차로 수입차 시장을 장악하면서 수입차 시장 내 디젤차 점유율은 60%를 넘어 70%에 육박했습니다.

'디젤차 전도사' 폭스바겐 전성시대…현대차‧기아도 디젤 세단 대거 출시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힘 좋고 연비 좋고 친환경적이기까지 한 디젤 승용차를 왜 안 만드느냐’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이 시기에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급등한 것도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가장 급박해진 것은 아무래도 수입 디젤차들에 ‘텃밭’을 잠식당하게 된 현대자동차와 기아였겠죠.

물론, 현대차‧기아도 이전부터 디젤엔진 차종을 운영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디젤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 특유의 털털거리는 소음과 진동이 승용차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던지라, 주로 차체가 무거운 상용차나 SUV 위주로 디젤엔진을 장착했죠.

i30, i40 같은 실용적 측면이 부각되는 해치백‧왜건에도 디젤이 들어갔지만 세단에 디젤엔진은 일종의 금기였습니다. 2006년 중형 세단 쏘나타 5세대 모델에 디젤엔진을 추가했다가 재미를 못 본 전례가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현대차‧기아의 친환경차 전략은 하이브리드차가 중심이었습니다. ‘하이브리드차의 선구자’로 불렸던 토요타는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차‧기아와 운명공동체였습니다. 같이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키운 다음 나눠먹자는 전략이었는데, 독일 디젤차들이 판을 뒤엎어버린 것이죠.

시장 분위기가 달라졌으니 소비자 취향에 맞출 수밖에요. 디젤엔진을 달고도 정숙성을 잃지 않은 독일차(물론 아무리 잘 만들어도 1년 넘게 지나면 디젤엔진은 여지없이 털털거리는 소리를 냅니다만)를 벤치마킹해 제법 얌전하면서도 효율적인 디젤엔진을 얹은 모델들을 잇달아 내놓기 시작합니다.

2013년 출시된 아반떼 5세대 페이스리프트 디젤 모델에 부착된 '블루 드라이브(Blue drive)' 레터링. 이 시절 현대차는 디젤차마다 이 레터링을 부착했다. ⓒ데일리안 2013년 출시된 아반떼 5세대 페이스리프트 디젤 모델에 부착된 ‘블루 드라이브(Blue drive)’ 레터링. 이 시절 현대차는 디젤차마다 이 레터링을 부착했다. ⓒ데일리안

아반떼, 엑센트 등 세단 모델들에 디젤엔진이 얹히기 시작했고, 쏘나타도 2014년 7세대 모델을 출시하며 디젤 라인업을 부활시켰습니다. 기아 역시 프라이드, K3, K5 등 현대차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동급 세단들에 디젤엔진을 장착했죠. 심지어 현대차는 자사 디젤 승용 모델에 친환경차를 의미하는 ‘블루 드라이브(Blue drive)’ 레터링을 달기도 했습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지켜보고만 있진 않았습니다. 한국GM 크루즈, 말리부, 르노삼성자동차(현 르노코리아) SM3, SM5 등 세단 모델들이 잇달아 디젤엔진을 달고 나왔습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도 ‘클린디젤’을 열심히 장려했습니다. 심지어 택시 시장에 디젤차를 보급하고 경유에 대한 연료비 보조금까지 주겠다며 ‘클린디젤택시 시범사업’을 벌이기까지 했습니다.

택시용 연료가 주 수익원이던 LPG업계는 난리가 났죠. 대한LPG협회가 2012년 2월 1일 내놓은 입장자료를 보면 디젤차에 대한 욕이 잔뜩 쓰여 있습니다.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등 오염물질 배출량은 디젤차가 월등히 많다는, 요즘 디젤차가 외면 받는 원인이 된 단점들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미세먼지 원흉' 오명 쓰고 인기 급락…EU 환경규제까지

결과적으로 클린디젤택시 보급 사업은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디젤차가 슬슬 골칫덩이로 인식됐기 시작했거든요. 국내에서는 미세먼지 사태가 부각됐고, 해외에서는 유럽의 강화된 배출가스규제 ‘유로(EURO) 6’가 문제가 됐습니다.

여기에 2015년 9월 폭스바겐의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사태, 이른바 디젤 게이트까지 터지면서 디젤차에 대한 이미지는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그해 말부터는 국내에서 폭스바겐 판매량도 급감했죠.

우리나라에 ‘클린디젤’을 전수한 게 유럽인데, 유럽의 환경규제와 유럽 자동차 업체의 일탈이 국내 자동차 업계의 디젤차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어찌 됐건 2010년대 중반까지는 디젤차도 그럭저럭 명맥을 이어가는 듯 했습니다. 디젤게이트 다음 해인 2016년 국내 디젤차 신규 등록대수는 87만2640대로 가솔린차(74만7718대)압도하는 1위였죠. 당시 하이브리드차는 6만2305대로 디젤차의 10분의 1도 안됐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해부터 디젤차 판매량이 급격히 줄기 시작하더니 2019년에는 가솔린차(85만2073대)보다 디젤차(65만6523대)가 더 적어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2018년 이후 매년 10만대 가량씩 디젤차 판매가 줄었죠.

‘디젤차 전도사’였던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한동안 국내에서 장사를 접었고, 다른 수입차 브랜드들도 디젤차 비중을 줄이는 가운데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승용 디젤 라인업을 하나 둘씩 퇴출시킨 결과였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디젤엔진이 정석으로 여겨지던 SUV 모델들도 디젤 라인업을 없애고 가솔린 터보 기반의 하이브리드 모델로 대체하는 추세입니다.

코나 하이브리드 ⓒ현대자동차 코나 하이브리드 ⓒ현대자동차

지난해 말까지 디젤차 판매는 30만대에도 못 미쳤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반면 디젤차의 대체재(代替財)인 하이브리드차는 40만대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올라갔죠. 불과 7년 전만 해도 10분의 1에도 못 미치던 하이브리드차에 추월당했으니 디젤차의 신세도 참 처량해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전동화 전환 흐름에 따라 탄소연료를 태워 동력을 얻는 모든 내연기관 차량이 퇴출될 운명이긴 합니다. 하지만 최근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면서 하이브리드차는 어느 정도 수명을 더 연장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반면, 디젤은 승용차는 물론 소형 상용차에서도 설 자리를 잃는 등 운명은 크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디젤차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짖밟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대차‧기아의 1t 트럭 포터‧봉고 디젤 모델이 단종되고 LPG 모델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11년 전 디젤차에 택시 시장을 빼앗길 걱정에 ‘분노의 입장자료’를 배포했던 대한LPG협회가 이번에는 즉각 환영 입장을 냈음은 물론입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