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진박 사태’·18대 ‘친박연대’ 창당,

등 당정관계 피로에 총선 변수 다수 발생

당 안팎서 대통령-여당 수직관계 재정립

요구 분출…”권력 독점자, 당 위해 희생”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이 총선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특히 여당과의 관계에서 대통령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당정 관계가 수직적이라는 시각이 국민들에게 인식되는 순간, 정치적인 피로가 누적되기 시작하고 이는 총선 참패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 헌정사에서 이 같은 사례는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예시는 지난 2016년에 열린 제20대 총선에서 찾을 수 있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인 데다가 야권의 분열로 여당의 승리가 점쳐졌으나 결과는 패배였다. 박 전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에서 촉발된 계파 갈등이 총선을 앞두고 일부 비박계 인사들을 겨냥한 공천학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집권여당의 대표의 이른바 ‘옥새(당대표 직인) 들고 나르샤’ 사태로까지 번졌다.

지난 2008년 열린 제18대 총선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한 해 전에 있었던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던 친박 세력들은 친이계와의 갈등에서 밀려 공천에서 물을 먹고 말았다. 그 결과 서청원 전 의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신당 ‘친박연대’에서 공천을 받은 친박 후보자들은 두 자릿수 당선이라는 돌풍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친윤(親尹)의 그립감이 가장 강하게 터져 나왔던 건 올해 초에 열린 전당대회가 시작이었다. 이진복 정무수석이 안철수 의원을 향해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고 찍어 누른 것이다. 안 후보가 ‘윤안(윤석열·안철수) 연대’, ‘윤핵관’ 등의 표현을 쓴 데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보낸 셈이었다.

이보다 앞서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전당대회 출마를 저울질 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나 전 원내대표가 전당대회 출마를 겨냥한 행보를 보이자, 당시 친윤 주류 측과 대통령실이 공개적으로 저지했는데, 일부 친윤 의원들은 나 전 원내대표를 향해 “‘제2의 유승민’이 되지 말길 바란다”는 비판까지 가했다.

당대표 도전을 예고했다가 ‘친윤’의 핍박을 받던 나 전 원내대표가 “제2의 진박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과연 총선을 이기고 윤 정부를 지킬 수 있겠느냐”며 “2016년의 악몽이 떠오른다”라고 토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여곡절 끝에 당권을 잡은 것은 현 김기현 대표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건강한 당정 관계’ 수립 요구를 강하게 받아왔다. 대통령의 후광으로 당선된 만큼, 수직적 당정 관계 형성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평적 당정 관계 정립은 쉽지 않았고, 지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공천 과정에서 여당에 대한 대통령실의 우위가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면담을 갖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면담을 갖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강서구청장 보선 직후 당 안팎에서 당정관계의 재정립에 대한 요구는 더 커졌다. 수도권에서 국민의힘 조직을 이끌어온 전·현직 원외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당협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중도층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그간 수직적이었던 당정 관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국민의힘 경기 수원병 당협위원장인 김용남 전 의원은 “스포츠계에 팀보다 위대한 선수가 없다는 말이 있듯 당보다 더 중요한 당원은 없다. 그 당원이 1호 당원(대통령)이라도 마찬가지”라며 “지금까지 왜곡된 대통령실과 당의 관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패배 후 설치된 혁신위원회에서도 당정관계 재정립을 중요한 과제로 설정했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도부·친윤·중진의 불출마 및 험지 출마 권고안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물 교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당정 관계 재정립을 위해서는 책임이 큰 인물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여론도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의 의뢰로 11~12일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내년 총선서 지도부·중진·친윤 의원들의 불출마 및 험지 출마 요구’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과반이 넘는 56.9%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한다”와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각각 20.1%, 23.0%였다.


국민리서치그룹·에이스리서치가 뉴시스의 의뢰해 12~13일 전국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혁신위의 당내 중진 험지 출마 또는 불출마 요구’ 제안에 대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적절하다”는 응답이 53%, “부적절하다”는 27%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당정 관계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이미 당 안팎에서 분출하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수도권 민심을 데이터로 분석한다’ 세미나에서 “친윤만의 국정운영과 정당은 아직 근본적인 반성이 없는 것 같다”면서 “혁신위원장이 ‘대통령을 사랑하면 내려놓아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친윤만의 인사·정당 운영에서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같은 세미나에 참석한 배철호 한국정치평론가협회 부회장은 “(정부여당) 지지율 하락은 정책적 실패나 사고보다는 진영 내 분열과 이탈이 크다. 중도층 이전에 보수 진영 내부에서 여당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며 “용명당복(용산 명령에 당이 복종)식의 수직적 문화를 극복하고 당이 자율성과 역동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누구보다 공천 갈등의 뼈아픈 역사를 경험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7일 당 혁신위원회 강연을 마치고 취재진과 만나 “대통령이라는 권력자 주변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향유하는 사람들이 몸을 던져서 당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여파로 빠져나간 지지층이 돌아오고 혁신위원회가 이슈들을 선점하면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상승했다”면서도 “혁신위에서 요구한 사안들이 당내 상황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지지율은 다시 위기로 접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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