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닐’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4년여간 79만㎎ 불법 처방

‘마약처방’ 지시해도 처벌 어려워…수행한 의사만 처벌 대상

과거 을지의과대 설립하려 ‘불법 정치로비’ 전력도

박준영 을지재단 이사장
박준영 을지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연합뉴스TV 최대주주 변경을 시도하는 박준영(65) 을지재단 이사장이 2013년 3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1천677일간 불법으로 처방받은 마약성 진통제 ‘페티딘’은 총 79만4천200㎎으로 매일 9∼13회씩 투약해야 소진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의료 목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지만 박 이사장은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대규모 투약·처방에도 그가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의료 목적으로 투약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의사만 처벌할 수 있는 현행법 체계의 맹점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 마약사범 엄단을 위해 의료용 마약 오남용, 특히 마약 중독 의사들에 대해서는 면허 박탈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러한 법 체계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박 이사장이 과거 을지의과대학 설립 인가 청탁을 목적으로 정치권에 돈을 건넸다가 관련자들이 구속된 사건까지 재조명되면서 그가 방송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물인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 펜타닐과 같은 계통…10년간 ‘심각 이상반응’ 유발 1위

27일 법조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페티딘은 빈번히 오남용되는 마약 중 하나로 잘못 쓰면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합성마약의 일종으로 과거에는 ‘데메롤’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알려졌다. 이른바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과 함께 대표적인 아편계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로 분류된다.

중등도 이상의 통증 완화, 무통 분만 등에 쓰이는 의료용 진통제이지만 의존성이 높고 착란·호흡억제·두부손상·사망을 유발할 수 있다.

최여진 경희대 약학대학 규제과학과 교수(당시 차의과대학 소속) 연구팀이 2021년 8월 약학 분야 국제학술지 ‘파마슈티컬스'(Pharmaceuticals)에 펴낸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국내에서 중대한 이상반응(Serious Adverse Events)을 유발한 약물 1위는 페티딘(31.8%), 2위가 펜타닐(25.8%)이었다.

일반 이상반응(AE) 중에는 펜타닐이 58.8%로 1위, 페티딘이 25.9%로 2위로 나타났다.

실제로 2017년 8월 천안의 한 정형외과에서 척수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20대가 페티딘을 투약받고 3분 만에 발작을 일으키고 끝내 저혈량 쇼크로 사망한 의료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병원장이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돼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법원은 페티딘의 부적절한 투여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인정했다.

박준영 전 이사장의 2015년 성탄절 투약 내역
박준영 전 이사장의 2015년 성탄절 투약 내역

[연합뉴스 자료사진]

◇ 권장 투여량 훌쩍 넘겨…성탄절 연휴에 198회분 처방받기도

페티딘의 권장 1회 투여량은 35∼50㎎이며 3∼4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해 투여할 수 있다.

검찰이 확보한 박 이사장의 투약 내역에 따르면 그는 1천677일간 79만4천200㎎을 진료 없이 불법으로 처방받았다. 35㎎씩 투여하면 최대 2만2천691회, 50㎎씩 투여하더라도 1만5천884회에 달하는 양이다. 처방 기간 매일 9∼13회를 투여해야 소진할 수 있다. 권장 용법을 지키면 하루 종일 투약해도 다 쓸 수 없는 양이다.

박 이사장의 투약은 2015년 11월 20일부터 이듬해 11월 8일까지 1년간 특히 집중됐다. 이 기간 며칠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수백 ㎎씩 매일 처방받았다.

특히 2015년 성탄절 연휴(25∼27일)에는 3천㎎, 3천600㎎, 3천300㎎을 연달아 처방받기도 했다. 50㎎ 기준으로 3일간 총 198회 분량이다. 연휴 이후에도 매일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나 상비약으로 미리 받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익명을 요청한 중독 치료 전문 A 교수는 “대표적인 오남용 사례다. 투여 용량의 10배 이상을 반복적으로 계속 처방받았다면 오남용 의존이 이미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내성이 생기고 몸이 적응하면 그 이상으로 계속 맞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페티딘을) 남겨놓는다든지 개인적으로 보관한다든지 불법적으로 유통되거나 사용하게 됐을 가능성도 의심해볼 수 있다”며 “자가 처방에 준하는 행위이고 본인이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약류 처방전 (CG)
마약류 처방전 (CG)

[연합뉴스TV 제공. 위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 법리 다툼으로 무죄…마약 전력에도 학원 이사장 복귀

박 이사장의 상습 마약 투약 전력이 논란이 되자 을지학원 측은 해명자료에서 “박 이사장의 치료 목적 마약성 진통제 처방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내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무죄 판결에 대해 법조계에선 ‘사실관계는 인정되나 의료용 마약 투약자의 처벌 범위를 좁혀놓은 현행 법체계에서는 처벌이 어려운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의사는 업무 외 목적으로 마약류를 처방하면 처벌받는다. 처방받은 사람에 대한 별도의 처벌 조항은 없다.

