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지난 8일 페회식을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한국은 금메달 42개, 은메달 59개, 동메달 89개로 종합 순위 3위에 자리했다. 1위는 중국(금 201개, 은 111개, 동 71개), 2위는 일본(금 52개, 은 67개, 동 69개)이었다.

대만과의 뜨거운 승부를 펼치며 4연패를 달성한 야구, 운명의 라이벌 일본을 꺾고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최초 3연패 쾌거를 이룬 남자축구처럼 팬들의 응원을 받은 종목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종목도 있다.

 사진=AV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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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종목 중 하나를 뽑으라 한다면 배구를 말할 것이다. 한국 배구 역사에 있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최악의 성적을 남긴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먼저 남자배구를 보자. 남자배구는 공식 개회식이 열리기도 전에 메달 획득 실패가 확정됐다. 남자배구는 예선에서 인도에 패하며 흔들리더니 우여곡절 끝에 올라간 12강에서 파키스탄에 0-3으로 완패하며 상위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 남자배구가 메달 획득에 실패한 건 1962 자카르타 대회 이후 61년 만이다. 이후 14회 연속 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아시아 무대에서 아시아의 호랑이로 이름을 날린 한국이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아시아 3류’로 전락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시안게임 전에 열린 2023 아시아배구연맹(AVC) 챌린저컵 3위, 아시아선수권 4강 탈락 등 이미 국제 대회뿐만 아니라 아시아 내에서도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모든 걸 싹 갈아엎어야 한다는 걸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은 이후 순위 결정전을 통해 바레인, 태국, 인도네시아를 꺾고 7위에 올랐는데, 이는 한국 남자배구가 아시안게임에서 거둔 역대 최저 성적이다.

 사진=AV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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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헌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좌우 밸런스가 안 맞다 보니 경기를 펼치기 어려웠다. 우리 미들블로커진이 취약하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핑계다. 드릴 말씀이 없다. 국제 대회에서 우리 실력이 이 정도다. 기본적인 디펜스 등 앞으로 많이 준비해야 할 것 같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남자배구의 대참사 이후 여자배구 일정이 시작됐다. 최근 국제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이번 아시안게임 성적이 더욱 중요했다.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도 “늘 많은 팬분들이 DM이나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셔서 감사하다.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받고 있는데,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건 패배였다. 첫 경기 베트남전에서 1, 2세트를 먼저 따고도 3, 4, 5세트를 내리 내주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어쩌면 이 패배는 한국의 준결승 진출은 어렵다는 걸 알려준 경기였다. 8강리그에 1승은 안고 가느냐, 1패를 안고 가느냐는 천지차이다. 모두가 첫 경기 베트남전을 이번 대회 가장 중요한 경기라 여기며 준비했는데, 첫 경기부터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이다현(현대건설)은 “베트남에 지면 4강 가는 게 힘들어질 수 있으니 이기기 위해 노력했는데, 너무나도 아쉽다”라고 했으며, 강소휘(GS칼텍스)는 “선수들의 멘탈 문제가 있었다. 이런 경기력으로 안 된다. 정신 차려야 된다”라며 “우리 모두 바보 같은 짓을 했던 것 같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질 경기가 아닌데 져서 자책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사진=김영구 기자
사진=김영구 기자

선수들의 말대로 한국은 예선 2차전 네팔을 잡았지만, 8강리그 1차전 중국과 맞대결에서 0-3으로 지며 17년 만에 노메달이 확정됐고 선수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북한, 카자흐스탄, 대만을 잡으며 유일한 노메달 대회였던 2006 도하 대회에서 거둔 5위의 성적을 거뒀지만 웃을 수 없었다.

남자에 이어 여자까지. 한국 남녀배구가 아시안게임에서 동반 노메달 성적을 거둔 건 이번이 처음이기에 더 충격이 크다.

2000 시드니 올림픽 이후 올림픽 무대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남자배구는 말할 것도 없고, 2020 도쿄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한 김연경(흥국생명)을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는 여자배구도 추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는 아시아 내에서도 경쟁력을 잃었다. 냉정하게 상위권이 아닌 중위권 평가를 받고 있다. 남자배구는 이란, 중국, 일본, 카타르가 중심을 잡고 있고 여자배구는 중국, 일본, 태국이 3강 체제를 이루고 있다.

대한배구협회는 8일 저녁 사과문을 발표했다. 대한배구협회는 “배구 국가대표팀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 최근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 부진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과 배구 팬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며 “남자대표팀 임도헌 감독의 임기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종료되었으며, 여자대표팀 세자르 감독과는 2024 파리올림픽 출전이 사실상 어려워진 만큼 계약을 종료하기로 상호 합의하였습니다. 또한 협회 남녀 경기력향상위원장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상황입니다”라고 전했다.

 사진=AV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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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국가 대표팀 운영 방향을 심사숙고하여, 2028 LA올림픽 및 2032 브리즈번올림픽 출전을 위한 새 그림을 그리고자 합니다. 대한배구협회부터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한국 배구가 성장통을 거쳐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실행하겠습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대한배구협회의 발표처럼,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한국 배구는 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게 된다면 팬들의 눈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선수들 역시 충격이 크겠지만, 그 충격에서 벗어나 곧 시작될 2023-24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11일 남자부, 12일 여자부 미디어데이 그리고 14일 2023-24시즌 개막전이 열린다.

이번 시즌부터는 아시아쿼터까지 합류해 국내 선수들과 경쟁을 펼친다. 특히 태국 여자배구 동메달 획득에 힘을 더한 폰푼 게드파르드(IBK기업은행), 위파위 시통(현대건설), 타나차 쑥솟(도로공사)이 뛴다. 그동안 넘지 못했던 선수들을 국내 무대에서 상대해야 한다. 고연봉의 국내 선수들이 10만 달러(약 1억 3490만원)를 받고 뛰는 아시아쿼터 선수들보다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면 팬들의 더 큰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사진=AV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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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추락은 없어야 한다. 한국 배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이정원 MK스포츠 기자(2garden@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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