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응우옌 반 후이씨(가명·29)가 비자 갱신을 위해 필요한 서류 수십장을 바닥에 펼쳐놓은 모습. /사진제공=본인
5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응우옌 반 후이씨(가명·29)가 비자 갱신을 위해 필요한 서류 수십장을 바닥에 펼쳐놓은 모습. /사진제공=본인

“한국 사는 외국인들은 자고 일어나면 비자 걱정입니다. 전문직이든 비전문직이든 비자로 골치 아픈 건 마찬가지죠.”

5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응우옌 반 후이씨(가명·29)의 한국살이는 ‘비자와의 전쟁’으로 요약된다. 응우옌씨는 베트남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2017년 9월 서울 소재 대학원 3곳에 동시 합격했지만 대학마다 제각각인 재정 증명 문제로 비자가 제때 나오지 않아 입학을 포기해야 했다.

6개월을 기다려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려니 다시 서류의 벽에 부딪혔다. 담당 교수와 학교 행정실의 허가가 필요했고 범죄경력 조회서를 제출해야 했다. 자국인 베트남에서 발급받고 영어나 한국어로 번역한 뒤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관의 인증을 받아야 했다. 그나마도 일주일에 최대 20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어 생활비를 충당하기 부족했다.

취업 후에도 비자 문제는 이어졌다. 유망산업 종사자, 전문직 종사자 등이 신청할 수 있는 점수제 거주 비자(F-2)로 변경하려고 하니 채워야 하는 소득 기준이 너무 높았다. 평가 항목 중 나이, 학력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한국어능력시험(TOPIK)은 가장 높은 점수를 채웠다. 결국 연간 소득에서 고점을 받아야 하는데 외국인 신분으로 연봉 3000만원 이상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응우옌씨는 “한국 사람들도 연봉 3000만원 이상 받기 어렵지 않냐”며 “현행 비자 제도는 조건이 까다로울뿐더러 갱신 기간도 짧아서 한국에 사는 5년 동안 늘 비자 문제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쯔엉 투이 쩐씨(가명·31)는 한국에 있는 베트남 IT 기업 인사팀에서 9년째 일하며 이 같은 사례를 숱하게 접했다고 한다. 쯔엉씨는 “전문직 종사자에게 발급되는 특정활동 비자(E-7)를 받으려면 전년도 수입이 한국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80% 이상을 충족해야 하고 이는 약 3400만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직 비자(D-10)를 6개월마다 갱신하며 살아야 한다”고 밝혔다.

거주(F-2) 비자 심사기준. /그래픽=조수아 디자인기자
거주(F-2) 비자 심사기준. /그래픽=조수아 디자인기자

글로벌 IT 기업 다니는데 “한국 남자한테 시집 왔어?”

쯔엉씨는 한국에서 유학 후 베트남 사람과 결혼해 경기도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택시를 탈 때마다 “한국 남자 좋지?”, “한국으로 시집왔구나?”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그는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일하는 비전문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시선은 더 따갑다. 2019년부터 대구 한 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인 세라씨는(가명·24) “한국 사람들은 저개발 국가 노동자를 선진국 출신 외국인들과 달리 대우한다”며 “미국인 친구들은 한국이 너무 살기 좋다고들 하지만 나는 생김새로 차별받기도 하고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한 경우도 많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살이 5년 차인 필리핀인 로니얼씨(31)는 “제주도에서 일할 때 사장님이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돌아다녔는데 하루는 나에게 ‘너 집에 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집어던졌다”며 “나는 일을 하러 왔으니 일이 힘든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 상처가 컸다”고 말했다.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의 최저임금을 줄 필요 없다는 주장이나 저렴한 임금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 논의 등이 이 같은 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쯔엉씨는 “베트남 사람이라고 해서 일을 덜 하거나 못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 돈을 벌면 한국 물가로 생활해야 하는데 최저임금이 과다하는 주장은 잘못됐다”며 “외국인 가사도우미, 베이비시터 또한 100만원에 입국한다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국적을 차별하는 제도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4월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2023 세계노동절, 강제노동철폐! 이주노동자 메이데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손목에 쇠사슬을 감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4월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2023 세계노동절, 강제노동철폐! 이주노동자 메이데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손목에 쇠사슬을 감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그래도 한국 좋아 살고 싶어”…제도·인식 개선 목소리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국 대비 높은 수준의 임금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지만 주변 여러 나라 중에서도 한국을 택한 이유는 한국 드라마와 음악, 문화 등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녹록지 않은 한국살이지만 이들은 한국에 계속 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세라씨는 “필리핀보다 한국 임금이 4~5배 정도 높기도 하지만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 같은 드라마를 보고 한국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에 와 상처받는 일이 많았어도 주변에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늘 있었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인 응우옌씨는 “한국에 남겠다는 사람들은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비자 발급에 까다로운 입장도 이해가 되고 나는 한국살이를 포기하지 않겠지만 비자 갱신 기간 등 조건이 조금이라도 완화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쯔엉씨도 “한국 사는 외국인도 세금 낼 거 다 내는데 주택청약 등 혜택에서 외국인은 늘 배제된다”며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고 한국과 같은 저출산 국가는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것이 미래 아닌 현재이기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늦을 것 같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한국에 살며 귀화한 아제르바이잔 출신 니하트씨 의견도 비슷했다. 외국인을 돕는 강남글로벌빌리지센터 센터장으로 일하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한국은 단일민족이라는 마인드 때문에 글로벌 사회로 나아가는 시작을 늦게 한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국경이 모호해지는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열린 마인드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니하트씨는 또 “한국은 좁고 수출 지향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들어와서 해줄 수 있는 역할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며 “외국인을 더 많이 받아들여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가정을 꾸린 외국인이 적응할 수 있는 국제학교 등의 시스템과 환경을 갖추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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