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이 자리에 배치해주세요.”, “우리 애 약 좀 먹여주실래요?”, “이러려고 학교 보낸 줄 알아?”, “우리 아이에게 큰 소리로 말하지 말고 잘 설득해주세요.”….

지난달 3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공개한 교원들의 사례 모음집에는 교사들이 일상에서 듣는 수많은 ‘갑질의 언어’들이 적혀 있었다. 지난달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자식들에 대한 비뚤어진 애정을 표출하는 부모들의 사례가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이후에도 교사들이 일상에서 겪는 고충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서이초 교사 사망 49일째가 되는 오는 4일 교사들이 광장에 모이게 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분출된 결과다.

특히 최근에는 학교 밖을 넘어 군대와 회사까지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과잉 보호를 지속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입대한 자녀의 부대에 연락해 “훈련에서 제외해달라”, “아이가 몸이 약하니 밥을 잘 챙겨 먹여달라”는 등의 요구를 하는 식이다.

일부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과 애정의 문제는 비단 오늘날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욕구가 특정 대상에 대한 요구와 명령, 폭력에까지 이르게 된 이유로 ‘관계의 서비스화’를 꼽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엔 교사들을 자녀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사람으로 대우했던 반면, 최근에는 공교육을 비용을 내고 받아야 하는 서비스로 여기는 탓에 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사제 관계는 ‘거래’로, 공교육은 ‘서비스’로

과거 한국 사회에서 교사는 ‘사범(師範)’에 가까웠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닌, 스승이 될 만한 모범이나 본보기를 의미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한동안 교사는 지식과 함께 생활 습관, 도덕적인 인식을 가르쳐야 하는 본보기의 대상이었다. 교사는 지식을 제공하는 도구가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가 교류해야 할 하나의 관계였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금단의 구역이었던 교사의 영역이 깨지기 시작했다. 학교는 더 이상 지식과 인성을 배우는 다채로운 공간이 아니라, 학원의 기능과 사실상 다름이 없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사를 존중하고 아이를 위임하던 부모는 교사에게 ‘서비스’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이 변화한 근본적인 원인에는 거래화된 인간관계가 있다. 자신의 돈(세금, 교육비 등)과 교사들의 교육 활동을 맞교환하면 얼마든지 그 비용에 합당하다고 시장에서 여겨지는 수준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모든 인간관계를 일종의 거래로 보기 시작하는 경향과 맞물려 있다”라며 “학교의 경우 아이를 보내는 것을 ‘내가 준 돈으로 내 아이들이 획득해야 하는 지식을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학부모들이) 훨씬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 근간에는 왜곡된 자본주의적 속성이 깔려 있다. 부모가 교육에 투자한 비용이 크다고 여길수록 요구하는 권리의식은 더 강해진다. 실제 가구당 자녀 교육비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5월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1분기 월평균 교육비 지출은 3만4282원으로, 1년 전보다 8898원(35.1%)가 증가했다. 적자 살림에도 교육비 지출을 줄일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사교육에 과도한 투자를 하게 된 부모들은 공교육의 영역에서도 권리를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자신이 낸 세금으로 공교육에도 권리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팬데믹 맞물려 삭막해진 교육 환경

교사에 대한 과잉 권리 요구는 최근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심화됐다. 2021~2023년 3년간 우리 사회를 마비시켰던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은 공교육이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게 만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부모는 “팬데믹을 겪고 나니 아이가 굳이 학교에 가서 수업받지 않더라도, 선생님과 대면하지 않더라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학생들의 인권을 중시하게 된 교육계의 변화는 사회가 교사들의 인권에 무관심하도록 만들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권력의 힘이 (학부모, 학생보다) 교사에게 더 있다 보니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교사도 부모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만만한 존재가 된 것”이라며 “그러다보니 교사를 상대로 학부모가 여러 갑질을 하게 되고 교권이 추락하는 계기가 됐다”이라고 말했다. 교사가 대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교육활동이라는 서비스가 권리에 합당하게 제공되지 않을 경우 교사에게도 쉽게 항의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SNS의 발달은 학부모와 교사 간 소통의 거리를 좁혀준 만큼 권리 요구를 더욱 쉽게 만들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학부모가 교사와 단체 메시지방을 개설하고 밤낮으로 문자,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직접적인 소통이 증가했다. 가정과 학교 사이를 잇는 SNS 소통 방식은 부모와 교사 간 관계 증진에 기여한 측면이 있지만, 일부의 경우 무분별한 문자나 전화 등 공격으로 이어지면서 교사들의 피로도가 높아진 것이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디지털 민주주의가 오히려 프라이버시나 기존의 사회 질서들을 급속하게 파괴시키면서 학생 등 소외계층에 있었던 사람들이 권리를 행사하는 상황이 과도하게 생기는 경우도 생겨난 것”이라며 “발전 과정에서 생긴 일종의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권리 중독, 벗어날 수 있을까

‘권리 중독’에 빠진 부모들은 학교를 넘어 사회에서도 아이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내세운다. 학부모가 입대한 자녀의 부대 상사에게 개인 톡으로 연락해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묻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기업에 부모가 직접 연락해 자녀가 입사 면접에서 탈락한 이유를 묻거나 자녀의 사직서를 대리 제출하는 일까지 우리 주변에선 종종 벌어지고 있다.

인간관계를 거래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한 자녀가 교실을 벗어나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부모가 비뚤어진 애정을 표출하는 사례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 집단에서의 제도 보완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인식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 전체가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 교수는 “인간관계를 거래 지향적으로 보는 것이 아주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그것(거래 지향)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다른 가치를 전부 압도하게 되면 인간은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치관이 어떤 부작용이 있고,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면 가치관이 바뀔 수 있다”며 “단 어떤 공동체가 안전하고 행복한 공동체인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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