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서비스가 먹통 됐을 당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카카오 판교아지트로 남궁훈 전 카카오 대표이사가 들어서고 있는 모습 [성남=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박세정 기자] “대형 IT기업에서 이런 장애가 일어났다면 정부가 난리를 쳤을 것”, “중소 기업의 관리, 운영 역량이 대기업에 비해 한계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 (IT업계 관계자들)

최근 전국의 ‘행정망 마비 사태’를 놓고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정부의 ‘내로남불’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반 IT기업의 전산 사고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던 정부가, 정작 정부망 전산 장애에선 제대로 된 대처도 못하고 허둥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력이 한 수 위인 대기업은 공공IT 사업 참여를 배제 시켜, 사실상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디지털정부’를 표방하던 정부가 제대로 망신을 당하면서, 공공 IT 사업 정책 전반을 재검토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 행정전산망 ‘새올’과 온라인 민원서비스 ‘정부24’는 지난 19일 오후 5시가 돼서야 정상화됐다. 지난 17일 오전 먹통 사태가 발생해 민원 서류 발급 등이 ‘올스톱’ 된 지 무려 56시간 만이다.

ICT 업계에선 일반 기업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고로, 과거 ICT 업계에서 발생한 먹통 사태 등과는 너무 다른 정부의 태도에 혀를 차고 있다. 일반 IT기업의 경우 서비스 장애가 30분만 발생해도 책임자가 정부에 보도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서비스 장애가 사흘 넘게 지속되는 동안 시민에게 재난 문자조차 하나도 발송하지 않았다.

경기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에 직원이 들어서고 있다. [박해묵 기자]

지난해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카카오는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서비스가 장애를 일으키자 당시 남궁훈 대표가 사태를 책임지고 사퇴까지 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은 국정감사에 불려나가 의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카카오는 이후 소상공인에게 최대 5만원을 현금 보상하는 등의 보상책까지 내놓은 바 있다.

지난 2021년 KT의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 장애 시에도 정부의 호된 질타가 이어졌다. 당시 네트워크 경로 설정 오류로 약 1시간 30분간 KT 통신망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정부망 56시간 장애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빠른 수습이지만, KT도 요금 감면 등의 대규모 보상책을 내놨었다.

이번 정부망 장애는 과거 IT기업의 전산 사고 이상으로 시민들의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지만, 사실상 정부가 보상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카카오톡의 경우 심지어 무료 서비스인데도 장애 발생 후 보상책을 내놓았다”며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전산망을 운영하면서 그 피해까지 고스란히 시민들이 떠 앉게 된셈”이라고 꼬집었다.

더 나아가 대기업의 참여를 배제한 공공 IT 사업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공공 IT 사업에서 대기업의 독식을 막고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자산 규모 5조원이 넘는 기업의 공공 IT 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사고가 터지면 사태 수습에는 대기업의 기술력이 동원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과거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 전산이 먹통 됐을 때도 LG CNS가 참여해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또다른 IT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기술력, 운영 노하우, 위기 대응 상황에서 중소 기업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결국 문제가 생기면 불편은 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구조인데, 현실에 맞게 관련 제도를 다시 검토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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