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에 유치권 내줬지만 중장기적 외교과제 재정비 계기

윤석열 대통령,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 모두발언
윤석열 대통령,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 모두발언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5.29 zjin@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김지연 기자 = 500여일간 치열했던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은 부산 패배로 막을 내렸지만, 한국 외교력에서 중장기적으로 보강이 필요한 부분을 가시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아프리카, 태평양도서국(태도국), 카리브공동체(카리콤) 등 그동안 교류가 적었던 지역과 유치전을 매개로 본격화한 접촉을 앞으로 어떻게 끌어갈지가 한국 외교의 과제로 남게 됐다. 한국 외교의 미답지인 세 지역에는 80여개국이 포진해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진행된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투표에서 부산(29표)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119표)에 유치권을 내주며 고배를 들었다.

사우디보다 유치전에 뒤늦게 뛰어든 한국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외교부 등 주요 부처의 장·차관 등이 총출동해 전 세계를 돌며 유치 활동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사우디가 채무 탕감을 앞세워 단기적으로 저개발국들의 재정적 갈증을 해소하는 전략에 주력한 것이 승리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BIE 회원국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캐스팅보터’인 아프리카, 태도국, 카리콤 등에 대한 한국의 교섭전략이 결정적으로 주효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정부 내에서도 이들 지역에서 단기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외교적 ‘공백’을 절감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 지역들은 글로벌 지형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음에도 그간 한반도 중심 ‘4강 외교’에 초점이 맞춘 한국 외교전략 중심에서는 크게 벗어나 있던 게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경우 미중 양국이 패권경쟁 구도 속에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한창이다. 중국은 미국의 공백을 틈타 거대 자본을 앞세운 일대일로 정책으로 영향력을 확대해왔고, 이에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미-아프리카 정상회의를 8년 만에 개최하는 등 다시 ‘관리 모드’에 들어갔다.

아프리카는 일본도 외교력을 꾸준히 투입해온 지역이다. 일본은 1993년부터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를 개최해왔으며 최근에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맞서 대규모 투자를 앞세우는 등 진출 확대를 꾀하고 있다.

태도국도 미중이 부쩍 외교력을 집중하는 곳이다. 미국에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한 대중국 포위망이라는 의미에서, 중국에는 이를 견제한다는 측면에서 전략적 가치가 주목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동안 태도국과 아프리카 등 지역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게 사실이지만, 이번 유치전을 계기로 각국 정보를 수집하고 접촉을 시도하면서 한국과 협력을 희망하는 분야를 확인하고 교류 기반을 다졌다는 후문이다.

한국은 지난 5월 서울에서 태도국들과 첫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내년 5월에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처음으로 여는 등 협력 의제 발굴 작업을 가속화한 측면이 있다.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준비기획단 현판 제막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준비기획단 현판 제막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박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내빈들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서희 홀에서 열린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준비 기획단 현판 제막식 및 기념 오찬에서 현판의 가림막을 벗겨 내고 있다.
왼쪽 세 번째부터 민주당 설훈 의원, 박 장관, 샤픽 하샤디 주한 모로코 대사. 2023.11.13 hkmpooh@yna.co.kr

해당 국가들과 관계 구축의 발판을 속도감 있게 마련하는 데는 유치전이 동기가 됐지만, 관계 동력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살려 나가는 게 앞으로 한국 외교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에서는 엑스포 유치 결과 분석을 바탕으로 ‘촘촘한 외교’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살펴보고 재정비하는 작업에 착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글로벌중추국가(GPS) 전략과도 맥을 같이 한다. ‘GPS’가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한국의 외교 지평을 넓히는 작업을 내실화하는 게 중요할 전망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내년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국제무대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가의 전략적 가치가 한층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됐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에 유치전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아프리카가 유엔에서도 캐스팅보터이기 때문에 이들과 외교를 제대로 하지 않고는 나아갈 수가 없다”며 이번 교섭 과정이 아프리카 외교를 제대로 들여다본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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