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윤일원 논설위원]

전등사 양귀비. 사진 윤일원.
전등사 양귀비. 사진 윤일원.

어제 지인으로부터 청년 취직 면접위원으로 참여한 소회를 적은 카톡을 받았다. 

“삶의 다음 단계로 뛰기 위한 청년들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애기 같은 얼굴들, 가끔은 마치 삶의 애환을 다 짊어진 듯한 얼굴들,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인재들인데요, 불경기가 아쉬울 뿐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변화가 과거와 달리 뚜렷한 시기를 뉴 노멀(New Normal, 큰 변화나 위기 이후에 새롭게 자리 잡은 일상적인 상태)이라 부르며 Before와 After로 구분하기를 좋아한다.

대표적 용어가 뉴 노멀(New Normal)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발생한 ‘저성장, 저금리, 고규제’ 시대를 말하며, 이는 과거 2차 세계대전 이후 60여 년간 세계 경제가 3% 이상 성장을 한 그 시대를 올드 노멀(Old Normal)이라 부르면서 구분 지으려 했다.

또, 2019년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자, COVID 뉴 노멀이라 하여, 새로운 삶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바글거리는 도시는 가고 전원은 오며, 사무실은 가고 VPN(가상 사설 네트워크)의 재택근무는 오고, 전통시장은 가고 전자상거래는 오고, 집이나 자동차의 소유는 가고 임대하는 단순한 삶은 오고, 신 자유주의는 가고 국가 우선주의는 오고, 사기업은 가고 사회적기업은 온다고 예측했다.

인간은 Before와 After의 삶을 확연히 가르는 기준이 있다. 죽을 병에 걸렸다가 살아난 경우, 쫄딱 망했다가 살아난 경우, 벼랑 끝에서 섰다가 살아난 경우, 이때만 삶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렇지 않고 생각의 근육만으로 Before와 After를 확연히 그었다면 이는 대단한 고수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플랫폼이다. 과거 근대화 이전처럼 기술적 플랫폼 없이 단순한 삶을 영위했다면, 금세 과거로 회귀할 수 있지만, 금융위기나 COVID 팬데믹을 거치면서 국가나 민간기업이 만들어 놓은 플랫폼은 변경하기 힘이 든다.

첫 경험은 전자 상거래로 전통시장의 소멸이다. 주문한 물품이 집 앞까지 배달하는 마당에 구태여 전통시장에서 쇼핑할 이유가 없다. 가격도 싸며 주차 공간의 전쟁도 없다.

두 번째 경험은 COVID 때 VPN(Virtual Private Network, 가상 사설망)을 잘 갖춘 기업은 구태여 재택근무를 고집하지 않는다. 성과평가 규칙마저 확립되니 구태여 비싼 임대료를 물어가면서 사무실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은 리쇼어링(reshoring) 기업이다. 법인세의 유혹도 있지만, 사실은 AI의 발달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싼 임금을 커버할 수준이 되었다.

우리는 내가 내 삶을 100% 결정하면서 산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원시 수준의 삶을 영위하지 않는다면, 10% 미만의 결정으로 산다. 예나 지금이나 플랫폼을 설계하고 만드는 이를 비난할 수는 있어도 피해 갈 수는 없다.

뉴, 뉴 노멀 시대는 ‘저성장, 저출산, 고금리’이며, 이 지표의 결과는 장기 불황이다. 이 중 유일한 독립변수는 ‘저출산’이며,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버틸 내적 힘이 있든지, 아니면 왕창 100만 명 대군 이민자를 받아들일 문화적 충격이 있든지, 저출산을 능가할 AI 기술을 받아들일 사회적 용기밖에 없다. 

이것마저 못한다면 珞珞如石(낙낙여석) 돌처럼 반들반들 영롱하기를 거부하면서 “구석기 시대가 좋은 것이여” 하면 된다.

#뉴노멀시대, #올드노멀, #2저1고, #저출산, #출산절벽, #AI,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