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검비봉 논설위원]

남아선호가 심하던 구시대에는 동네마다 드물지만 ‘칠공주집’이라고 불리우는 가정이 있었다. 아들을 보겠다고 계속 낳다보니 딸만 내리 일곱인 것이다. 이런 집은 신기하게도 여덟째는 아들을 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가문의 대를 잇는다’ ‘제사를 모실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아들 낳기를 갈구하였다. 아들을 생산해서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수고했다 한마디 들으려고, 용하다는 사찰이나, 이름난 기도처에 가서 정성을 드리는 처자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스님들도 돕느라고 애를 많이 썼다.) 아들을 못 보고, 딸만 두 셋을 내리둔 가장의 심정은 ‘노 스트라이크 쓰리 볼’ 상태의 투수의 심정과 같다고 하겠다. 제발 원 스트라이크 하나만 나와라.

친구 중에 훤칠하게 호남형으로 잘 생기고, 성격도 좋아서 항상 벙글벙글 웃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김남주 남편 같이 생겼다고 상상하면 된다). 놀기를 좋아하는 한량스타일이라 늘 재미거리를 찾아 건들거리고 다녔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웬 할머니가 잠깐 보자고 소매를 끌더란다. 인상도 좋은 할머니가 나긋하고 간곡한 태도로 이 친구에게 청하기를 ‘자기 집에 가서 놀다가라’는 것이다.

친구가 ‘술집이나 색시집이냐, 난 그런 데 갈 돈이 없다’라고 했더니, 돈은 필요 없고 잘 대접할테니 속는 셈치고 따라와 보라고 하더란다. 속는 셈치고 따라 갔더니, 아담한 한옥으로 들어 가는데, 안방으로 안내받아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거하게 차려진 술상이 들어오는거라, 친구는 대담하고 호기심도 많은 성격이라서, 뺏길 것도 없는 홀가분한 신세이니 돌아가는 꼴을 보자하는 심사로 술잔을 받고 할머니에게 물었단다.

모르는 나를 이렇게 후하게 대접하는 이유가 무엇이요? 할머니 왈, 나쁜 일은 아니니 아무 말 말고 술이나 드시오. 곧 이야기 해드리겠소 하더란다. 입에 착착 붙는 술과 안주로 얼굴이 불콰해질 무렵, 할머니가 은근한 태도로 이야기를 털어놓기를, 실은 나의 딸이 대가집 소실로 이 집에 살고 있는데… 바깥 영감이 아들이 없어서…아들을 보려고 소실을…1년이 넘어가는데, 아직 태기(胎氣)가 없어서…아들 하나 낳아야 하는데…그래서 …인물좋고 튼실하게 생긴 당신을 이렇게 모셔오게 되었다, 좋은 일 좀 해주면 섭섭지 않게 사례하겠다고 자초지종과 청원을 간곡하게 이야기 하더란다.

예기치 못한 특수상황에 뭐라 말도 못하고 우물우물하는 중에, 할머니가 건넌방에 대고 ‘애야 건너 오너라’ 하더란다, 곧이어 훤하게 생긴 처자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 들어서는데. 주기로 얼큰해서 올려다 보니 방금 하계한 선녀같이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아름답더라. 이쯤되면 뭘 알아보고 말고 할 게 없는 운수 대통의 상황 전개가 아닌가.

할머니가 그럼 둘이서 이야기 좀 나누구려 하면서 나가고, 둘이서 남아 술 두어 잔을 나누고 나니, 두 청춘의 가슴에서는 뜨거운 정염이 절로 끓어 오르더란다.

그렇게 그 집에서 꿈같은 이틀을 보내고, 콜이 있으면 또 두어 번 더 가고 한 결과 얼마 안가서 두꺼비 같은 옥동자를 보게 되었다. 아들을 본 뒤에도 들러서 용돈도 얻어쓰고 했는데 얼마 후 ‘아들 좀 보고 오겠다’고 가더니, 낙심한 얼굴로 돌아왔다.

“아무 말도 안 남기고 이사 가버렸어.”

이 시대의 책사(策士)들은 아들 못 본 난임 정파(政派), 불임정당에 아들 점지해주는 삼신할매 노릇을 해왔던 걸까?

김모, 윤모, 김모 등등의 자타칭 책사들이, 과연 아들 낳아서 대가집 영감으로부터 떠받들림 받으면서 호강하고픈 모녀에게 아들을 점지해주는 삼신할매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인가? 아니면 아들은커녕 씨알머리도 안 들어서 또 한 번 소박맞고 쫓겨날 팔자를 지어준 것인가?

아들 낳아서 대가집 안방과 재산을 다 차지하고 말겠다는 소실은 뜻을 잘 이룰 것인가? 웬넘 끌어들여서 낳은 아들은 튼실한가?

옛날 그 인물좋은 친구는 지금 독거노인으로 딱하게 지내고 있는데, 생부(生父)를 알지 못하는 그 아들은 떵떵거리고 잘 사는가? 생부는 지금 생활고에 고통스럽단다. 애엄마는 시간되면 연락 한 번 주시구려, 한때 여러 날 동안 불같이 뜨겁던 사이 아니던가.

하강한 선녀처럼 아름다운 젊은 처자의 얼굴이 갑자기 떠오르는 아침이다. 근데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다 아는 척하면서 정국을 주무르고 반죽하는 책사 노릇하는 사람들, 돈을 얼마나 준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