쾌락·환각 등 의료 외 다른 목적으로 투약했거나 유통·판매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처벌할 수 있지만 LSD·엑스터시 등과 달리 원래 목적이 의료용 진통제라면 수사를 통해 밝혀내기도 어렵다.

박 이사장은 수사 과정에서 1980년경 겪은 교통사고 후유증을 견딜 수 없어 통증 완화를 위해 투약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검찰은 투약이 아닌 ‘의사가 불법으로 처방한 행위’의 공범으로 박 이사장을 기소했다. 박 이사장이 페티딘을 자신 또는 타인의 명의로 처방해달라고 의사들에게 지시함으로써 범행을 공모했다는 취지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으나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고 2019년 10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법원은 ‘대향범’ 법리에 따라 사실관계가 인정돼도 박 이사장을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향범이란 2명 이상의 참여자(의사·환자)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동일한 목표(처방)를 실현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두 사람이 함께 범행을 구성하는 것이 성질상 당연하므로 범행에 참여한 한쪽을 다른 한쪽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 없게 돼 있다.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교사·방조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특히 의료계 내부에서 이뤄진 마약류 오남용은 적발하기가 더욱 어렵다. 거짓말로 처방받거나 의사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처방을 내렸다는 점을 수사기관이 입증하기 어려워 법의 사각지대라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 박 이사장에게 진통제를 처방한 의료진은 을지재단 산하 을지병원 소속 의사들이었고, 박 이사장 본인도 의사 출신이다.

정구승 변호사(법무법인 일로)는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을 처벌하려면 치료할 목적이 아니었다는 자백이나 관련한 구체적 정황이 필요한데 양쪽이 함구하면 적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을지대학교병원
을지대학교병원

[촬영 이은파]

의료용 마약 오남용 문제는 정부도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사안이다. 미국의 경우 최근 젊은층 사망원인 1위가 ‘펜타닐 과다 투약’일 정도로 심각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7월 발표한 ‘2022년 의료용 마약류 취급 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의료용 마약류 처방 환자는 1천946만명으로 해당 통계를 집계한 201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검찰청도 지난 24일 “최근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의료인이 스스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투약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며 오남용 병원에 징벌적 과징금 부과를 검토하고 마약 중독 의사는 면허를 취소하는 등 엄정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들어 의료인이 본인이나 가족에게 마약류를 처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 업무 외 목적으로 마약을 불법 처방할 경우 1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 등도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마약 의혹이 불거지자 을지재단 측은 당시 “(박 이사장이) 전신적 통증 및 치료를 요하는 심각한 상태”라며 “사임한 뒤 경영을 떠나 건강 회복을 위한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이사장은 사임 후에도 각종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9년 9월 학교법인 을지학원의 이사장으로 일선에 복귀했는데, 마약 전력을 가진 인물이 학원 이사장, 교육자로 복귀하는 것은 더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을지대학교 성남캠퍼스
을지대학교 성남캠퍼스

을지대학교 성남캠퍼스 [촬영 홍기원]

◇ ‘의대 설립’ 위해 불법 정치로비 전력

박 이사장은 마약 투약 외에 현 을지재단의 근간이 되는 을지의과대학을 설립하기 위해 정치권에 금품을 건넸던 전력도 있다.

관련 판결문과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 이사장은 1996년 9월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일하던 최모 씨에게 “영향력 있는 인사를 소개해 달라”며 2천만원을 건넸다.

최씨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박 이사장은 염홍철 전 대전시장(당시 신한국당 대전 서구을 지구당위원장)과 당시 통일원 장관 비서실장 강모 씨에게도 유사한 청탁을 하며 3천만원씩을 각각 건넸다. 직원들 명의로 개설한 통장과 도장을 넘겨준 것으로 조사됐다.

박 이사장은 세 사람에게 돈을 건네고 청탁한 사실을 검찰에서 모두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염 전 시장과 강씨, 최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로 구속돼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이 당시는 청탁금지법이 없던 때라 돈을 건넨 박 이사장은 처벌을 피했다. 알선수재죄는 공여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대전 지역의 가장 큰 병원을 운영하던 박 이사장 일가는 1970년대부터 대학부속병원으로 만들기 위해 7번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나 이 같은 로비 직후인 1996년 10월 을지의과대 설립을 인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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