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美국채 보유액 9월 기준 7781억 달러로 급감

2009년 5월 이후 14년 만에 8000억 달러선 붕괴

美디리스킹·수출통제에 中, 미국채 매도로 맞서

美고금리에 환율방어·외국자본 유출방지 목적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첫번째)이 지난 15일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첫번째)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첫번째)이 지난 15일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첫번째)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에 나서고 있다. 6개월 내리 순(純)매도(매수보다 매도가 많음)세를 유지하며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 규모가 14년 만에 처음으로 8000억 달러(약 1033조원)선을 하향 돌파한 것이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지난 9월 기준 7781억 달러로 집계됐다고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第一財經) 등이 미 재무부의 통계를 인용해 지난 17일 보도했다. 전달과 비교하면 3.4%(273억 달러)나 감소했다. 2009년 5월 8015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처음으로 8000억 달러 선이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토르스텐 슬록 아폴로 글로벌매니지먼트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는 데다 대미 수출 역시 감소하면서 달러화가 줄어들자 미 국채를 지난 몇 달간 빠른 속도로 매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미 국채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미·중 무역 규모가 급격히 커지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값싼 노동력에 힘입어 생산한 상품을 미국에 수출했고,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안전한 투자처로 꼽히는 미 국채를 대량 매입했다. 재정·무역 등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중국의 국채 매입 덕분에 금리를 낮게 유지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윈윈(Win-Win)한 셈이다.

그러나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양국 간에 무역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중국의 미 국채 매도가 급증했다. 2013년 11월 1조 3167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중국이 2019년까지만 해도 미 국채 보유 규모가 1조 달러 이상을 유지하며 보유국 순위 1위를 지켰다.

이후에도 미 국채를 계속 내다팔면서 중국은 일본에 1위 자리를 내줬고, 급기야 지난해 4월 1조 달러 선도 무너졌다. 특히 지난해 중국의 미 국채 보유 규모가 1732억 달러가 대폭 줄어든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9월까지 889억 달러나 감소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 규모는 10년여 만에 40.9%나 급감한 셈이다. 9월 기준 일본이 1조 877억 달러 규모를 보유해 1위이고 영국이 6689억 달러로 3위를 차지했다.

지난 7월 5일 중국 산둥성 옌타이 항구에서 수출용 자동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 신화/뉴시스 지난 7월 5일 중국 산둥성 옌타이 항구에서 수출용 자동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 신화/뉴시스

중국이 미국 국채 보유량을 계속 줄이는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미 국채를 매도하는 것은 미국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 시도나 수출통제 등에 맞서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밍밍(明明) 중국 중신(中信)증권(CITIC)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적으로 간주되는 국가에 재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오히려 중국이 디리스킹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막대한 규모로 보유한 미 국채를 중국이 내다팔면 미 채권값을 떨어뜨리고 금리가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져 미국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우크라이나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으로 재정적자 폭이 확대되는 미국에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미 경제의 불안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미 정부의 부담을 키우고 미 경제를 흔들려는 중국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얘기다.

위안화 환율방어 목적도 빼놓을 수 없다. 미 국채를 팔아 얻은 달러화로 중국은 위안화를 사들여 통화가치 하락을 막는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고금리 정책에 따른 위안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위안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국은 올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도 더딘 경제회복과 과도한 지방부채, 부동산시장 침체 등으로 대규모 자본유출에 시달리고 있다. 위안화 환율상승(가치하락) 압력이 큰 상황이다.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가치는 지난 1월 6.71위안에서 6월 7.22위안으로 7.60% 떨어지는 등 약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위안화 환율은 중국 당국의 심리적 지지선인 ‘포치’(破七·달러당 위안화 가치 7위안 붕괴)를 넘어 달러당 7.1위안선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더욱이 헝다(恒大)그룹 등 중국 대형 부동산 회사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면서 해외 자본이 밀물처럼 해외로 빠져나가며 위안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9월 중국 역내 현물·선물시장 거래, 역외 순지급된 위안화 규모 등을 집계한 결과 750억 달러라고 밝혔다. 전달보다 80% 늘어난 수준이며 2016년 이후 가장 많았다.

중국 최대 쇼핑축제인 광군제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중국 산둥성 저우핑의 한 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택배 물품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중국 최대 쇼핑축제인 광군제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중국 산둥성 저우핑의 한 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택배 물품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달러화 패권’에 맞서 위안화 국제화에 나서는 중국 정부로서는 위안화 가치 하락이 달갑지 않은 탓에 미 국채를 내다팔고 위안화 매수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위안화 약세가 해소될 기미가 안 보이자 9월에는 외화 지급준비율을 기존 6%에서 4%로 조정하는 등 미국과의 금리 차에 따른 외화유출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 당국이 위안화 약세 방어를 위해 국유은행에 달러 매도·위안화 매수를 지시하고 은행은 이를 위해 미 국채를 팔아 달러를 확보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달러 무기화’에 대한 중국의 위기감도 미 국채 매각으로 이어졌다는 관측이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미국은 3000억 달러 규모의 러시아 해외 자산을 동결했다. 왕유신(王有鑫) 중국은행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정학적 갈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달러화 표시 자산을 너무 많이 보유하면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될 수 있다”며 “금이나 원유 등의 전략자산을 늘리면 자산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미국이 러시아를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퇴출시킨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위안화 결제가 급증한 것도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잔액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 상반기 중국과 러시아 간 교역에서 약 75%가 위안화로 결제될 만큼 위안화 결제가 늘어났다. 중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석유·천연가스 대금을 위안화로 지급하면 러시아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자동차 대금을 위안화로 다시 결제하는 등 양국 간 산업구조는 상호보완적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와의 위안화 무역결제를 통해 위안화 국제화가 추진력을 얻게 된 것이다. 중국이 중동·남미 등과 위안화 결제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달러화 패권판도를 흔들고 나선 것도 ‘미 국채 매도’의 근거로 거론된다. 위안화 국제결제 비중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9월 3.7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 자료: 미국 재무부 ⓒ 자료: 미국 재무부

이런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10년 만에 처음으로 인민은행과 국가외환관리국을 찾은 것도 달러화 매입을 통해 위안화 약세를 막고 위안화 국제화 행보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시 주석의 이번 외환관리국 방문 목적 중 하나는 3조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외환보유액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의 위안화 환율방어 움직임에도 위안화 가치는 추가 하락할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내다봤다. 인민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으로 금리가 낮아지자 투기세력을 중심으로 위안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국가의 통화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위안화를 빌려 브라질 헤알화 등 남미 국가의 통화로 운용하는 아이디어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캐리 트레이드가 늘어날수록 위안화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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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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