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지난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여긴 한국식당이 없어 밥 먹을 곳을 찾기가 어려워.”

60대 남성 이모씨는 지난 25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대림역 12번 출구를 나섰다. 친구들과 점심때 이곳을 찾았지만 내국인 이씨에게 대림은 낯설다. 중국어로 된 간판을 읽기도 어렵고, 한국어로 안내된 메뉴도 생소하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은 외국인은 늘고 내국인은 줄고 있는 동네다. 한국에 들어온 중국 동포들 이 곳에 터잡고 살아간다. 대림동 대동초등학교는 2018년에 이미 신입생 10명 중 8명이 다문화 가정 출신으로 채워졌다.

대림동에서 만난 중국 동포들은 한국에서 겪는 일상에서의 차별이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대놓고 ‘중국놈, 짱깨’ 등의 말을 들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일까지는 없다고 한다.

2004년 한국에 들어와 서강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은 김용선 한중무역협회 대표(46)는 “10년 동안 지켜본 결과 사회적 차별의 강도는 낮아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자치구별 중국 동포 거소 신고 현황. 2010년 서울시에 거소 신고한 중국 동포는 1만3171명이었다. 2022년에는 10만 5931명으로 크게 늘었다.
서울시 자치구별 중국 동포 거소 신고 현황. 2010년 서울시에 거소 신고한 중국 동포는 1만3171명이었다. 2022년에는 10만 5931명으로 크게 늘었다.

남명자 한국범죄퇴치운동본부 서울 영등포지회장은 “예전에는 중국 동포들이 임금체불이나 직장 내 성추행 등의 상담을 요구하는 건수가 많았다”면서 “직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중국놈들이 그랬지’ ‘중국놈들이 그럴 줄 알았어”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을 상대로 한 중국 동포들의 상담 건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며 “몇 건이라고 말로 할 수는 없는데 차별이 줄고 있는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남씨 역시 중국 동포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20년 이상 생활하면서 직장과 학교 등에서 발생하는 동포들의 어려움을 상담해 주고 있다.

지난해 기준 재한 중국 동포 10만6000여명이 서울에 거소 신고를 했다. 이중 70%에 달하는 7만3877명이 구로·영등포·금천·관악구 등 서남부에 몰려산다. 2019년 기준 영등포구 대림2동에 등록된 외국인주민은 1만2926명이다. 대림 2동 인구의 대략 절반이 중국 동포다.

고등학생 아들을 두고 있는 중국 동포 이모씨는 “중국에서 태어나서 어중간한 나이에 한국에 오면 대동초나 주변에 중국인 비중이 높은 학교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한국 상황이 농촌과 건설현장, 요식업장에 조선족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데 자녀들이 적응할 수 있는 학교를 찾다 보니 몇개 학교에 동포들이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대림동에 거주하는 한국 주민들 사이에서는 중국 동포들과의 공존에 적응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림동에서 부동산공인중개 사무소를 운영 중인 장모씨는 “예전부터 살던 주민들은 치안에 대한 별다른 불안감이 없다”고 말했다. 대림동의 한 오피스텔에 2개월째 거주 중인 직장인 김모씨(28)는 “간판이 중국어로 된 게 많을 뿐이고 딱히 위험하거나 역차별이라고 느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때 피의자가 조선족도 아닌데 조선족이라는 소문이 먼저 돌더라. 강력 사건 범죄자는 조선족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조선족의 범죄율이 높다는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 전체 범죄율은 오히려 내국인에 비해 낮다. 지난 11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간한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을 보면 2020년 중국인의 검거인원지수(인구 10만명당 검거인원)는 1653명이다. 내국인의 검거인원지수가 2815명인 것에 비하면 약 58% 수준이다.

대림2동에서 행정사로 일하는 박모씨는 “동포들의 최대 관심사는 법적 지위와 체류 보장”이라면서 “동포들은 혼자 오는 게 아니고 한국에서 부모를 모시고 자식도 교육시키고 있기 때문에 영주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형사사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굉장히 조심한다”고 말했다.

김용선 한중무역협회 대표는 “차별이 점차 줄어드는 동안 대림에는 다른 차이나타운과 달리 카페가 많이 생겼다”며 “탕후루나 마라탕을 먹으러 한국 젊은이들이 찾아오면서 현지화되고 있다는 증거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도시에서나 이주민과의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 조선족이 아니라 어떤 이주민이 모여 살았어도 겪었을 갈등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재한 중국동포들은 차별은 줄었지만 여전히 ‘한국인’과 자신들 사이엔 엄격한 구분이 있다고 말한다. 귀화 또는 국적회복 등 절차에 따라 법적으로 한국인이 돼도 구분짓기는 여전하다.

중국 동포를 대상으로 한 언론사인 신화일보를 운영하는 조명권 대표(50)는 “모국이라고 해서 연변에서 한국에 들어온 지 20년이 됐다”며 “국적도 한국인이지만 아직도 말투를 듣고 중국동포냐, 조선족이냐 심지어 중국인이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의 할아버지는 전라남도 화순에 살다 일제강점기에 압록강을 건넜다.

김관용 재한중국동포 애심간병인총연합회 회장은 “중국동포사회가 한국 사회로부터 아무런 차별없이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순 없다고 본다”면서도 “여전히 재미동포와 재일동포와는 다른 동포로 대우한다. 사회적으로 반중정서가 높아질 때면 한족이 아닌 조선족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국에서 태어난 동포 3~4세대들은 한국말도 아주 잘하고 중국과 별 인연이 없다”면서 “그럼에도 차별을 받을까 봐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숨기기도 하는데 오히려 중국에선 해외거주 중국인은 모두 화인, 화교로 부르며 품으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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