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노년이 된 나는 바닷가의 한적한 도시로 옮겨왔다. 해변과 철길 그리고 바다를 따라 걷는 해파랑길이 나란히 가고 있는 해안로 언덕의 헌 집을 사서 다섯달 동안 직접 개조했다. 자잘한 구멍들이 보이는 거친 시멘트 벽에 흰 페인트 칠로 단순화시킨 나의 방은 투박하지만 내 취향이다.

인생의 황혼에 있는 나는 여기서 나름대로 노년의 한가와 여유를 가지겠다고 마음먹었다.

인생은 어느 시기건 그에 알맞는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바로 지금 자신에게 맞는 재미를 찾는 것이 진정 나이답게 늙어가는 일은 아닐까. 내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 진짜 재미라는 생각이다. 그것을 충분히 느끼고 산다면 바로 그게 성공한 인생일지도 모른다.

나와 댓글을 통해 소통을 하는 한 분은 아직 젊고 더러는 휴일에도 돈을 벌러 나가야 하는 형편인 것 같아 보인다. 그래도 틈틈이 칼국수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시간을 쪼개서 도서관을 찾아가 책을 읽는다. 겉으로는 돈을 얘기할 때가 많지만 그의 글 행간에서 깊은 사색과 통찰을 엿본다. 그는 즐길 줄 아는 사람같다. 그가 갈급해 하는 돈은 속인에게 속박당하지 않는 자유를 얻고 싶다는 의미로 나는 해석한다.

바닷가 집에서 사니까 아파트와는 달리 불편한 점이 있다. 벽에 콘센트 하나를 설치하려고 해도 일할 사람을 구해야 한다. 집을 수리할 때 알게 된 젊은 러시아 인부에게 부탁해도 오지를 않는다. 그러다가 특이한 인물을 발견했다. 자그마한 트럭의 적재함에 ‘맥가이버’라고 쓰여있고 그 옆에

전등도 갈고 화장실 변기도 고치고 각종 조립도 해준다는 내용이 써 있다. 트럭에 공구를 싣고 그렇게 돌아다니는 프리랜서 노동자 같다. 트럭에 적힌 번호로 전화해서 그를 불렀다. 그와 함께 내방의 책장을 들어내고 콘센트를 연결했다. 그는 품값을 알아서 달라고 했다.

돈이 든 봉투를 그에게 건네자 “많이 주면 안 받아요”라고 했다. 욕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 점심때가 되어 그에게 집 근처의 국수집으로 가자고 권했다. 동치미국수와 수육 한 접시를 시켜놓고 먹으면서 그와 대화를 나눌 때였다. 그가 자신의 스마트 폰을 열어 동영상 하나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가 하는 색소폰 연주였다. 수준급의 실력이었다.

그가 간단히 자신의 삶을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주문진 수산고등학교를 나왔어요. 배의 기관이나 보조기계들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우는 학교였죠. 에어컨도 있고 보일러도 있고 자잘한 기계들 만능이 되야죠. 그때 밴드부에 들어서 색소폰도 배웠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큰 배들을 타고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녔어요. 고졸 출신인 내가 삼등기관사를 했으면 그 계통에서는 잘 한 거예요.

제가 나이 먹고는 색소폰으로 대학의 실용음악과에 들어갔어요. 내가 최고령인 줄 알았더니 칠십대 노인 두분이 더 있더라구요. 뒤늦게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했는데 이제 대학생이 됐다고 하더라구요. 늙었지만 다 대학졸업생이 됐어요. 제 나이 지금 육십셋인데 지금은 이렇게 배운 기술로 트럭을 타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기계를 만져주고 또 교회나 시골 까페에서 부르면 가서 색소폰 연주을 해 줘요.”

바닷가 도시에서 ‘희랍인 죠르바’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는 젊은시절 배를 타고 카리브해를 지나는 순간 배 안의 기관실 파이프로 십자가를 만들고 선원들의 예배를 인도했던 즐거웠던 일들을 내게 얘기해 주기도 했다. 그는 노년에 행복한 사람이었다. 돈이 없어도 있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며 사는 것 같았다.

그가 전공인 기계수리 외에 색소폰을 했듯이 나는 요즈음 즐거움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새로 무엇을 찾는 것 보다 소년 시절 내가 좋아하던 게 본질적인 내 취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가다가 이 한적한 도시의 구석의 건물 창에 ‘드럼학원’이라는 글씨가 적힌 걸 봤다. 정체불명의 퀴퀴한 냄새가 허공에 배어있는 먼지가 쌓인 건물 계단을 올라갔다.

육십대 중반의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의 남자가 드럼선생이었다. 나는 바로 등록을 하고 늙은 수강생이 됐다. 그렇게 나는 요즈음 드럼을 배우는 재미 하나를 보탰다.

사실은 중고등학교 시절 밴드반에서 드럼을 쳤었다. 대학 시절도 다른 대학에서 결성된 그룹사운드에서 부탁하는 바람에 간간이 가서 쳐주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돈은 없어도 인생의 여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앞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시골 맥가이버씨에게 말했다.

“나 오십년전 드럼 기술을 복원 중인데 그게 되면 같이 음악을 할래요?”

“좋죠.”

그가 신이 난 얼굴로 대답했다. 문학 외에 노년의 또 하나의 즐거움을 발굴 중인데 될지 모르겠다.

#엄상익변호사, #맥가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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