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투데이=이재혁 기자] 100일 넘게 이어져 온 의료공백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가운데, 의료계는 여전히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고 있어 의정갈등 봉합은 요원할 전망이다.

지난 3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여론조사 전문기관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5월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에 대한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설문 응답자의 85.6%는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진행한 진료거부, 집단 사직, 휴진 등의 집단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환자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답변했다.

또한 ‘의대 증원 집행을 정지하면 의료개혁이란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선 응답자의 70.4%가 “잘 한 판결”이라고 답했으며,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의대 증원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사 단체 입장에 대해선 65.3%가 “반대”했다.

이와 관련해 보건의료노조는 “의사단체들은 의대 증원 백지화를 고수하면서 계속 진료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국민여론에 따라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환자 곁으로 복귀해 진료 정상화에 협력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한 달 전 정부 측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와도 궤를 같이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월 14일과 15일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조사에서 국민들의 78.7%는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에 대해서 ‘공감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아울러 의료계의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주장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가 57.8%, 의대 정원 2000명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국민은 72.4%로 나타났다.

동시에 국민들은 87.3%가 현재의 보건의료 분야 위기가 ‘심각하다’고 봤으며, 비상진료 상황과 관련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27.5%만이 ‘잘 하고 있다’고 답변해 낙제점을 줬다.

이처럼 장기화되는 의료대란에 의정갈등을 바라보는 국민적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모양새지만 그러나 의료계와 정부는 서로를 향한 대립각을 누그러뜨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료계 측에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나서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국민의 63.9%가 ‘점진적 의대증원’에 찬성한다며 문체부의 여론조사는 ‘사기’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여기에 더해 대한의사협회는 의대증원 절차 전면 중단을 목표로 4일부터 온라인 대회원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의협은 오는 9일 투표 결과를 토대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개최해 의료계 투쟁 동력을 결집한단 방침이다.

의료계가 전운을 고조시키자 정부도 맞대응에 나서고 있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3일 브리핑에서 문체부의 여론조사가 사기라고 주장한 전의교협을 향해 “본인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여론조사에 대해 폄훼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 실장은 의협이 대회원 투표를 실시하고, 개원가를 포함한 휴진 내용이 거론될 것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전 실장은 “집단행동을 다시 또 하는 경우는 바람직스럽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이라며 “불법적 집단행동이 되게 되면 정부는 의료법에 따른 여러 가지, 필요한 조치들을 하고 지자체와 협력해 대처를 해나가도록 하겠다”고 경고했다.

여전히 정부와 의료계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사태의 중심에 서있는 전공의들의 의중에 관심이 쏠린다. 박단 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의협이건 복지부건 왜 하나같이 무의미한 말만 내뱉는지 모르겠다”며 “다들 이제는 정말 뭐라도 하셔야 하지 않을지”라고 현 상황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전했다.

이를 바라보는 환자들은 답답할 뿐.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시간이 흐르고 장기화될수록 문제가 해결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과 희생이라는 수렁 속에 점점 깊이 빠져들어 가고 있다”며 “현재 자포자기의 무력감과 각자도생이라는 중증환자의 처지와 상황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이어 연합회는 “100일이라는 긴 시간 환자와 그 가족들은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암흑같은 시간속에 머물고 있는 동안 우리 사회 시스템은 작동이 완전히 멈춰 있었다”며 “사회적 협의도 조정도, 자정의 기능도 멈춰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 의료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 그리고 우리 환자들도 이 사태의 책임에서 피할 수 없다고 본다”며 “향후 이런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의료시스템은 재정비 돼야 한다”고 각성을 촉구했다.

연합회는 향후 의료인이 정책 등의 이유로 환자를 두고 의료현장을 떠날 경우 좀 더 강제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또 이번과 같은 의료공백이 발생할 경우 즉각 대응팀이 발동돼 환자들이 치료문제로 고통받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의료공백 사태 해결의 키를 쥔 전공의들을 향해선 강경 압박 대신 회유에 나섰다. 4일 의료현안 브리핑에 나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을 향해서 퇴로를 열어주는 출구전략을 제시했다.

조 장관은 “정부는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이 아닌 개별 의향에 따라 복귀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과 전공의에게 부과한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 명령을 오늘부로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전공의가 복귀하면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해 법적 부담 없이 수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정부는 복귀 전공의들에 한해 수련기간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제때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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