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9시40분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보건소에서 마약류 익명검사를 진행했다. /사진=김지은 기자
18일 오전 9시40분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보건소에서 마약류 익명검사를 진행했다. /사진=김지은 기자

“저 마약 검사하러 왔는데요.”

18일 오전 9시40분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보건소 임상병리실. 마약류 익명 검사를 하러 왔다고 말하자 담당자는 조심스럽게 기자를 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고는 QR 코드를 하나 보여주며 사전 설문조사를 작성한 뒤 따로 담당자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이름도, 생년월일도, 주소도 묻지 않았다. 혹여나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에게 들릴까봐 조심스럽게 입을 가리며 말했다.

최근 서울시는 익명으로 보건소에서 마약 검사를 할 수 있는 ‘마약류 익명 검사’를 도입했다. 최근 강남 학원가에서 마약류 음료가 유통되는 등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약류에 노출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마련된 제도다. 서울시는 양성 판정이 나온 시민에게는 2차 의료 기관도 연계해주고 검사비도 무료로 지원한다.

서울시 마약류 익명검사 내용/ 사진=서울시
서울시 마약류 익명검사 내용/ 사진=서울시

마약류 익명 검사 대상자는 타인이 건넨 물질을 섭취해 마약류에 노출된 피해자들이다. 의도적으로 마약류를 투약하지 않았지만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도 해당된다. 필로폰, 대마, 모르킨, 코카인, 암페타민, 엑스터시 주요 마약류 6종에 대해 검사하며 비용은 전부 무료다.

치료 목적으로 마련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법적 조치를 희망하는 마약류 범죄 피해자는 검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 외에도 직무 수행 관련 진단서를 발급 받길 원하는 사람, 질병 치료 등의 이유로 마약류에 노출된 사람, 마약 중독 재활 치료자는 대상자에서 빠진다.

마약류 익명 검사는 익명성을 보장한다. 담당자가 안내한 QR코드에는 이름과 생년월일 대신 고유 번호가 적혀 있었다. 담당자는 해당 번호를 통해서만 신청자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QR코드 질문에는 ‘마약류 의심물질에 노출된 적이 있는지’ ‘직무 및 자격취득과 관련해 마약검사를 받으려고 하는지’ ‘마약류 사용으로 법적처분 및 처벌, 중독치료, 재활을 받은 적이 있는지’ ‘최근 2주 내 치료 목적으로 의료용 마약류를 복용 또는 투약한 적이 있는지’ 등이 적혀 있었다.

하단에는 ‘간이키트 검사의 한계’ ‘가짜양성 가능성’ 등 주의사항도 적혀있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지정된 6종 마약류에 대해서만 검사를 하기 때문에 정밀 검사 시 새로운 마약 성분이 검출될 수 있다. 또 화학 구조가 유사한 다른 약물과도 반응해 가짜 양성이 나타날 수 있다.

QR코드를 제출하자 담당자는 최근 감기약, 다이어트약, 진통제, 수면진정제 등을 복용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는 종이컵에 소변을 담으면 20분 만에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직접 와서 확인해도 되고 담당부서에 따로 연락을 주면 접수번호와 가명으로 확인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전화번호나 이메일 등으로 결과를 통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마약류 음성 판정을 받기까지 약 40분이 걸렸다.

18일 오전 9시40분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보건소에서 마약류 익명검사를 진행했다. 수검자 보관증에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개인연락처나 이메일로 결과를 통보할 수 없다고 적혀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18일 오전 9시40분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보건소에서 마약류 익명검사를 진행했다. 수검자 보관증에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개인연락처나 이메일로 결과를 통보할 수 없다고 적혀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서울시 관계자는 “간이 키트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서울 시립 은평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도록 안내한다”며 “검사비는 무료고 추가로 서울시에 진행하는 마약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진료비와 치료비도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2차로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을 때는 의사와 진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실명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며 “그 부분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중간에 개인 정보가 유출돼 법적 조치를 받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치료보호기관인 서울 시립 은평 병원에 검사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자료가 유출돼 경찰 조사를 받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모두 개인정보로 보호된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기준 마약류 검사 양성 판정을 받아 2차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사례는 없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프로그램이 시작되서 검사 건수가 아직 많지 않다”며 “어떤 사람이든 마약 의심 증상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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