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탄은행 상계동 봉사현장…에너지 취약가구 10곳에 2천장 배달

주민들 “매년 와주니 고마워”…연탄은행 대표 “이웃 위해 마음 모아주시길”

연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
연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5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에 서울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2023.12.5 stopn@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5일 오전 10시께 서울 노원구 수락산 초입 가파른 언덕에 있는 한 마을에 40여명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의 정체는 마을에 연탄 2천장을 배달하기 위해 온 자원봉사자들. ‘서울연탄은행’이라고 적힌 초록색 조끼, 검은색 토시, 빨간 목장갑을 하고 어깨에 지게를 짊어진 이들은 2시간 동안 새까만 연탄을 연신 실어 날랐다.

사회복지법인 서울연탄은행은 이날 노원구 상계동 마을에 있는 에너지 취약계층 10가구에 200장씩 총 2천장의 연탄을 전달했다.

올해 6번째로 진행된 ‘개인봉사자의 날’인 이날은 개인 자원봉사자 30여명과 국가철도공단 직원 11명이 함께했다.

개인 봉사자 이유진(32)씨는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움직일 수 있을 때 에너지를 좋은 곳에 쓰자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로 12번째 연탄봉사를 했다는 그는 지난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탄은행이라는 단체를 처음 접한 뒤 시간이 날 때마다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어엿한 연탄봉사 ‘베테랑’이 된 이씨는 처음 온 봉사자들에게 연탄을 나르다 보면 체온이 올라가기 때문에 옷은 얇게 여러 겹 입어야 한다는 것부터 신발에 연탄 가루가 묻을 수 있으니 검은색 운동화를 신는 게 좋다는 것까지 소소한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연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
연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5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에 서울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2023.12.5 stopn@yna.co.kr

최연소 봉사자는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2011년생 나홍정(12)군과 이지훈(12)군이었다.

학교에 현장학습 신청서를 내고 왔다는 두 사람은 한 개에 3.65㎏짜리 연탄 여러 장을 짊어지고 씩씩한 걸음으로 비탈길을 오르내렸다.

이날로 연탄 봉사가 네 번째라는 이군은 “처음에는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다 끝나고 나니 뿌듯하기도 하고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좋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엄마 손 잡고 따라왔다”는 나군은 양 볼에 홍조를 띤 채 연탄을 날랐다.

봉사가 끝날 때쯤인 낮 12시께 나군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그는 오른쪽 볼에 묻은 연탄 가루를 물티슈로 닦아내며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래도 봉사하니까 착한 사람이 된 느낌이 들어 다음에도 또 할 것 같다”고 했다.

나군의 어머니 송희윤(47)씨는 “아이들이 어렵게 사는 이웃들에 대해 알 기회가 적지 않느냐”며 “이렇게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같이 와봤는데 아이가 처음에는 시큰둥하더니 나중엔 재밌어하는 것 같아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낮 최고기온 11도. 12월 치고는 포근한 날씨에 경사 높은 산 비탈길을 오르내리던 봉사자들은 시간이 지나자 무거운 패딩을 벗어 던지고 연탄을 배달했다. 일부는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도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연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
연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5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에 서울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2023.12.5 stopn@yna.co.kr

혼자 55㎏에 달하는 연탄 15장을 한꺼번에 짊어진 채 능숙하게 비탈길을 오르던 박순찬(41)씨 얼굴에는 작은 땀방울이 가득 맺혔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는 “처음 봉사했을 때는 한 번에 8장 정도씩 날랐는데 올해는 ‘연탄 시즌’이 다가오기 전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15장씩 나르게 됐다”며 “마을 분들이 올겨울 추위 없이 따뜻하게 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체에서 ‘연탄 천사’로 통한다는 박씨는 이날도 평일 오전 봉사에 참여하기 위해 회사에 반차를 냈다고 했다. 그는 “작년에 연탄 봉사를 시작한 뒤로 회사 안에 사회공헌동호회도 만들었다. 직원분들과 종종 같이 오기도 하고 올겨울에는 회사에서 연탄 1만장을 기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들의 봉사를 향한 뜨거운 열정에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

서울연탄은행으로부터 연탄 기부받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민 임도섭(66)씨
서울연탄은행으로부터 연탄 기부받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민 임도섭(66)씨

[촬영 김정진]

2012년 살던 곳을 화재로 잃고 지금 집에서 살게 됐다는 임도섭(66)씨는 “어제부터 봉사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며 “매년 이렇게 와 주니 저희로서는 엄청 고마울 따름”이라며 감사를 전했다.

임씨의 집은 계단을 200개 가까이 오른 뒤 비탈길을 마저 올라야만 나온다. 그는 “집이 산에 있다 보니 기름도 가스도 공급이 어렵고 연탄밖에 땔 게 없는데 연탄도 배달시키려면 돈이 엄청나게 들고 나르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장애를 가진 남동생 부부와 함께 사는 주민 박순자(74)씨도 “여기는 지대가 높아 연탄 배달을 잘 오려고 하지 않기도 하고 배달시키기도 미안하다”며 봉사자들에게 고마워했다. “점점 더 연탄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러니 이렇게 봉사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감사하고 고맙죠. 이 꼭대기까지 모든 분이 합심해 도와주시니 올겨울도 무난히 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서울연탄은행을 포함한 전국 연탄은행에는 약 170만장의 연탄이 후원됐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우리 사회에는 정말 따뜻하고 좋은 분들이 많다는 걸 다시금 느끼고 있다”면서도 “연탄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1장당 50원 정도씩 오르고 경기까지 어려워지면서 연탄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추운 겨울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한 분이라도 조금 더 마음을 모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울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
서울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5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에 서울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이 연탄 배달에 앞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23.12.5 stopn@yna.co.kr

stop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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